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2절-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
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절-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절-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절-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당대에 온전한 사람, 정직한 사람,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으로 그 당시에 소문이 났던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동방에서 가장 의로운 사람으로 신문기사의 헤드라인에 나와도 될법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그 사람이 누군지 아시죠? 욥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도 인정한 사람입니다. 욥1:8에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고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자랑할 정도로 극찬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욥이라는 사람에게 알 수 없는 고난이 찾아와 하루아침에 너무도 사랑하는 10명의 자녀들을 잃고, 엄청나게 많은 재산을 잃고, 거지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또, 몸에 병이 생겨 너무도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렇게 큰 시련과 아픔, 힘든 고난을 통하여 유한한 인간인 욥이 무한하고 크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조금 알아가는 내용이 욥기서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욥이 얼마나 부자였고, 얼마나 의로운 사람인지 성경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욥1:1에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여러분, 욥은 어떤 사람이라고요?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는 사람으로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하죠? 성경에서 이렇게 극찬하는 사람 보았습니까? 동방에서 최고의 의인이었습니다. 이 욥에게는 욥1:2에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녀들이 생일을 맞이하여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 그 잔치가 끝나면 행여나 이들이 죄악을 범했을까봐 이들을 불러다가 그들의 명수대로 하나님께 회개의 제사를 드렸습니다(5절).
욥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볼까요? 욥1:3에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엄청난 재산이죠? 욥이 살았던 시대는 욥기서가 시편 앞에 있다고 해서 다윗시대 이후가 아닙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족장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이런 족장시대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이런 족장시대에 이 정도의 재산이면, 지금 이 시대로 생각하면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다 잃게 됩니다. 하루는 스바 사람들이 와서 칼로 종들을 죽이고, 소와 나귀를 빼앗아 갑니다(욥1:14,15). 겨우 살아남은 종이 와서 욥에게 보고하고 있는 멀리서 또 다른 종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보고하기를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양들과 종들을 살라 버렸다고 합니다(욥1:16). 또 멀리서 다른 종이 달려와서 보고하기를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로 갑자기 나타나서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 많은 낙타들을 빼앗아 갔습니다(17절). 또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어떤 종이 다급히 달려와서 주인의 자녀들이 맏아들의 집에 오순도순 모여서 음식을 먹고 있는데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 자녀 10명이 하루에 아침에 모두 죽었다는 보고를 받게 됩니다. 마치 이번에 미국 남부를 덮친 토네이도처럼 갑자기 돌풍이 불어와 한 순간에 사랑스러운 자녀 모두를 잃게 되는 아픔이 찾아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런 고난이 한, 두 개가 아니죠? 아니 한, 두 개 오는 것도 힘든데, 벌써 몇 번째 입니까? 그것도 하나 보고 받고 있는데, 또 다른 고통의 소식이 날라 오고, 또 다른 아픔이 바로 이어서 발생하는 하루아침에 완전히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더군나나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 10명 모두를 잃었습니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인간이 가장 큰 충격을 받을 때는 언제인가 하니 자녀가 죽는 것을 경험할 때라 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욥은 욥1:22에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이런 엄청난 고난이 왔는데도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신실히 섬겼으면 이럴까요? 우리는 조금만 힘든 일이 다가와도 하나님께 엄살 부리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는데, 참 우리의 모습이 욥에 비교해 보니 부끄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욥의 고난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욥이 큰 병에 걸리게 됩니다.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되었습니다(욥2:7). 얼마나 간지럽고 괴로웠으면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었다는 표현이 욥2:8에 나옵니다. 욥의 아내가 하는 말이 욥2:9에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까지 절망스러운 말을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시험을 봤는데 조금 못 보았을 때 주위에 부모님이나, 정말 굳게 믿었던 사람이 ‘야 너 그렇게 살지 말고 그냥 죽어버려’라는 소리를 내게 했다면 여러분 마음은 어떨까요? 정말 절망스럽겠죠? 욥의 아내가 그렇게 욥에게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그 말에 하나님을 향해 범죄하지 않습니다. 이제 욥의 친한 친구들이 찾아와 아픔 속에 있는 욥을 위로하다가 고통을 주기 시작합니다. “네가 죄를 범했으니까 이런 고통이 너에게 찾아 온 것이 아니냐?” 욥은 정말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 친구들에게 “아니야 난 죄를 범하지 않았어”하며 완강하게 대꾸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최고로 힘들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최고로 고통 당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욥에 비할 수 있겠어요? 또, 죄가 전혀 없으신 거룩하신 성자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비천하게 오셔서, 인간들에게 멸시와 천대, 조롱을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나요? 바로 멸시하고 조롱하는 그 인간을 위해서 희생하시러 오셨습니다. 바로 나의 더러운 죄를 내대신 사하여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고난에 우리가 겪는 고난을 감히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 앞에 설사 고통과 아픔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세상의 가장 큰 고통과 아픔을 감당하신 우리의, 나의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극복하고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어려움을 도와주십니다. 공부하느라 힘듭니까? 가정생활이 힙듭니까? 학원 다니는 것이 힘듭니까? 우리 주님을 생각하며 인내하고 극복하십시오.
결국 욥은 이 고난을 통하여 자연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 온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있었느냐?” 너는 먼지에 불과했었다. “황무하고 황폐한 토지를 흡족하게 하는 분은 누구냐?”, “또 연한 풀들을 돋아나게 해보았느냐?”, “달리는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혀주었느냐?” 등등... 이런 하나님의 질문 앞에서 너무도 보잘 것 없고, 너무도 작고 유한한 인간인 욥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주간은 우리가 고난주간으로 지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인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주간입니다. 그 고난주간을 우리는 예수님의 나를 위한 희생을 생각하면서,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들, 재미를 찾고 싶은 일들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을 조금씩 스스로 절제하는 여러분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너무도 한정적이고 유한한 인간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내가 잘했어요. 나는 잘 못이 없어. 오히려 네가 잘 못한 거야’하며 큰 소리를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고개 숙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묵상하며 겸손히 고개 숙이고, 절제하는 여러분들 되기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