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막1:40-45절 제30과
제목 : 죄를 깨끗하게 하신 분!
들어가는 말
어느 원주민 부락에서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에게 비누를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누를 처음본 원주민들은 먹는것을 착각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비누를 나누어 먹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맛이 없어서 선교사님을 찾아가 왜 그런 맛없는 것을 주었냐고 따졌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선교사님은 웃으면서 먹는것이 아니라 옷이나 몸에 묻은 때를 씻어 낼 때 쓰는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원주민이 갑자기 기뻐춤을 추더랍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비누를 먹었으니 자신과 가족의 마음속의 죄가 씻어졌으니 기쁘다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과연 비누를 먹는다고 어떻게 죄가 씻어 지겠습니까? 그러면 우리안에 있는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수 있을까요?
1) 연결 – 오늘 본문은 우리 모두가 가진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우리의 죄를 해결하신 예수님
먼저,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40절을 보면,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와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수 있나이다’ 라고 자신의 병을 고쳐줄 것을 간청합니다. 그러자 4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의 몸에 손은 대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고 말씀하심으로 나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 후 44절을 보면, 예수님은 나병환자에게 아무에게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병환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말하게 됩니다. 그러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하나님께 치료받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는 사람이 있나요? 예를들면, 아픈 몸의 치료, 잘못된 습관의 치료, 말의 치료, 행동의 치료, 성격의 치료, 감정의 치료..., 등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나병환자처럼 예수님께 나가서 치료해주시기를 간구하기를 바랍니다. 꼭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나병’ 은 어떤 병인가요? 나균에 의해 감염되는 전염성 질환으로 한센병이라고도 불리우는 피부병입니다. 그 증상으로는 감각의 손실, 그리고 신체 변형, 신체 소실...., 등 아무 무서운 병입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완치할 수 없는 불치병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나병을 문둥병, 또는 천형병이라고 불렀습니다. 천형병(天刑病)이란 사람이 고칠수 없는 병으로서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성경에서도 수없이 많은 나병환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성경의 문화권속에서도 나병을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죄인들에게 내려진 형벌로 여겼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나병에 대한 판단을 의사가 아닌, 제사장들이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예수님은 치료받은 사람에게 제사장에게 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할 것은, 성경이 말하는 나병은,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죄인들에게 내려진 형벌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벌로 내리신 나병을 고쳐주셨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말일까요?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죄를 해결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더 나가서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의미있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죄로부터 깨끗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2.그 예수님이 요구하는 삶!
그렇다면, 우리를 죄를 씻어주신 예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무엇일까요? 크게 2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죄를 이기시는 삶을 요구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인해서 우리가 가졌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받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한가지 잊으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의 씻음을 받았지만 아직도 우리안에는 죄성이라는 것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죄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죄성이란 무엇일까요? 죄성을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죄를 향해 가고자 하는 성질, 죄를 짖고자 하는 성질인 것입니다. 예를들면, 죄성은 마치 자석의 S극과 N극과 같습니다. 다시말해, 죄를 N극이라고 말하면, 우리는 원래 N이라는 죄애서 붙어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떼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S극이 남아 있어서 자꾸 N극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성입니다. 즉, 우리는 죄의 씻음을 받았지만, 계속해서 죄를 바라보고, 죄를 짖고자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여전히 죄의 유혹을 받고, 때로는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신 예수님은 우리들이 죄성을 이기고, 죄를 이기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병에서 깨끗함을 받은 사람에게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순종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에 대해서 말을 했습니다. 물론, 그로 인해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더 큰 퍼졌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 오신 분이기 보다는, 불치병을 잘 고치는 능력있는 분으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어려움을 격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깨끗함을 받은 사람에게 예수님은 순종을 요구하셨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예수님으로 인해서 죄씻음을 받고, 죄에서 깨끗함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도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야 할 것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이 가장 힘써서 싸워야 할 죄는 무엇입니까? 게으름, 의심, 혈기, 음란, 거짓, 미움, 교만, 다양한 중독, 욕심, 게임...,등 그렇다면 그 죄와 힘써서 싸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꼭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교회 다니는 것, 가끔 힘들면 기도하는 것, 교회에서 목사님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결국, 우리들을 향해 끊임없이 다가오는 죄의 유혹을 뿌리치고, 죄를 이기고,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싸움이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과연 여러분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묻는 질문입니까? 죄를 이기는 싸움, 그리고 더나가서 순종하고자 하는 싸움을 늘 하고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죄의 유혹을 이기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나가서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죄 씻음을 받는 여러분의 마땅한 삶인 것입니다.
3.죄의 기준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죄씻음을 받았고, 그래서 죄에 대한 이김과 순종을 요구받는다는 점을 묵상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죄를 이기고, 순종하는 삶을 살수 있을까요? ‘죄에 대한 기준이 분명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개와 달리기 경주를 했습니다. 쉽게 생각하고 달려서인지 개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사람이 하는 말이 ‘개만도 못한 사람’ 이 말에 화가난 사람이 다시 개와 경주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더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개와 똑같이 골인점에 들어왔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사람이 하는 말이 ‘개 같은 사람’ 이 말에 화가난 사람이 마지막으로 다시 경주를 하기로 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 달렸습니다. 그 결과 간발의 차이로 개를 이겼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사람이 하는 말이 ‘개보다 조금 나은 사람’ 이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을까요? 여러분! 지금 이 사람의 평가 기준은 무엇입니까? 개입니다. 그래서 경주에서 이겼지만 의미와 가치없는 경주였을 뿐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기준 삼느냐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죄와 순종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죄의 유혹을 이기고, 죄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의 기준이 너무나 느슨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거짓말 하는 것은 죄일까요? 술 조금 마시는 것은 죄일까요? 담배를 피는 것은 죄일까요? 불법 다운로드하는 것은 죄일까요? 욕하는 것, 험담하는 것, 공부 열심히 하지 않는 것, 장애인 자리에 주차하는 것...., 등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것들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다하고, 그리스도인들 역시 아무렇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라고 생각을 안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한다면, 이 모든 것은 다 죄입니다. 목사님이 지금 여러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죄의 기준이 엄격할수록, 죄의 유혹을 이기고, 죄를 이길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지금까지 죄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죄들까지 죄로 인정하는, 죄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갖게 되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죄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여러분! 무엇을 기준으로 죄 됨을 결정해야 할까요? 우리의 지혜, 감정, 보편성, 통계..., 아닙니다. 그런 것이 죄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준하면, 개와 달리기 경주하는 것과 다를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만이 죄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이런 엄격한 죄의 기준을 갖어야 합니다. 그래야 죄의 유혹을 이기고, 순종의 삶을 살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죄를 이기고, 순종하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죄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갖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죄를 이기고, 순종하는 삶을 살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갖어야 할 죄의 기준은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쁨을 죄와 순종의 기준으로 삼고 죄씻음 받은 사람답게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