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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설교는 중요합니다!(고린도전서강해6)
 본문말씀 : 고전2:1-5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4.5.28
조회 : 7,614   추천 : 0  
본문 : 고전2:1-5절  고린도전서 강해6
제목 : 설교는 중요합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어느 초등학교 학생이 ‘선생님’이라는 제목으로 지은 글을 소개합니다. 우리 엄마는 선생님이시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서 선생님이 아니라 잔소리가 많아서 선생님이시다. 내가 잘못을 하면 엄마는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그리고 잊을 만하면 또 이야기한다. 그것도 부족해서 퇴근하고 들어오시는 아빠에게 잊지 않고 꼭 일러바치신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선생님이시다. 이처럼 잔소리를 잘하는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라는 표현보다 더 자주 사용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설교한다’라는 말입니다. 예를들면, 아내의 잔소리를 듣는 남편들이 아내에게 설교 그만해.., 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런 표현이 쓰인다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설교를 지루하고 반복되는 잔소리 정도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설교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설교를 특별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바울의 설교관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설교가 무엇인지, 설교를 들을 때에 어떤 마음을 갖어야 하는지, 그리고 설교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앞으로 더욱 설교를 사모하여 듣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설교가 무엇인가?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을 쉽게 말하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설교 할 때에’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처음 설교했을 때를 상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3절을 보면, 바울이 설교를 할 때 대단히 힘들었다고 회상을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잠시 후에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서 1절 하반절을 보면, 설교를 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4절에 ‘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다시 2절에 설교 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신 것’ 만 전하고, 4절에 ‘성령의 나타남과 성령의 능력’ 으로 전했다고 말을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첫 번째로 묵상할 것은, “과연 설교는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물론, 설교가 무엇인가를 가장 정확히 알아야 할 사람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올바른 설교사역을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교를 듣는 성도들 역시 설교가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설교가 무엇인지 모르고 설교를 듣는다면 신앙의 유익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공부하는 아이들이 내가 왜 공부하는지 모르고 공부한다면, 결코 공부를 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설교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설교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보통 사람들은 설교를 어려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듣기 쉽게 풀어 설명해주는 시간이라고 이해를 합니다. 물론,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설교자들은 성도들이 알아 듣기 쉽도록 설명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 듣기 쉽게 설명해주는 것이 설교의 핵심은 아닙니다. 도리어 이것은 성경공부에 가까운 것입니다. 설교와 성경공부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설교는 무엇일까요? 2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설교란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보면,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백성들이 자리에서 일어서거나 또는 땅에 엎드렸다 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주일예배시간에 일어서는 것) 그것은 선지자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 곧 선지자의 설교를 하나님과 만남으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설교를 들을 때에 비록 하나님은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설교 시간을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확신을 갖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설교자인 저는 더 큰 책임감을 갖어야 하고, 여러분은 더욱 두려움을 품어야 합니다.

 둘째로, 설교란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만남 가운데 ‘말씀’하시는 시간입니다. 즉,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야단하시려는 것이 무엇인지? 칭찬과 위로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에, 다른 누군가를 향한 말씀이 아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들이 결단을 하고, 반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설교가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임을 확인했습니다. 이처럼 설교는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이후로 설교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설교에 대한 기대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바울이 처음 고린도의 사람들에게 설교할 때의 심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고린도에서 1년 6개월간 설교하는 가운데 한결같이 느꼈던 심정입니다. 보시면,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 말을 합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성경을 13권 또는 14권을 기록한 그 위대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처음 설교할 때, 그리고 설교 할때마다 이처럼 굉장한 두려움과 절망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인 고린도 사람들이 ‘기대’ 때문입니다. 고린도의 사람들은 바울의 설교든, 누구의 강연이든 들을 때 가지고 있었던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에 대한 기대, 감동적인 연설에 대한 기대, 특별히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그럴만한 웅변력이 없었습니다. 고후10:10절을 보면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에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에게는 뛰어난 학문과 철학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고, 감동적이게 설명하는 웅변력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이 점을 짐작하게 하는 사건이 행20장의 유드고 사건입니다. 즉,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드고아에서 밀레도로 가기 위해 드고아의 성도들에게 마지막 설교를 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고별설교를 듣고 있던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다가 그만 3층에서 떨어져 죽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행20:9절을 보면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라고 말을 합니다. 