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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성숙한 신자가 됩시다! (고린도전서강해8)
 본문말씀 : 고전3:1-9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4.6.11
조회 : 7,386   추천 : 0  
본문 : 고전3:1-9절  고린도전서 강해8  
제목 : 성숙한 신자가 됩시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 인류가 발견한 가장 깊은 바다가 몇 미터나 되는지 아십니까? 괌 인근 지역에 있는 마리아나 해구하고 합니다. 그 깊이만 11,032m라고 합니다. 그리고 최첨단 기술력과 초강도 금속으로 만든 잠수정도 수압때문에 내려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최첨단 잠수정도 견딜수 없는 그 깊은 바다속에 넙치, 새우들과 같은 몇 몇 종류의 심해어들이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그 엄청난 수압을 견딜 수 있을까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며, 심해어의 몸속에는 외부 압력만큼의 내부  압력을 만들 수 있는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부의 압력을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더 강해질 때, 또는 성숙해질 때, 세상의 어려움과 문제의 압력을 더 잘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더 강한 신자, 더 성숙한 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고린도교회 신자들을 향해서 더 성숙한 신자가 될 것을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숙한 신자가 어떤 신자인가를 확인하고, 여러분 모두 더욱 성숙한 신자가 되기 위해 힘씀으로 더 성숙한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성숙의 기준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안에 2부류의 신자들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신령한자와 육신에 속한자입니다. 좀 다르게 말하면, 성숙한 신자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신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신자가 성숙한 신자이고, 어떤 사람이 성숙하지 못한 신자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성숙함과 성숙하지 못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보통 많은 신자들이 생각하는 성숙함의 기준은, 신앙의 연수, 성경적 지식의 정도, 기도의 분량, 교회에서 봉사의 경력, 교회의 직분..., 등을 기준하여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이 기준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확한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성숙한 신자와 성숙하지 못한 신자를 구별하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말씀에 대한 태도가 기준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1절의 말씀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어린아이를 대함과 같이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2절에 보면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한다’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젖과 밥은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정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의 성숙함의 첫 번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 수용성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한다면 성숙한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만, 성숙하지 못한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여 신앙의 원리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성숙하지 못한 신자는, ‘원수를 사랑하라’ 는 말씀을 들을 때, 내가 왜? 난 그럴 수 없어! 라고 반발을 합니다. 하지만 성숙한 신자는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 성숙하지 못한 신자는, ‘매일 말씀과 기도의 삶을 살라’ 는 말을 들을 때, 꼭 그럴 필요 있어! 라고 거절을 하지만, 성숙한 신자는 매일 말씀과 기도의 삶을 살라는 말씀에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 성숙하지 못한 신자는 ‘서로를 섬기는 종이 되라’ 는 말을 대단히 기분 나쁘게 듣고 거절을 합니다. 하지만, 성숙한 신자는 아멘으로 받아들입니다. 또, 성숙하지 못한 신자는 ‘고난은 유익하다’ 라는 말에 콧방귀를 뀝니다. 하지만 성숙한 신자는 아멘으로 받고 인내합니다. 이처럼 성숙한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 권면을 받아들입니다. 즉, 신앙의 원리가 통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성숙하지 못한 신자는 교회는 다니고 믿음도 있다고 말하지만, 신앙의 원리, 말씀의 원리가 통하지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하여 볼 때 여러분은 성숙한 신자입니까? 성숙하지 못한 신자입니까? 말씀, 권면, 신앙의 원리를 잘 받아 드린다면 여러분은 성숙한 신자일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성숙하지 못한 신자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갖기 위해 노력함으로 성숙한 신자가 되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말하려는 더 중요한 성숙함의 기준이 있습니다. 둘째로, 사람들에 대한 태도가 기준이 됩니다. 3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신자들을 향해서 ‘육신에 속한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라고 책망을 합니다. 즉, 그들의 신앙은 아직도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그들에게 지식이나 은사, 헌신, 구제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도리어 고전13:1-3절의 말씀을 보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 예언하는 능이 있고,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고, 내게 있는 것으로 구제하며,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그들안에 매우 많은 능력과 지식과 은사와 헌신과 수고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고린도교회는 어린아이 같이 미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항상 자기 중심적이었고, 이기적이었고, 자기 밖에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릴수록 나타나는 특징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입니다. 예를들면, 갓난아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엄마가 피곤하다고 잠만 잡니까? 아빠가 밥 먹는다고 응가를 안합니까? 아닙니다. 자기 하고 싶은데로, 자기 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밖에 모르는 성숙하지 못한 고린도성도들을 향해 어린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성숙한 신자는 이타적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게 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고전8:13절을 보면, 바울은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형제’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다. 당시의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고기는 모두 우상에게 제물로 드려진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약한 형제들이 우상에게 드려진 고기를 먹는 것 때문에 마음에 시험이 들게 된다면, 바울 자신의 권리와 자유까지 포기하겠다는 결심이며 선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바울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가장 완전한(성숙한) 인간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목숨까지 다른 사람을 위해 내 놓으셨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성숙한 신자의 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사람들에 대해 섬김, 배려, 사랑이라는 올바른 태도를 갖기 위해 노력함으로 성숙한 신자가 되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성숙을 위해 공동체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더욱 성숙한 신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예배생활, 경건생활..., 등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요즘 기독교인구가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계에서 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가에 대한 이유를 조사한 결과가 있습니다. 1위는 기복 신앙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처음에 교회에 전도되어 갈 때, ‘교회에 다니면 병이 낫는다, 일이 잘 풀린다, 부자가 된다, 자녀가 잘된다’는 말을 듣고 갔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떠나는 이유 2위는 교회에 대해 실망했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성도들이 위선적이고, 정죄를 잘하고, 끼리 끼리 모이고, 교회가 세상과 다르지 않다는 실망감 때문이라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누구 때문에 교회 가기 싫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진정으로 신앙의 성숙함을 원한다면 ‘신앙의 공동체 곧 교회와 함께’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이 공동체안에서 자라기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라고 말을 합니다. 