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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하나님의 크신 사랑!(고린도전서강해1)
 본문말씀 : 고전1:1-3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4.4.23
조회 : 7,308   추천 : 0  
본문 : 고전1:1-3절  고린도전서강해1
제목 : 하나님의 크신 사랑!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1895년 노르웨이 탐험가인 난센이 북극을 탐험하던 중 바다의 깊이 제기 위해 밧줄을 바다에 넣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깊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밧줄로는 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날 난센은 더 긴 밧줄을 구해다가 바다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너무 깊어 잴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일기에 난센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고 합니다. ‘이 북극의 바다는 하나님의 사랑 만큼이나 깊다. 끝을 알수 없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다 헤아리거나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깊으십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가를 말해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시고, 우리도 하나님과 이웃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결단이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문제 많은 고린도교회 성도들
 먼저, 고린도 지역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합니다. 먼저, 고린도 지역은 오늘날 그리스의 항구도시입니다. 그러기에 성적으로 대단히 문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왕래와 거주가 늘어나면서 30개가 넘는 이방우상들이 세워진 우상천지였습니다. 즉, 고린도지역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 대단히 쉽지 않은 곳입니다. 마치 제주도와 같은 곳이고, 일본과 같이 전도와 선교가 대단히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린도를 처음 본 바울의 첫 느낌은, 행18:9절을 보면 ‘두려움과 눌림’이었다고 표현을 합니다. 이처럼 고린도지역은 심각한 영적인 절망감이 느끼질 만한 곳이었습니다.

 이제 고린도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점은 행18장에 자세히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아덴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고린도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2-3절을 보면, 그곳에서 천막제작자인 ‘아굴라(남편)와 브리스길라’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4-6절을 보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흩어진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향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제목으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들의 반대에 의해서 회당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지역에서 복음 전파를 포기하지 않고, 7절을 보면,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에서 계속해서 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러자 8절을 보면, 고린도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의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를 시작으로 고린도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1절을 보면, 바울은 그렇게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로 가르침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AD50-52년경 세워진 것이 바로 고린도 교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고린도교회는 많은 교회가 부러워 할정도로 대단한 면이 많았던 교회입니다. 예를들면, 고린도교회는 교리에 대한 지식이 탁월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지식에 대한 열정도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는 매우 많은 성령의 은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인, 예언과 방언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성도들이 방언을 하고 많은 성도들이 예언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교회는 성도의 교제, 오늘날로 말하면, 셀, 목장, 구역과 같은 모임이 대단히 활성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에는 베드로, 아볼로와 지도자들의 가르침도 대단히 풍성했던 교회입니다. 뿐만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어쩌면 바울이 세운 수많은 교회 가운데 가장 지적이고, 능력과 은사가 많고, 부족함이 없는 가장 현대적인 교회일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에 이런 장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우고 떠난지 약 3-4년이 지난 후에 고린도교회안에 심각한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이 바울에게 들려졌고,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고 권면하기 위해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안에 있었던 문제들은 무엇일까요? 예를들면, 분쟁(1-4장), 음행(5장-서모), 성도들끼리의 법정 소송, 사기, 성적타락(6장), 심각한 외도와 이혼(7장), 교만(8장), 우상숭배(10장), 차별(11장),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12,14장).., 등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 사람들과 다를바 없는, 도리어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악한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이처럼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인 사고인 ‘이원론 사상’ 때문입니다. 쉽게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신앙 따로, 삶 따로 라는 이원론 사상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신앙과 삶에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교회에서는 성도로, 교회 밖에서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신앙과 삶이 따로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의 몸과 영혼이 하나이듯, 우리의 신앙과 삶 역시,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 점을 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의 모습과 삶에서의 모습이 다르게 된 것입니다. 마음대로 살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혹시, 신앙과 삶이 분리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지킬박사와 하이드, 아수라백작은 아닙니까? 예를들면, 교회에서는 칭찬을 받는 신자이지만, 가정이나 일터에서는 전혀 딴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신앙과 삶이 분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결코 건강한 그리스도인, 또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신자의 모습은 신앙과 삶이 일치되는 모습, 곧 교회안에서와 교회 밖에서의 모습이 일치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신자의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의 크고 깊은 사랑
 우리는 지금까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신앙과 삶을 따로 생각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났다는 점을 묵상했습니다. 정말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심각한 죄로 얼룩진 고린도교회를 향해 바울은 2절에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신앙과 삶이 분리된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을 향해서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성도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성도라는 말을 구약의 용어로 바꾸면,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바울이 지금 하나님의 교회, 그리고 성도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말하기도 부끄러운 죄를 거리낌없이 지었던 자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 자신을 향해서, 십자가 밖에는 전할 것이 없는 무식한 사람, 그리고 설교에 힘이 없고, 외모는 볼품없고, 더욱이 자비량하는 바울 자신을 향해서 돈만 밝히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사도가 아니라고 가짜사도라고 비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을 향해 ‘너희가 무슨 그리스도인이야!’ 라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리어 그들을 하나님의 교회이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바울 혼자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여기신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마음과 다르게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못나고, 형편없고, 부끄러운 자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나의 교회, 거룩한 나의 성도’라고 불러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대단히 크고 깊고 위대한 사랑”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젤 수 없고, 깊이를 알 수 없고, 위대함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와 깊이와 위대함은 ‘하나님’이라고 밖에는 표현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한한 분이시고 영원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8:35-36절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크고 깊고 위대합니다. 이 점은 성경전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 홍수이후 노아와 인류에게 주신 무지개언약,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범죄한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하나님으로서의 권리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고, 인간을 대표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통해 가장 명확하게 증거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2000년전 고린도교회와 성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 사랑하는교회를 향한 말씀이며, 우리 성도들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사랑하는교회는 이제 8살이 되어 갑니다. 그러나 아직 당회도 없고, 제대로된 조직도 없고, 성도도 몇 명 안되고,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연약한 것 투성이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거려지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한님은 그런 우리 사랑하는교회를 사랑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과 신앙은 있지만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보다는 세상의 것들로 인한 기쁨을 더 좋아하고, 한주간을 살면서 성경도 읽지 않고, 기도 30분도 안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보지 못한체 살아갑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사랑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상상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깊고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와 우리 성도들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시다.

