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신비적인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기도 하지만) 그중에 하나가 바로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비적인 것도 도가 넘어서면 문제들이 많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언, 예언, 병고침, 귀신을 쫓아내는 것 등에만 추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현재의 삶보다는 신비적인 것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을 옳지 못한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삶은 그것뿐만 아니라 학교, 가정도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셔서 박태선 장로가 병고치는 은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사람은 이 은사를 통해 많은 사람의 병을 고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교만해지더니 은사를 자신의 명예를 위해 쓰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이단의 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창시된 이단들이 박태선의 영향으로 그의 제자들이 만든 것입니다. 이처럼 신비적인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면 성령을 꼭 이야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이야기하면 성령의 은사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절대로 신비적인 것으로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바로 성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흔히 성령세례라고도 이야기하지만 저는 성령세례라기보다 그냥 성령을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럼 성령은 받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치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성령의 인치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 인치심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증표, 도장같은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다고 표현을 하다보니 무당에 신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아까 이야기 하다말았지만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절대로 신비적인 것만을 부각시켜서는 안됩니다. 신비적인 것만 말한다면 무당이 신받는 것과 다를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았다, 성령 충만을 이야기할려면 평범하지만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나고 확인 되는 것을 이야기해 합니다. 다시말해 우리는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기에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노예가 몸에 노예의 문장을 새겼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노예는 평생토록 노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치심을 받았기에 의인된 삶,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상을 봅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내가 성령의 은사를 받지 않았기에 성령을 받지 않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성령은사를 받은 사람만이 성령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았지만 성령의 은사를 받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고 이제는 의인된 삶, 변화된 삶을 살아갈려고 노력한다면 성령을 받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여기 모인 분들은 대부분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했고 또한 구원간증문을 통해 자신의 변화된 부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성령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렇게 의인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까 웨슬러의 제자들의 삶처럼 여러분들의 삶 속에 성령의 열매가 일어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