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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세상속의 그리스도인! (고린도전서강해15)
 본문말씀 : 고전5:9-13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4.7.30
조회 : 10,759   추천 : 0  
본문 : 고전5:9-13절  고린도전서강해15  
제목 : 세상속의 그리스도인!   

  성도들의 삶속으로
  존 맥스웰(John C. Maxwell)목사님의 ‘당신 안에 잠재된 리더십을 키우라’ 라는 책에 한 등대지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해안가의 등대를 지키는 등대지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등대를 밝히기 위해 한 달에 한번씩 회사로부터 기름을 받아 등대의 불을 밝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불쌍한 할머니가 등대지기를 찾아와 말합니다. ‘돈이 없어 굶을 죽을 형편이 되었다네. 기름을 조금만 주면 팔아서 끼니라도 대신할 수 있을 테니 기름을 조금만 주게’, 동정심에 등대지기는 할머니에게 기름을 조금 주었습니다. 며칠 뒤 친구가 찾아와 말합니다. ‘차에 기름이 떨어져 급하니 기름을 조금만 주게’, 인정상 또 기름을 조금 주었습니다. 며칠 뒤 이번에는 아내가 찾아와 아들의 학비를 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등대지기는 기름을 빼어 팔아 학자금을 해결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밤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쳤고, 바다를 표류하던 배 한 척이 침몰하여 그 배에 탄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 배의 침몰 원인은 배가 표류하는 동안 등대의 기름이 떨어져 불이 꺼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존 맥스웰 목사님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이 시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등대로 비유’하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을 전혀 감당하지 못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책망하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확인하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세상안에 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가르침에 대한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전서 이전에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가 있었고, 그 내용이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가르침을 받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즉,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는 말을, 마치 죄를 범하는 사람들과는 상종도 하지 말고, 예수를 안 믿는 세상 사람들과는 만나지도 말고, 교제도 하지 말라,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야 거룩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식으로 오해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신자들 중에는 방탕한 고린도라는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로 이사를 가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불신 동업자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동업자를 찾는 일이 생겨났고, 불신자들과는 상종도 안하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소식을 들은 바울은 본문 10절을 통해서 그건 잘못이며, 자신의 말에 대해 오해한 결과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 중에는 음행자, 탐욕자, 토색하는 자, 우상숭배자와 같이 별별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과 전혀 만나거나 교제하지 말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만일 그리 하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첫 번째 생각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안에 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이라는 점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등지거나, 불신자와 격리된 삶을 사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종 이런 자랑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안믿는 사람들과는 만나지도 않고, 믿는 사람들과만 만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은 한번도 직장동료들과 술자리 회식에는 한번도 동석하지도 않았음을 자랑삼아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이 불교신자라서 회사를 그만둔 것을 믿음의 결단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수를 보내시겠습니까?  어느 여자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이 자매가 다니는 회사가 언제 부터인가 일이 잘 안되서 어려워 졌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사장이 사원들을 모아두고 고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자매 고사의식에 참여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마음에 ‘내가 이 우상숭배하는 사장 밑에서 일하고, 이 회사에서 주는 돈을 받고 다녀야 하나?’라는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다니는 것입니까? 그만두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다니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가 ‘범죄한 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말한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선 10절과 11절의 차이를 발견해야 합니다. 10절의 범죄자들은 어디에 속한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11절의 범죄자들은 어디에 속한 사람들입니까? 교회안에 속한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이 범죄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말할 때에 그 범죄자는 세상 사람이 아니라, 신앙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예수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음행하고 탐람하고, 우상숭배하고, 후욕하고 술취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본질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바울이 강조하고자 하는 더 중요한 의미는, 세상 사람들이든, 또는 교회안의 범죄자들이든지간에 교제와 만남 자체를 금지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초점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지금 세상과 담을 쌓고 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리스도인은 죄인들과 불신자들과 더 적극적으로 만나야 하고 사귀어야 하며,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인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마5:13-14절을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말하고 있음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세상에 존재해야 하며,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사람들의 삶의 원리와 방법, 인생의 목표, 삶의 내용과 가치에 물들지 말고,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예를들면, 세상사람들의 삶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자기중심적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인생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는 이웃사랑이며, 목표는 주님을 닮는 것이며, 가치는 섬김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올바른 삶을 버리고 세상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잠수함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잠수함이 반드시 물속에 있어야 하듯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세상 안에 존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잠수함이 물속에 있어야 하지만, 물이 잠수함 속으로 들어오면 침몰하듯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세상 안에서 있어야 하지만, 세속의 물결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 안으로 들어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2.세상에서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실까?”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생각을 한두번쯤은 해보셨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께 특별대우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예를들면, 내가 신앙생활을 잘하니까? 