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5:1-8절 고린도전서강해14
제목 : 함께 죄를 이깁시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우리가 살다보면, 종 종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얼마전 아르헨티나에서 82살먹은 할머니와 24살 먹은 청년이 58세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24살의 이 청년은 부모를 잃은 자신을 키워준 엄마 친구에게 사랑을 느껴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얼마전 영국 웨일즈에서도 32살의 여인이 5년전 입양한 19살된 양아들과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충격적이고 반인륜적인 사건도 있습니다. 그것은 인도의 한 30대 남성이 알라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자신의 15살된 친 딸과 결혼하여 두 번째 부인으로 삼았고 임신하여 자식을 낳은 것일 알려져 사람들을 충격케 하였습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런 일들이 세상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신앙을 자부하던 고린도교회 신자들 가운데서 결코 있을 수 없는, 반인륜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충격적인 사건을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신앙의 유익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우리안의 죄성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고린도교회 신자 가운데 자신의 ‘계모와 음행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죄성” 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은 참으로 부끄럽고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어떻게 계모와 음행을 저지를수가 있습니다. 말하기도 참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왜? 성경에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내용을 기록해 놓았을까요? 혹시라도 불신자가 본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부끄럽고 추한 이야기는 오늘 본문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부끄럽고 추잡한 삶을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대한 소개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자신의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고 동침한 롯의 2딸들의 이야기도 있고, 자신의 서모와 동침한 르우벤의 이야기도 있고, 자신의 며느리와 동침한 유다의 이야기, 권력으로 남의 아내와 동침한 다윗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이복 여동생을 겁탈한 암논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뿐만 아니라,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 수음에 대한 이야기 그 외에도 온갖 더러운 성적인 타락...,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와같이 입에 담지 못할 내용까지 성경에 기록한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그 이유는 그런 행동을 한 사람들의 잘못만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그럴만한 죄성이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성경에 기록된 그들과 같은 죄성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성경은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반역과 불순종을 소개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도 그런 반역과 불순종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3번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를 보여주는 것 역시 우리안에 주님을 부인할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주님의 못자국 난 손과 옆구리를 보지 않고는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겠다고 의심한 도마를 우리에게 소개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도마와 같은 의심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돈주고 판 가룟 유다를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들 역시 얼마든 우리의 목적과 유익을 위해서 주님을 팔아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교회와 사도 앞에서 위선적인 행동을 한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소개하는 이유 역시 우리들도 얼마든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잘못된 모습의 신자들을 보게 하시는 이유 역시, 우리들 얼마든지 그들처럼 될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원망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될수 있고,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가 될 수 있고,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가 될수 있고, 의심에 싸인 도마가 될 수 있고, 위선적인 신앙을 가진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모두가 그들이 가진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죄성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각기 다른 분량의 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말해, 죄성이 김일성, 김정은, 유영철, 신창원, 유병언, 히틀러와 같은 극악무도한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똑같은 성질의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해전 캐나다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그만하라는 말을 듣고 화가난 12살된 소녀아이가 부모와 남동생을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그 위대한 바울사도 역시 롬7장에서 ‘내안의 다른 법과 싸운다’고 고백을 하고 있으며, 또, 갈5장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는 ‘육체의 소욕(죄성)과 성령의 소욕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한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딤후3:16절을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말을 합니다. 다시말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성경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우리들에게 주신 이유는 우리들이 죄성을 가진 죄인이라는 사실 규명하기 위함입니다.(롬3:20절 –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마치 법이 있어야 죄를 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신자로서 살아가는 모든 날 동안에 여러분 안에 죄성이 있고, 그 죄성에 끊임없는 영향을 받는 존재임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2.죄와의 싸움
