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책장에서 책정리를 할려고 이런 저런 책을 살핀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책 속에 만원짜리 몇장을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이 몇만원이 있었던 적에 기뻐했습니다. 예전에 아낄려고 책속에 넣던 것을 깜빡했던 것을 다시 찾은 것인데 마치 로또 당첨된 것처럼 세상말로 땡잡은 것처럼 기뻤던 적이 누구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왔을 때입니다. 오늘 말씀은 한 영혼이 돌아오는 기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잃어버린 양은 누구입니까?
오늘 본문은 알다시피 잃은 양을 찾는 목자 비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비유를 예수님께서 얘기하신 이유가 1~2절 말씀을 통해서 배경으로 설명되어져 있습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가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수군거리며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우리들일 알다시피 세리와 죄인은 짐승 같은 존재였고 그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모습을 보시고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 비유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여기서 질문할 수 있는 것은 잃어버린 양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7절을 보면 죄인 한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 기뻐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아마도 세리와 죄인만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하면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비판이 잘못된 것임을 비유로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비유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죄인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 속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같은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의 연차가 쌓인 신자가 많이 저지를 수 있는 죄가 바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7:3을 보면 형제의 눈에 티는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냐고 이야기합니다. 다른 말로 우리들은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형제 눈에 티는 보는 연약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비판하는 것처럼 들려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하셨을 것입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 형제를 위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가 누구에게 권면을 할 때는 ⓵ 내 신앙이 온전한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⓶ 내가 그 형제를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혈기를 부려서 비판하는 것인지를 생각해야합니다. 결국은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잃어버린 양이 바로 세리와 죄인뿐만 아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포함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우리들에 대해서 가깝고도 먼 당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 자신이 회개하지 않는 잃어버린 양이 아닌지 고민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죄인이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오늘 비유를 살펴보면 어떤 목자가 양 100마리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일 약한 1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서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목자는 이 한 마리 양을 위해 나머지 99마리의 양들을 들에 두고 찾아 다닙니다. 본문을 보면 찾는다는 말이 세 번 쓰여진 것으로 보야 목자가 양 한 마리를 얼마나 간절히 찾아다녔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 양을 찾았을 때 목자는 즐거워하여서 어깨에 메고 집에 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양 한마디를 찾았을 뿐인데 벗과 이웃을 불러서 잔치를 열었다는 것입니다. 이 목자가 얼마가 기뻤으면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잔치를 베풀었겠습니까? 5절을 보면 목자가 양을 찾아서 즐거워하여 어깨에 메고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석을 보면 이 즐거움이 단순이 웃는 것이 아니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흥분되는 즐거움을 표현되는 단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초반에 책 속의 몇만원을 돈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엄청났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로또 맞은 것도 아니고 내 것을 내가 찾았는데 기뻐할 이유가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때는 기뻐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찾았던 것에 대한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돈도 이렇게 찾으면 기뻐할 수 있는데 하물며 한 영혼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돌아왔다고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또한 부모 싫다고 가출한 자식이 잘못했다고 돌아온 안도감과 기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4월 20일 부활절날 새생명 전도축제로 태신자들을 작성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매주 태신자 작성하는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기대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이 들었던 것은 물론 우리가 작정한 모든 사람들이 잘 정착했으면 기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 영혼이 정말 잘 정착한 것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은 전도라는 것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라는 것은 믿음 없는 사람에게 믿음 있게 하는 것인데 잘 생각해보면 믿음은 우리들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전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때문에 한영혼이라도 주님께 돌아오게 된다면 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이 작정한 태신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리고 새생명전도축제를 위해 기도로 준비하면서 그날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기쁨을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3.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자
그런데 본문을 살펴보면 목자가 이 기쁨을 벗과 이웃들과 함께 하기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양 한 마리를 찾았는데 잔치까지 열 정도면 얼마나 기뻐했을까를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잃은 양 비유 다음에 잃은 드라크마 비유를 보면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을 때 벗과 이웃을 불러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후 나온 탕자 비유를 보아도 잔치를 베풀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탕자비유에서는 그 형이 동생을 위한 잔치를 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32절을 보면 “동생이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열린 잔치는 기쁨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이런 기쁨에 동참해야 함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비판한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권면하셨을 뿐만 아니라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기쁨에 동참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은 나 자신을 통해서 한 영혼을 돌아오게 하는 기쁨만큼이나 남을 통해서 전도된 한 영혼으로 인해 기쁨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들도 같이 기뻐하는 것이 신자다운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마디로 내가 전도한 영혼뿐만 아니라 남이 전도한 영혼에 대해서 기뻐하고 동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한 영혼이 교회 왔을 때 정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기쁨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기 위해 새신자들을 섬길 수 있는 한가지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기쁨에 저와 같이 동참하지 않겠습니까? 생각해보면 많을 것 같습니다. 웃으면서 인사하기, 커피 타드리기, 편지쓰기 등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영혼이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임을 기억하면서 이 기쁨에 동참하여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내 자신이 회개하는 것이며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자로서 이런 기쁨에 동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우리가 신자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는 은혜가 일어나는 사랑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