바로 신자들이 모여 있는 교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밭이라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교회안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뿌리가 내려지게 되는 것이며, 교회안에서 믿음의 싹이 나며, 교회에서 믿음이 성장하고, 교회안에서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입니다. 즉, 여러분의 신앙의 강해짐, 신앙의 성숙함은 오직 교회와 공동체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철이 철을 단련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집에 열심히 성경보고 기도해도, 인터넷으로 유명한 목회자의 설교를 늘 들어도, 교회 공동체안에서 신앙생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신앙이 성숙해질 수는 없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물론, 여러분이 지금까지 경험한 것처럼 교회생활, 공동체 생활은 결코 쉬운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안에는 다양한 사람이 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교회안에서 상처를 받을 수 있고, 시험이라는 것도 들게 됩니다. 그럼에도 교회 공동체안에 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교회 공동체안에서 상처와 시험, 교제와 나눔, 다양한 모양으로 함께 함을 통해서 여러분의 신앙이 성숙하도록 하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그럼 다른  교회에서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네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교회로 가보십시오! 그곳에 김아무게 권사, 박 아무게 집사가 없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그곳에 더 센 김아무게 권사, 박아무게 집사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는 여러분이 원하고 기대하는 완전한 교회는 없다는 점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안에서 아픔도 상처도, 갈등도, 시험도 있게 됩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청소년기가 되면 성장통이라는 것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것은 특별한 질병이 아닙니다. 도리어 신체가 성장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통증입니다. 우리의 신앙 성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에안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것이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들을 신앙의 성숙을 위한 영적 성장통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성장통이 무섭고 싫어서 안자라시겠다고요? 비바람이 싫어서 밭을 떠나겠다고요? 세상에는 그런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바보 같은 신자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안에서의 아픔과 고통을 신앙 성숙의 너무나도 당연한 과정으로 보며, 올바른 태도를 갖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교회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고, 공동체안에 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왜 성숙해야 하나?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우리들이 성숙한 신자가 되어야 할 이유?” 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우리들이 성숙한 신자가 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 능력있는 신자, 잘 감당하는 신자가 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 9절에서는 그 이유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계획하시고 뜻하신 일들을 이루신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이든지 사람을 통해서, 특별히 우리 신자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창세때부터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원칙인 것입니다. 예들들면, 창조된 세상을 다스리는 것도 아담을 동역자로 하셨고,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의인들과 동물들을 보전하는 일에도 노아를 동역자로 쓰셨고, 애굽의 포로였던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에 모세를 동역자로 쓰셨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땅을 주실 때도 여호수아를 동역자로 쓰셨고, 가나안 정착 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면하고 책망하는 일에 사사들과 선지자들을 동역자로 쓰셨고 ..., 등 이와같이 하나님은 사람을 동역자 삼아 일하시는 원칙을 가지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누군가를 사랑해주실 때에도 사람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실 때에도 사람을 통해서, 누군가를 구원하시는 일에도 사람을 통해서, 누군가를 책망하고 권면하실 때에도 사람을 통해서, 특별히 누군가의 기도를 응답하실 때에도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이러한 모든 일들을 우리, 곧 나를 통해서 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더 좋은 동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더욱 성숙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서로의 동역자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함께 하다보면, 누군가의 흠과 단점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은 내가 보는 상대방의 흠이 내안에도 동일하게, 또는 그것보다 더 못된 구석이 있다는 것을 깨달게 하시기 위한 교훈적 이유 때문입니다.(마7:1-6절을 보면 티, 들보비유)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의 흠과 약점을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줌으로 그것이 장점이 되게 하도록 하시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동역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더욱 성숙한 신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동역자, 서로의 동역자라는 동역자 의식을 갖어야 합니다. 이런 동역자의 마음을 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신자의 성숙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더 능력있게 합니다.
 본문과 삶
  1)성숙의 기준은 말씀의 원칙,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성숙을 위해서 우리는 교회 공동체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3)우리가 성숙해야 할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 그리고 서로를 동역자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이 어린아이 같이 성숙하지 못한 신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도리어, 말씀의 원리가 통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섬겨주는 성숙한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서로에게 더 좋은 동역자가 되어 함께 성숙해 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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