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1:4-9절 고린도전서강해2
제목 : 구원은 회복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이번 세월호 침몰 참사와 관련되어 등장한 이단이 있었습니다.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구원파라는 이단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구원파의 가장 잘못된 교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크게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는 말하지만, 구원받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잘못된 구원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는 곳에는 세월호 사건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고린도교회와 성도들에게 일어난 문제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바로 잘못된 구원관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지금 보다 더 나은 신자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구원은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크고 깊고 위대한 사랑에 대해서 묵상했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지난 시간 살펴본대로 고린도교회와 성도들에게 대단히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분쟁, 성적타락, 차별, 우상숭배, 이혼, 교만..., 등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교회와 성도들을 ‘하나님의 교회’ ‘거룩하여진 성도’ 쉽게 말하면, ‘내 교회 내 성도’ 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고 위대한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처럼 서로를 좋게 봐주고, 하나님과 서로를 더욱 사랑해야 한다는 점을 묵상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살펴볼 내용은, 그렇다면, 고린도교회와 성도들의 삶속에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생겨나게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구원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 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먼저 묻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죄 용서를 받은 것,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뀐 것, 죽어서 천국 갈 약속을 받은 것..., 다 맞습니다. 그러나 굳이 점수로 말하면 50점짜리 답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일부분만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무엇입니까? 먼저,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분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이미 받았습니까? 아니면, 구원을 받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나중에 구원을 받을 것입니까? 더 간단히 묻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까? 앞으로 받을 것입니까? 여러분의 대답에 도움을 줄만한 몇개의 성경구절을 말씀을 드립니다. 먼저, 엡2: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또, 빌2:12절에 ‘항상 복종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또한, 마10:22절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을 합니다. 이제 대답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느게 맞는 것입니까? 이미 받았습니까? 지금 받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중에 받을 것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이 3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칭의) 그러나 구원을 완성해 가야합니다.(성화) 그리고 결국에는 구원이 완성 될 것입니다.(성화)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구원을 말하는 것일까요? 무엇을 강조하기 위함인가요? 그것은 구원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과 출발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끝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애굽땅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났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그들을 시내산으로 인도하시고 거기서 십계명의 2돌판을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원 받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을 말해주고,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을 요구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삶의 시작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시작하는 것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구원을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신자답게 살수 있겠습니까? 더 신앙생활을 잘하고 열심히 할수 있겠습니까? 그럴수 없습니다. 도리어 마음대로 살고, 방종하게 됩니다. 고린도교회가 그랬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다 되었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 결과 구원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구원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갖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음대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왜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지 못합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구원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구원이 끝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으로 힘써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점을 알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우리들이 힘써야 할 의무와 책임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죄 이전의 아담과 하와로 회복되는 일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 이전의 아담과 하와로 회복을 시작하신 사건인 것이고, 우리들은 회복을 이루어 가는 것이 바로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시작된 회복을 이루기 위해 당연히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조금 다른 각도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예배시간 되면 교회가서 예배드리고, 하루에 몇장씩 성경읽고, 하루에 얼마동안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등 맞습니다. 그렇다면, 예배는 왜 드려야 합니까? 성경은 왜 읽어야 합니까? 기도는 왜 해야 합니까? 하라니까? 그래야 은혜를 누리니까? 복받으려고? 물론, 다 틀린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관점에서 답을 찾는다면, 범죄하기 이전의 아담과 하와의 모습으로 회복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이유이고,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엉뚱한 목적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모습속에서는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모두가 죄 이전의 아담과 하와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일에 힘쓰는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2.어떻게 회복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들이 첫사람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요? 2가지 방법을 바울은 말합니다. 첫째는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고린도교회와 성도를 향한 바울의 감사로 시작을 합니다. 4절에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이 감사하는 교회와 성도는 어떤 모습입니까? 정말 감사할만한 교회이며, 성도의 모습입니까? 아닙니다. 