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이불여일견!!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한 번 보는 것 더 확실하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떤 것에 대해서 들어봐도 직접 보는 것보다 못합니다. 만리장성이 그렇게 크게 위대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듣는 것보다 직접 가서 보는 게 더 실감이 납니다. 중국의 자금성을 보면 엄청납니다. 그것을 직접보면 우리나라의 경북궁이 정말 조그맣다고 느낄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체험의 종교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하나님을 경험한 아브라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은혜를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네 아들 네 사랑하는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당에 가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번제때 쓸 나무를 가지고 두종과 함께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땅에 갑니다. 3일후 모리아산 근처에 도착하게 됩니다. 거기서 두종을 기다리게 하고 이삭에게 나무를 지게하며 자신의 손에는 불과 칼을 들고 모리아산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삭은 똑똑했었는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냐고 물어 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 곳에 이르렀을 때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제단위에 넣고 이삭을 결박하여 잡으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로부터 아브라함을 부릅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합니다. 이제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주위를 보니 숫양의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그 숫양을 잡아다가 번제를 드리고 그 땅을 여호와 이레라고 합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우리를 시험하시는 하나님
먼저 이 본문을 보고 우리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냐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이방신들의 인육제사가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그것의 영향으로 그리 당황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인육제사를 드리지 않게 하심으로 우상과 다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게 왜 이삭을 요구하셨습니까? 그것은 1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바로 아브라함을 시험하실려고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테스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원어 ‘시험하다’는 단어의 다른 뜻이 ‘훈련하다’ 라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바로 우리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시험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어려움과 고난들이 이런 것들입니다. 기독교는 핍박으로 성장한 종교라고 합니다. 로마시대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으면서도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날마다 시험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큰 것을 요구하는 시험일 수도 있겠지만 건강, 돈, 성적, 인간관계 등에서 오는 시험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이런 시험들을 허락하셨습니까? 바로 훈련시키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시험에 당하지 않는다면 교만해지고 게을러지며 나태해지기 쉽습니다. 또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더욱더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더 찾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주시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시험을 통해 상주시고 복주시면 겸손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시험가운데 있다라면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시키시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더 기도하고 의지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우리의 믿음을 보시기 원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이 본문을 잘 보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에 있어 아브라함도 많은 고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아침에 일찍 모리아 땅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4절을 보면 집에서 떠나 모리아 땅으로 가는 길을 3일이 걸립니다. ‘매도 일찍 맞는게 낫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에게 시험이 올 때 빨리 지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3일이라는 시간이 아브라함에게는 얼마나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시간 동안에 아브라함을 얼마나 고민했겠습니까? 5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두 종을 기다리게 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땅에 이삭과 함께 둘이 올라 갑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믿음은 4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라고 합니다. 제가 저번 설교 때 야곱을 이야기하면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대한 성경을 읽을 때 ‘보다’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읽으라고 했습니다. 4절을 볼 때 아브라함이 바라본 것을 보면 그가 믿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번제 드리라고 한 곳을 멀리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먼 산보며 한숨을 쉬었다는 것이 아닌 그의 시선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함에 집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삭이 아브라함과 번제할 장소에 갈 때 왜 제물이 없냐고 물어봤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는 말 속에도 그의 믿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시험을 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리기 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기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함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결박하여 잡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을 말립니다. 그리고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아들을 바치기를 원하셨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을 요구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제일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독자인 이삭을 바치게 하셨던 것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자신도 드리기를 원하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서 제일 소중한 것을 요구하심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큰지를 알 기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을 보기 원하시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닮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사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시험이 닥친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때 우리의 시험이 해결되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험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믿음이라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와서는 정말 경건하고 신실한 척하면서 교회 밖에서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하여 시험을 주십니다. 그래서 더욱더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고 의지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 드림으로 인하여 시험에서 날마다 승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 보여주시는 하나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관련된 성경을 읽으실 때 ‘보다’라는 단어에 관심 있게 읽으라고 했습니다. 13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이라고 나옵니다. 그가 믿음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번제할 숫양을 준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숫양을 잡아다가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립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그 땅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합니다. ‘여호와 이레’는 무슨 뜻을 가지고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입니다. 그런데 왜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라고 지었습니까? 어떻게 보면 문맥에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본문을 보면 대부분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초첨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땅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는 것을 보면 이상한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이야기의 초첨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비하심, 보살피심에 맞쳐져 있다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강조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이레라는 것을 원어를 살펴보면 ‘이레’ 즉 ‘준비하심’이 ‘보다’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께서 보여지리라”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이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믿음보다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심에 대해서 더욱더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훈련시키기 위해 시험하시고 그를 위해 준비하시고 돌보아 주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행함보다 하나님께서 행하심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계획하시고 일하시고 은혜주시는 하나님,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 은혜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보여주셨기 때문에 은혜 받습니다. 이렇게 은혜 받을 때 아브라함처럼 우리는 믿음을 얻고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속에서 얼마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심을 경험하십니까? 우리들이 시험 당할 때는 불평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아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일하셨구나 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또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하셨구나라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정말로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저는 엄분선 성도님의 병이 낫기를 하나님께서 보여주심을 느끼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교회의 부흥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행하심을 보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심을 경험할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 믿음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 뜻대로 살기로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순종할 때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말씀 가운데, 기도하는 가운데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심으로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는 이유는 훈련시키시고 유익한 것을 주시기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시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고 믿음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런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기를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생활 가운데 날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정말 큰 믿음이 우리 안에 가득차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