이처럼 바울의 웅변력이나 설교에는 매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에서 설교하는 것이 두려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바울의 결심은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방식인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설교를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을 보면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어떤 철학과 논리로 설교하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그것이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에 오기 이전에 2)아덴에서의 설교의 실패 때문입니다. 행17장을 보면 바울이 철학과 학문의 도시인 아덴에 들어가서 설교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덴사람의 철학적인 사고와 요구대로 철학적이고, 논리적이고, 신선하게 설교를 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행17:17,18절을 보면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 할세’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행17:32-34절을 보면, ‘혹은 기롱하고, 혹은 다시 듣겠다...., 몇 사람이 믿으니’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바울에게 큰 충격이었고, 잘못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덴 이후에 도착한 고린도에서는 결코 고린도사람들의 요구대로 철학이나 논리적, 감동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귀를 만족시키는 설교하지 않을 것을 결심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고린도인이 요구한 철학적, 지적, 감동적, 신선한 내용의 설교, 즉 그들이 원함을 만족 시키는 방식의 설교를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설교를 들으며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까? 혹시 새로운 깨달음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감동이나 웃음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고, 축복을 전해주는 그런 설교를 기대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원하는 말을 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습니까? 결코 여러분의 귀를 즐겁게 하고,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을 주는 설교를 기대하시면 안됩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설교를 듣기 위해 교회에 오면서, 설교를 들으면서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예배에 나오고, 설교를 들으면서 어떤 기대감이 있습니까? 아니면 없습니까? 물론 기대가 없는 것은 설교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 전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예를들면, 기도하면서도, 봉사하면서도, 섬기면서도, 성경을 읽으면서 아무런 기대감이 없을 때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기대감이 없다는 것은 영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 시간이 지루하고, 졸립고, 조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설교 시간에 기대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가 설교시간에 가장 기대해야 할 것이, 바로 “십자가”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2절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바울의 설교의 주제는 항상 십자가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설교는 무엇입니까? 늘 설교시간에 십자가 타령만 하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십자가를 주제로한 설교는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라는 사실(우리의 입에 독사의 독, 우리의 발은 피흘리는데 빠름, 하나님을 두려움함 없는 마음),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을 살아갈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전적타락, 전적부패),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 더나가서 말씀으로 지적받지 않으면 자신이 잘난 줄 알고 살아가는 교만한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는 설교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하셨기에,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내 삶을 고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선포하는 설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설교를 들을때마다 기대해야 하는 것은, 축복과 위로의 메시지만이 아닌, 여러분 자신안에 감추어진 죄가 지적되는 설교, 여러분의 교만과 욕망을 지적하는 설교, 내가 원하는 삶을 내던지고, 주님의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강력한 요청의 설교를 기대하고 기뻐하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결코 십자가의 설교를 싫어하면 안됩니다.  바로 이것이 설교시간에 우리가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 설교를 기대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3.설교를 들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제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설교를 들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서입니다. 설교를 통해 일어나는 일을 2가지로 말씀드립니다. 첫째로, 설교를 들을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5절에 ‘너희 믿음이 시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말을 합니다. 즉, 믿음은 설교를 들을 때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롬10:17절에서도 확인할수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으니라’ 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설교를 들으셔야 합니다.  둘째, 신자의 삶에 변화가 시작됩니다. 너무나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더욱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참고로, 참된 믿음이란 변화가 나타나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설교를 사모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집중해서 아멘으로 들을수 있기를 바랍니다. 딴 생각하지 말고, 졸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미국 농담에 “거북이 교인(turtle christian)”이란 말이 있다고 합니다. 보통 새는 9일간 먹지 않고 살 수 있고, 사람은 12일간 살수 있으며, 개는 20일간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북이는 500일을 먹지 않아도 살수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사는 신자들을 비유한 말입니다.
 본문과 삶
  1)설교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입니다.
  2)특별히 설교를 들을 때, 기대감,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죄와 삶에 대한 지적을 기대해야 합니다.
  3)이런 기대로 설교를 들을 때, 여러분에게 더욱 믿음이 자라고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이 설교자인 저를 위해서 4절과 같이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 있는 설교”가 되도록 기도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설교를 들음을 통해서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고, 삶이 변화되는 은혜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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