13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
와 함께 있을지어다
오늘은 우리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인 삼위일체 하나님. 즉 성부하나님, 성자예수님, 성령하나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의 의미와 뜻은 무엇입니까? 세 가지 위(지위, 품격)가 있는데 이것은 하나이다.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가장 독특한 사상이며 교회의 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이 용어를 왜 사용하게 되었던 것일까요? 삼위일체는 이단들에게서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학적인 용어입니다. 영어로는 Trinity라고 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세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한분이라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를 수학적인 기호로 말하자면 3=1입니다.
피조물인 이 세계 안에는 창조자이신 삼위일체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넓은 피조세계는 창조자보다 작기 때문입니다. 교회주일학교에서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이렇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저로 예를 들자면, 아버지는 저를 부를 때 제 이름을 부르죠. 아내는 저를 남편이라고 부릅니다. 사랑스러운 예현이는 저를 아빠라 부릅니다. 이렇듯 부르는 위치에 따라서 명칭이 틀리다고 하며 삼위일체의 본질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이들에게 삼위일체라는 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엄밀한 의미해서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삼위일체를 설명하기 위해 나일강의 예를 든 사람도 있습니다. 작은 산골짜기에서 시작된 시냇물이 졸졸 흘러 갑니다. 시냇물이 모여서 이루어진 개천가, 그리고 그 물들이 모아져 나일강이 되듯이 삼위일체가 이렇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성부하나님, 성자예수님, 성령하나님 중 어떤 한 분만 더 큰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동일한 분입니다.
어떤 사람은 삼위일체를 태양과 빛, 그리고 빛이 닿을 때 나는 열로써 삼위일체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물로도 하나님의 성품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것은 없었습니다.
삼위일체는 창조자 성부하나님, 성자예수님, 성령하나님 세분이 본질적으로 하나요, 인격에서는 셋이라는 것입니다. 창조자 하나님은 수십차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은 기껏해야 3,4차원 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생각했을 때, 생각의 한계에 부딧힙니다. 언어의 한계에 부딧힐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개미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것처럼 하나님을 우리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이해되고 믿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부분은 믿고서 이해되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마치 아이가 태어서 쉼을 쉬기 위해 산소가 필요하다고 이해된 후에 숨을 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이가 장차 커서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았을 때, 이 공기 안에 산소가 있어야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인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는 이해되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고 난 후에 이해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먼저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먼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고전 13:12에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은 삼위일체가 우리에게 있어서 확실히 체험 되지 않으나, 우리가 장차 주님의 얼굴을 대했을 때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충분히 이해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삼위일체는 성부하나님, 성자예수님, 성령하나님이 본질적으로는 하나이지만, 인격에서는 셋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삼위일체를 설명할 수 있는 성경을 찾아 볼까요? 요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때에 말씀은 예수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해석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하셨고, 그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태초부터 성부하나님, 성자예수님, 성령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또 찾아 볼까요? 창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여기서 “우리의 형상”, “우리의 모양”이라는 단수가 아닌 둘이상의 복수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신앙은 시작됩니다. 요20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 중 의심 많은 도마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8일이 지난 후 예수님이 모여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의심 많은 도마에게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했을 때 도마가 그제서야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이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우리는 우리 눈으로 하나님을 보았던 적은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며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나의 죄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모든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 우리의 삶 속에서 in 성령님, with 성령님, by 성령님을 우리는 알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된 자입니다. 삼위일체는 우리 신앙의 근본이며 이단에게서 구별할 수 있는 시금석입니다. 지난 이천년 동안 삼위일체론을 통하여 예수님의 신성이 확보되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이 본질적으로는 하나이지만, 인격에서는 셋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고 믿는 것이 아니라 먼저 믿고 점점 이해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각반 선생님들을 통하여서 보다 더 자세하게 크고 위대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인데, 이해가 아닌 믿음으로 먼저 반응하는 청소년들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