또는 기도를 하니까? 불경기 속에 많은 기업이 적자를 보는데 예수 믿는 내 사업은 흑자만 보기를, 내 자식은 명문대 보내주길, 성인 남자 3명중 1명은 암인데 자신은 아니기를, 공부를 조금만 해도 성적이 좋아지고 시험 잘보길..,등 이런 특별대우를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섭섭함을 느낄 때가 이런 경우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예수 믿는 우리에게 현세적인 특별대우는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하거나 호의적인 장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은 유혹의 장소이며, 고생과 아픔이 많은 곳이며,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대접해주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의 고향이 아니라, 세상사람들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자들을 나그네, 외국인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신자들 사이에 놓아두셨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선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아가게 하셨다면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혹시 세상을 정죄하기 위함입니까? 비난하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우리들의 신앙을 테스트하거나 훈련시키시기 위함입니까? 조금은 맞지만 정확한 답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바로 “사명”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세상에 대한 우리의 사명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의 본질적인 장소는 세상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코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받고, 좋은 신앙의 정보를 나누고, 함께 격려하는 곳이지 본질적인 사명지는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사명지는 세상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바로 여러분의 가정, 직장, 일터가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장소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런 신앙의 눈을 떠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슨 사명입니까? 우선 오늘 본문의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사람들이 여러분을 통해서 음행, 탐심, 토색, 우상숭배, 후욕함, 술취함을 버리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5: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샘플과 기준이 되는 사명입니다. 예를들면,  참 인간의 모습, 참 가정의 모습, 참 남편과 아내됨의 모습, 참된 부모와 자녀의 모습, 참된 이웃됨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샘플이 되는 사명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명을 감당하고 계십니까? 혹시 그리스도인된 여러분 때문에 믿음을 찾고자 한 사람, 여러분 때문에 삶을 고친 사람이 있습니까?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직무유기입니다. 여러분의 세상에서 샘플이 되고, 기준을 외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늘 은혜가 있으십니까? 예배를 드리고 기도할때는 은혜가 있는 것 같은데, 평상시에는  은혜가 잘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간단히 말할 수 있습니다. 사명을 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이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이웃들안에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을 망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명의 자리에 부어지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주님이 마지막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말합니다. 그 후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하신다고 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사명을 잊어버린체 축복만 받으려고 합니다. 참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3.거룩해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우리가 세상속에 우리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합니다. 바울은 12절에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13절을 보면, 범죄한 그리스도인을 교회에서 ‘내어 쫓으라’고 말을 합니다. 무엇을 가르칩니까? 거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다루어야 할 주제는, “거룩”입니다.  여러분은 거룩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룩이라는 것은 대부분 종교적인 색깔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예를들면, 금식을 자주하고, 밤새워 기도하며, 목소리 변조된 것, 모든 대화에 성경 구절이 인용되는 것, ..., 등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성경이 말하는 거룩의 의미에 왜곡된 이해들입니다. 성경은 이런것을 거룩이라고 말한곳이 한곳도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우선 하나님에게 사용되는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거룩한 분이라고 말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분이라는 것을 말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인간과 다릅니까? 예를들면, 하나님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한계가 없습니다. 능력이 무한하십니다. 완전한 사랑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과 인간은 천지차이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인간과 다름을 말할 때 하나님이 거룩하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또한 각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거룩해야 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예를들면, 레19장을 보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요청되는 거룩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역시 다름의 의미입니다. 즉, 믿음이 없는 비그리스도인들과의 다름을 의미할 때 거룩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은 “다름”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를들면, 세상 남편, 아내, 부모, 자식의 모습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사람이 말하는 사랑, 목표, 용서, 삶, 말..,등 모든 면에서 다름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다르다는 것은 독특한 방식으로, 희안하게 산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의 방식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런 다름으로 세상에 서고 살아갈 때에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과 도전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그리스도인을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름을 기도의 중요한 제목으로 삼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사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신앙을 종교로 오해하면서부터 신앙과 삶이 이원화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따로, 삶 따로가 된 것이고, 그 결과 세상에 아무것도 보여줄수 없는 그리스도인,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없는 무능력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바른 신앙생활은 신앙과 삶에 구별이 없는 것입니다. 도리어 신앙이 삶이고, 삶이 신앙인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의 핵심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를 아십니까? 세상이 아니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본문과 삶
  1)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영향을 받거나 물들면 안됩니다.
  2)도리어 세상사람들에게 도전과 감동을 주고, 샘플(기준)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3)그러기 위해 여러분은 다름 곧 거룩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이 세상의 소망이, 여러분의 가정이 세상의 소망, 우리 교회가 세상의 소망으로 우뚝서 기준을 외칠수 있는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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