감사는 고사하고, 한 대 쥐어 박고 싶을 정도로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아있는 교회이며, 야단 쳐도 속이 풀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향해 치욕적인 비방을한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은 고린도성도들에게 너희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감사를 들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감동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감사가 회복의 충분한 발판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회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게된 가장 중요한 요인중 하나가 감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감사하게 될 때, 우리의 모습이 회복될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감사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혹시, 감사는커녕, 원망과 불평을가지고 살지는 않았습니까? 그러시면 안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요청, 명령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감사를 명령한다는 것은 이미 감사할 것을 주셨다는 말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감사할 것을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그얼다면, 왜 우리들은 감사하는 삶을 살지 못할까요?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원망거리와 불평거리만 찾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배우자, 자식, 직장, 형편..., 등을 보면서 분명히 감사할 것이 있을텐데, 감사가 아닌 불평거리만 찾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특징인 것입니다. 둘째는, 지금 내게 없는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감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교회와 성도들을 보면 감사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본문 4절을 자세히 보면 바울의 감사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너희에게 주신”입니다. 다시말해면 지금 고린도교회와 성도들에게 없는 것이 아닌,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 때문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5절에, 모든 일, 구변, 지식..., 등 있는 것을 보며 감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 내게 없는 것만을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내게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바울처럼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지금만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바울의 또 다른 감사의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고린도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나중의 모습을 내다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나중을 내다 볼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망원경과 같은 것입니다. 멀리 내다 볼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에 감사가 많아질 때, 신앙의 회복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교제가 필요합니다. 9절을 보면, ‘너희를 ...,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완전한 교회, 완전한 신자는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더 좋은 교회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마시고, 여러분이 더 좋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 부름 받았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완전한 교회, 완전한 성도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하지 못함을 당연하게 여기면 안됩니다. 지금 문제 많은 고린도교회와 신자들의 회복을 위해 바울이 제시하는 것은 “교제”입니다. 교제의 첫번째 대상은, 주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교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주님과 교제를 하게 되면, 회복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방법, 곧 예배, 큐티, 기도..., 등을 통해 주님과 교제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둘째는, 성도의 교제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은 왜 우리들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하실까요? 왜 혼자가게 하지 않으실까요? 그것은 함께 하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첫사람으로의 회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함께 할 때, 신앙의 회복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상당히 많은 신자들은 함께 하는 것보다, 홀로 하는 것을 좋아 합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물론, 함께 교제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일에는 어려움도 있고, 상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함께 교제하는 것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함께 할 때, 회복의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도의 교제의 핵심은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어야 합니다. 이런 신앙의 교제를 통해서 회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서로 열심히 교제함으로 은혜도 누리고, 회복도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3.회복의 이유?
혹시, 여러분 중에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은 계실 것입니다. ‘꼭 회복이 되어야 하는가?’ ‘회복이 안되면 천국에 못가나?’ 아닙니다. 회복되지 않는다고 지옥가는 것은 아닙니다. 회복이 부족해도 천국에 가는 일에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회복을 위해서 힘써야 할까요? 2가지로 이유를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여러분이 더 많이 회복 될수록 더 많은 행복과 천국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우리들이 중한 병에 걸렸는데 회복이 되지 않을 때에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건강이 회복되어질수록 행복과 기쁨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첫 사람의 모습으로 회복되어 질수록, 더 많은 행복과 기쁨과 천국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러분이 더 많이 회복될수록 하나님과 서로를 더 잘 섬길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회복이 부족했을 때에 그들은 섬김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복된 이후에는 하나님과 서로를 더 잘 섬길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들이 회복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내 자신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서 이며, 더 나가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섬기기 위함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구원은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본문과 삶
1)특별히 죄 이전의 첫 사람으로, 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지는 것입니다.
2)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감사할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과 서로간의 복된 교제를 갖어야 합니다.
3)그리고 우리가 더 회복될수록 많은 기쁨과 행복, 섬김의 삶을 살수 있는 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회복을 위해 힘쓰는 신자가 됨으로,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누린 행복과 복됨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