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눅9:51-62절
제목 : 하나님이 기대하는 신자의 모습?
성도들의 삶속으로
부모라면 모두 자녀에 대한 기대를 갖습니다. 예를들면, 공부를 잘하는 것, 건강하게 자라는 것, 부모의 말을 잘듣는 것,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갖는 것, 조건 좋은 배우자 만나는 것..., 등 이렇듯 우리 하나님도 자녀된 우리 신자들을 향해서도 큰 기대를 갖고 계십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신자의 모습에 대해서 소개해 주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대하는 신자의 삶을 확인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마음이 넓은 신자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있었던 일을 소개합니다. 조금더 자세한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먼저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십니다. 아마도 마지막으로 사마리아사람들과 만남을 위해서 사마리아길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이었던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때 54절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은 반대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향해 분노가 일어나 예수님께 하늘에서 불을 내려 진멸시키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꾸중을 듣습니다. 그리고 57절을 보면, 가시는 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온 사람이 있었고, 그리고 5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먼저 누군가에게 제자의 삶을 살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 가운데 나타난 3부류의 제자(현직, 먼저 찾아온, 주님이 제안한)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님이 기대하시는 신자의 첫번째 모습은, 마음이 넓은 신자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 5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가기를 원했지만, 민족적인 감정으로 인해 사마리아성 사람들이 반대를 합니다. 그때 현직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에게 하늘에서 불을 내려 반대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다 죽이자고 제안을 합니다. 왜 이런 제안을 했습니까? 자신의 계획, 생각, 마음에 반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49절을 보면, 세례요한이 자신들과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하였다고 자랑처럼 말을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제자들을 꾸짖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참 속 좁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지금 속좁은 제자들을 꾸짖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속 좁은 신자는 아니십니까? 밴댕이 신자는 아닙니까? 작은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작은 실수도 관용하지 못하는, 또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고 반대편의 사람들을 향해, 하늘에서 불이라도 내려 진멸시키고자 하는 속좁은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신자들이 항상 넓은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즉, 바다같은 마음, 호수와 같은 마음, 무엇이든 다 품어줄 수 있는 그런 마음 말입니다. 성경은 마음을 밭이라고 비유를 합니다. 여러분 속이 좁은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마치 좁은 밭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좁은 밭에서는 결코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그러나 넓은 밭은 참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속 좁은 신자에게는 신자로서의 많은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넓은 마음을 가진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마음이 넓으신 분이지 아시지요? 우리가 하나님처럼 마음이 넓은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2.섬김이 있는 신자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기대하는 신자의 두 번째 모습은, “섬김의 삶을 사는 신자의 모습”을 기대하신다는 것입니다. 57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다” 라고 말을 합니다.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스스로가 먼저 주님을 찾아와 제자로서의 헌신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결심을 한것입니까? 그러나 주님은 곧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인자는 머리둘곳이 없다’고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그것은 지금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온 사람의 마음을 주님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온 그 사람의 마음속에 예수님의 제자가 됨으로 인기를 누리고, 영광도 누리고, 무엇보다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마음과 기대가 있었다는 것을 주님께서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보다 더 높은 자리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머리둘 곳도 없다, 즉 원하는 것을 줄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떤 신자입니까? 혹시, 높아지고, 대접받는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신자는 아닙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신자는 높아질 것을 꿈꾸는 신자가 아니라, 모든 사람보다 낮아져서 모든 사람을 잘 섬기는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역시 예수님처럼 섬김이 목적이 되고, 섬김이 이유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섬김이란 무엇일까요?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섬김이라는 것은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사는가? 입니다. 특별히 사도바울은 섬김을 종의식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즉, 서로의 종의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코 높은 것을 꿈꾸고 기대하는 신자가 되면 안됩니다. 우리 신자들 모두가 섬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사명을 우선순위로 최선을 다하는 신자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신자의 모습은, 주어진 사명을 최우선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는 신자입니다. 본문, 59절, 61절의 말씀을 보면, 이번에는 주님은 먼저 누군가에게 제자가 될 것을 제안을 합니다. 그때 주님께 제안을 받은 사람들이 부친의 장사를 먼저 행한 후(잘 섬기다가 돌아가시면 장례 후), 가족과 작별을 한 뒤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을 합니다. 이 두사람의 공통점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나의 일부터 하겠습니다” 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두가지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성경도 우리에게 그런 계명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62절에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서 다른 것에 우선 순위를 두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죄용서, 죽어서 천국갈수 있는 보장을 받은 것만은 아닙니다. 구원이란? 사명으로의 부름심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공통적인 사명(전도, 교회를 섬김)과 개인적인 사명(목사, 교사, 선교사, 은사대로)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명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공통의 사명, 그리고 여러분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명을 삶의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혹시, 내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명 보다는 내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우선이 되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다시 사명을 붙들고, 잘 감당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여러분이 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듯이, 하나님 역시 우리 신자들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첫째는, 마음이 넓은 신자가 되는 것이고, 둘째는,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고, 셋째는, 주어진 사명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최선을 다해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신자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큰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신자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