  3.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3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로, 자신을 고쳐가십시오! 그렇습니다. 교회와 성도로서 부족하고 못났지만 사랑해주심에 감사만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도리어 교회의 부족한 것, 자신의 못난 것을 고쳐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교회와 성도들의 당연함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마치 ‘정치적인 망명’과 같습니다. 예전에 북한대사관의 직원들이 한국대사관으로 망명을 요청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북한의 체제를 버리겠다는 말입니다. 즉, 지금까지는 북한의 통치아래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대한민국의 통치안으로 들어오겠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지금까지 받아온 죄의 통치를 거부하고, 이제 하나님의 통치를 받겠다는 결심입니다. 그러므로 1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을 기준으로 교회를 고쳐가야 하고, 성도들은 자신들의 모습, 삶을 고쳐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저녁 이런 결심을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여러분도 교회와 서로를 좋게 봐주십시오! 하나님은 교회와 우리를 좋게 봐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을 너무 쉽게 폄하 나쁘게 보는 실수를 범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좋게 봐주신다면 여러분도 교회를, 그리고 서로를 좋게 봐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주님의 피 묻은 눈으로 교회와 서로를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배우자와 자식과 직장동료를, 이웃을 그렇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와 서로가 더 온전하게 세워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점은 고린도후서에서 확인할수 있습니다. 즉, 고린도전서는 문제점을 언급했다면, 고린도후서는 그들에게 사명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서로를 좋게 봐줄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한가지를 더 말씀을 드립니다. 셋째, 교회와 서로가 온전해 지기를 기다려주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은 고린도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방식이 무엇입니까? 좋게 봐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온전해지기를 기다려주는 것입니다.(8절 참고)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잘 느끼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은 교회와 성도들을 바라보며 기다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은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13장에서는 사랑을 10여가지로 말합니다. 그러면서 가장 강조한 것이 오래참음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말할 때, 오래참으로 시작해서 견딤(오래참음)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기다려 주심이라는 사랑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가 다시 결심하고 힘있게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도 교회를 향해, 서로 향해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를 기다려주십시오! 자식을 기다려주십시오! 직장동료와 이웃을 기다려 주십시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사랑은 크고 깊고 위대하십니다.
 본문과 삶
  1)그래서 부족한 교회, 못난 성도들을 사랑해주십니다.
  2)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런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하십시다!
  3)그리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자신을 고치고, 교회와 서로를 좋게 봐주고, 
     온전해 질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는 신자가 됩시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이번 고린도전서 강해를 통해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주시는 권명을 통해서, 더 나은 신자로 성숙해져 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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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동문 14-04-24 13:44
 
주님께서 주신 각 사명의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리며, 기뻐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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