그러나 우리들이 죄성을 알기만 하는 신자가 되면 안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죄성 또는 죄와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 신자들을 향해서 7절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8절에는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없는 떡으로 하자!’ 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누룩을 버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누룩은 ‘죄’또는 ‘죄성’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의인된 자들은 죄를 버리고, 죄와 싸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느 원주민 부락에서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에게 비누를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누를 처음본 원주민들은 먹는것을 착각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비누를 나누어 먹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맛이 없어서 선교사님을 찾아가 왜 그런 맛없는 것을 주었냐고 따졌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선교사님은 웃으면서 먹는것이 아니라 옷이나 몸에 묻은 때를 씻어 낼 때 쓰는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원주민이 갑자기 기뻐춤을 추더랍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비누를 먹었으니 자신과 가족의 마음속의 죄가 씻어졌으니 기쁘다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비누를 먹는다고 어떻게 죄가 씻어 지겠습니까? 그러면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물론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의 죄의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죄성을 이기고, 죄와 싸우는 일은 여러분의 몫으로 주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7절에 ‘누룩을 버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성까지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신앙생활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교회를 다니고, 예배를 드리는 정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것도 신앙생활에 빠지면 안되면 안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바른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바른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간 우리의 삶과 모습을 고쳐가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그 인간의 모습으로 회복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참된 신앙이고 믿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연적인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안의 죄성과 죄와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렇습니다. 날마다 우리안에 있는 죄성을 발판으로 찾아오는 죄와 죄의 쓴 뿌리와 싸우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여러분은 자신의 신앙생활을 점검해봐야 합니다. 과연 여러분은 바른 신앙생활을 잘 하고 계십니까? 그러면 믿음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것 역시 죄와 싸움에 열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죄와의 싸움이 없는 사람을 믿음 좋은 사람, 또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그리스도인을 책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스스로 신령한 사람이고, 꽤 괜찮은 신자라고 자부심을 갖았던 사람들이지만 그러나 그들안에 죄와의 싸움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본문대로 말한다면, 누룩을 내어버리는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른 믿음, 바른 신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바울의 책망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또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성이라는 것이 결코 종이 호랑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빨이 날카로운 호랑이입니다. 즉, 이러한 죄성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님을 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마음먹는다고 이길수 있는 간단한 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죄성에 이스라엘도 그 죄성에 무너졌고, 예수님의 12명의 제자들 역시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역시 수없이 죄성에 무너진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하고, 특별히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이 가장 힘써서 싸워야 할 죄는 무엇입니까? 늘 여러분의 신앙의 발목을 붙잡는 죄는 무엇입니까? 의심, 게으름, 혈기, 음란, 거짓, 미움, 교만, 중독, 게임, 우선순위의 문제, 욕심...., 등 이십니까? 그렇다면 그 죄와 힘써서 싸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꼭 이겨냄으로 더 나은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3.서로를 돕는자가 되라!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집중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바울이 책망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구인가에 대해서입니다. 물론 우선은 음행을 저지른 당사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3절에 ‘이런 일을 행한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라고 말을 하며, 5절을 보면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라고 말을 합니다.(출교) 그러나 바울을 더욱 분노하게 한것은, 음행을 저지른 당사자가 아닌 교회, 공동체 때문이라는 것을 놓치면 안됩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지금 고린도교회 신자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을 보시면,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니냐’라고 책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바울의 책망의 대상은 바로 고린도교회 신자들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죄를 범한 사람, 잘못한 사람을 책망해야 함에도 바울은 지금 고린도교회 신자들을 책망하고, 책임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계모와 음행에 빠질때까지 그들을 방치하고, 음행의 문제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책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 과연 하나님께서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밖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세우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서로의 유익을 위함일 것입니다. 그래서 빌2:4절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그리고 히10:24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며’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신앙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서로를 돌아보며, 격려하며, 위로하고 이끌어주고, 함께함으로 서로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항상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서로를 돌아봐 주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서로가 죄성을 이기고, 죄를 이기도록, 잘못을 고쳐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물론, 신중하고, 은혜롭게, 눈물과 사랑으로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서로를 향해 의무와 책임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도움을 구하고, 서로를 도와줌으로 함께 죄와 싸워 이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성경은 종 종 신자들을 군사라고 표현합니다. 그 이유는 신자의 삶이 마치 전쟁과 같기 때문입니다.
본문과 삶
1)그 이유는 우리안에 있는 죄성이 날마다 우리를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2)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의 삶에서 죄와 죄성과의 치열한 싸움이 필요합니다.
3)뿐만 아니라, 우리는 서로 돌아보고, 서로의 죄를 이기도록 돕는 신앙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일의 죄성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신자가 되고, 우리 교회가 서로의 신앙을 돕는 은혜로운 신앙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