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울의 상황
빌립보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저번주에는 구원의 완성자는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최후에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빌립보교인들이 겪는 어려움읜 핍박과 가난과 분열 속에서 힘을 주는 편지를 바울이 보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지금 바울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본문을 보면 12절에 ‘내가 당한일’이라고 하면서 13절과14절에 ‘나의 매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빌립보서가 옥중서신이라고 기억하면 감옥 안에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2절에 보면 ‘내가 당한 일’로 인해 즉, 당한 어려움으로 인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바울의 전도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전도방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황제 숭배를 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황제만이 유일한 신이고 왕이었습니다. 이런 왕을 믿지 않고 충성하지 않는 것은 반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은 황제를 반역할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단지 하나님을 믿는 것만으로도 반역자라는 오해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런 오해들을 풀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감옥 안에서 재판을 통해서 로마의 관리들과 병사들에게 그리고 황제에게 복음을 변증하고 확증, 즉 오해를 풀 필요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서 믿음을 갖게 하기도 하고 오해를 품으로 인해 복음의 무죄성을 인정받아 로마 안에서 자유롭게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는 것이 바울의 전도 방법이었습니다. 보통 흔히들 바울처럼 감옥에 갇히는 것 같은 어려움을 겪는 것이 우리에게 억울한 일 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앞을 보지 못하고 분노하거나 그것으로 인해 마음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시야를 넓혀 감옥 갖힌 어려움을 겪는 것을 넘어서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낸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힘든일로 고생하고 있으시진 않으십니까? 바울처럼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일로 인해 도리어 바울처럼 하나님께 영광 돌릴 줄 아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
이런 바울의 사고를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적으로 생각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사고는 15절을 통해서 나옵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라고 나옵니다. 여기서 이해 못할 부분들이 나옵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전파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18절에 보시면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기뻐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착한 뜻으로 복음을 전파함이 기쁨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기쁨이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겠습니까? 이 당시에는 바울을 시기와 질투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로마 관원들을 자극시킴으로서 감옥에 갇힌 바울에게 더욱더 큰 핍박이 가하도록 시끄럽게 복음을 전파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렇게 옳지 못한 동기에나 방법을 가진 복음 전파도 기뻐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째거나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역에 가면 큰 스피커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크게 외치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즘은 지하철에서 전도하는 것은 불법이어서 방송으로 나가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전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지하철을 탔는데 한 아저씨가 혼자서 거의 10분 가까이를 혼자 떠들고 다음칸으로 가는 경우도 봤습니다. 그 아저씨가 얼마나 심하게 그랬으면 다음칸으로 가자마자 거기 있는 거의 있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욕을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전도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일까요? 믿지 않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통해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니 기뻐한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분들은 방법에서는 잘못되었지만 전도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시대에 자신의 신앙생활만 챙기기에 바쁘지 그분들과 같은 전도에 대한 열정을 가진 분들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것을 볼 때 그러한 열정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남의 방법을 비난하기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열정을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고를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어려움 당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시기와 쟁투로 복음이 전파하는 것은 로마관원들을 자극해서 바울은 더 핍박받게 되고 그로 인해 죽음이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살아도 죽어도 예수가 전파되는 것이기에 모두다 유익한 일이고 이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는 일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을 관용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어짜피 우리들은 죄성을 가지고 있기에 하는 일마다 악함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도리어 선하신 뜻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매순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기뻐하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매순간마다 예수그리스도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 고민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고민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 그리스도인이란?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죽음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23절을 보면 죽음이 좋은 이유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들은 죽어서 천국에 가게 되고 더 가까이 예수 그리스도께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구원의 완성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 구원의 완성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죽음 이후는 지금 보다 더 좋은 그리스도와 함께함을 누릴 것이고 재림 때는 천국에서 보다 더 좋고 온전한 그리스도와 함께함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이야기할 때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함을 다른 말로 천국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느 곳에 있던지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는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이 천국의 개념을 이야기할 때 장소의 개념이 아닌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과 함께 하심은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삶 모두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주관하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이를 다시말해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저는 신앙 좋은 사람들에 보면 삶 속에서 예수님과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다 연관시켜서 신앙적으로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소한 부분까지도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함께함을 누릴 줄 압니다. 어느 책의 저자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펜을 잃어버렸는데 그것을 찾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소한 일이건 큰일이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일까 고민할 줄 아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정리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어려움을 당해도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을 기뻐했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생각과 사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중심이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을 얼마나 생각했습니까? 또한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행동을 했습니까? 바울처럼 자신보다 더 귀하신 분이 예수그리스도인 것을 기억하고 매순간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