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꿈이 없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 그리고 잘하는 것 까지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왜 이렇게 청소년들이 꿈이 없는 것일까요? 바로 대학 입시에 맞쳐진 교육현실과 함께 황금만능주의로 인해 돈만 있으면 다 된다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꿈보다는 세상이 좋은 직장에서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알다시피 이런 기준이 행복을 이끄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자로서 세상의 기준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기준대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들이 사람의 기준이 아닌 성경의 기준으로 무엇을 구해야 할지 말해주는 구절입니다.
1.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은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하면서 해석하기를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간구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만약에 응답이 안되거나 따른 방식으로 응답이 와도 실망하지 않을 것은 그것은 우리의 미래를 아시고 앞길을 아시는 주님께서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희망을 가지곤 합니다. 그런데 제가 공부하다보니 이 본문은 기도에 관하여서 쓰는 것도 맞기는 하지만 그런 해석이 성경에서 말하는 부분을 조금 약화시킨 것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실은 오늘 본문을 보면 조금 문맥이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문 두드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면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고 하면 뱀을 주느냐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도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합니다. 그러고나서 그러므로 하고 남의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마지막 구절이 조금 문맥이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구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그러기 위해서 마태복음 22:37-40(신약38)을 찾아 보아야 합니다. 이 구절은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어느 계명이 큰지 물어봤던 장면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두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는 것입니다. 강령은 근본이 되는 큰 줄거리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구약은 율법과 선지서가 있지 않습니까? 이런 구약의 큰 줄거리가 이 두 계명입니다. 근데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두 계명이 한 가지 임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25:40에 보면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나옵니다. 잘 생각 해봅시다. 보통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줄 알지만 이웃을 사랑하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이웃을 섬기고 헌신하는 행동을 함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원래 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7:12에 보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남은 이웃이 될수도 있고 하나님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럼 생각해봅시다. 구하고 찾고 문 두드리라는 것이 흔히들 얘기하는 기도만을 이야기 하겠습니까? 이 본문의 중점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바로 단시간에 기도할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의 인생가운데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지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한단어로 사명, 소명, 비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2. 자신의 비젼을 무엇입니까?
그런데 여기서 비젼은 무엇입니까? 꿈과 비젼을 이야기할 때 꿈은 우리가 원하는 것, 비젼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조금 약화된 표현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비젼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쓰이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에게만 쓰여야 합니다. 봅시다. 비젼을 이야기할 때 우리들은 흔히 아브라함, 요셉, 다니엘, 바울 등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꿈을 향해 갔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꿈이 바로 이스라엘 나라의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야기합니다. 한마디로 비젼이라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의 꿈을 넘어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지는 나의 역할을 이야기합니다. 다른 말로 부르심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구하라는 단어가 ‘분배된 몫을 요구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인격적인 것은 이런 비젼에 쓰임 받는 우리들의 역할이 우리와 상관없는 일로 사용하시지는 않습니다. 나 자신이 재능이 있는 것,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 때로는 제일 약한 부분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알아가는 것은 꿈을 알아가는 것이고 그것이 곧 비젼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이런 비젼을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구하라는 것의 또 다른 뜻으로 ’끊임없이 구하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젼에 대해서 단순히 기도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전 인생을 걸쳐 구하고 찾기도 하고 문도 두드리기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신들의 비젼을 잊고 계시진 않으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찾지 못하셨습니까? 우리들의 전 인생을 걸쳐서 이런 비젼을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오늘 기도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비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교회의 부흥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구하시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한분 한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3. 비젼은 젊은이만의 것이 아닙니다.
실은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 과연 우리 권사님, 집사님에게 맞는 것일까라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차라리 학생부에게 이야기하면 맞겠다는 생각이 한때 들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니 꿈을 꾸는 것을 젊은이으로만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전도서에 나오는 청년은 외모적인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부름 받는 자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갈렙은 자신의 나이가 85세 였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정복하지 않는 땅을 자신이 개척하겠다면서 하나님께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간구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왜 부르셨는지에 대한 목적에 눈을 뜰 때 청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엘서 2:28에서는 “그후에 내가 내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것이며”라고 나옵니다. 요즘 뉴스를 접하다보면 어떤 할머니가 중학교를 학생들이 다닌다라는 것들이 많지 않습니다. 대학교를 가봐도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있어서 자신의 인생을 다시 새롭게 할려고 노력합니다. 이처럼 꿈을 가진 사람은 인생의 활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의 활력이 있고 열정이 생기며 또한 우리가 세상에 살아갈 목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다시금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인생가운데 주신 비젼을 고민하시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릴 것은 바로 비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청년은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비젼을 찾아가는 것은 우리의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 우리의 인생의 활력과 열정을 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여기 모인 모두가 청년의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교회가 부흥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역할을 알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