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월 두달동안 예배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생애에 마지막 예배처럼 간절히 드립니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계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들의 신앙생활 중에 중요한 요소 중에 한가지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중에 예배를 빠뜨리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간절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원하는 예배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 같이 고민하면서 우리들의 생애에 마지막 예배처럼 간절히 드리는 이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우리가 예배 가운데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오늘 말씀은 가인과 아벨에 대해서 나옵니다. 이 본문은 우리들에게 잘알려진 본문 중에 한가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두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가인, 둘째는 아벨이었습니다. 아벨은 양치는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이 둘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았고 아벨은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에 격분한 가인은 아벨을 살인하는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은을 책망하시고 땅을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되는 벌을 내리십니다. 여기서 유리한자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떠도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항상 우리들은 의문점이 드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으시지 않으셨을까?’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옛날 주석을 보면 바로 아벨은 짐승의 피의 제물을 드렸지만 가인은 곡식의 제물을 드렸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틀린 것입니다. 레위기 1~7장을 보시면 5대 제사에 대해서 나옵니다. 이 부분을 자세히 보면 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 뿐만 아니라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에 대해서도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안받으시는 다른 이유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본문 속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지만 히브리서11:4에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해서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이유는 가인보다 나은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을 보아 아벨은 믿음으로 예배를 드렸고 흠없는 예물을 정성스럽게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던 것은 1.믿음으로 드려야할 예배에 정성을 다해 드리지 못했거나 2.그가 드린 예물에 무엇인가 흠이 있었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가인이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심을 알고 분하게 여긴 것으로 보아 그는 제사를 형편없이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사 드린 후의 그의 모습은 하나님께 예배드린 자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 가운데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받았다라면 예배 드린 후 우리의 모습은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차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인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예배가운데 진정으로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의 드리는 예배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가인같은 예배를 드립니까? 아벨같은 예배를 드립니까? 매번 드리는 예배 가운데 우리는 얼마나 최선의 예배를 드리며 간절히 예배를 드리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과 생각은 딴곳에 있으시지는 않으십니까? 내 생애 마지막 예배처럼 간절히 드릴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이 좋다라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어느 예배 시간이든 간절하게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아벨처럼 예배드리심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삶의 예배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던 이유가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4,5절에 나옵니다. 4절엔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고, 5절엔 가인과 그의 제물받으시지 않으셨다고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물뿐만 아니라 사람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로마서 12:1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 이 말씀을 봐도 우리 자신의 제물을 주님께 드리라고 합니다. 그럼 우리가 제사에 드리는 제물인 짐승처럼 각을 떠서 불태워 드리라는 끔찍한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께서는 곧 우리의 삶을 드리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삶의 예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찾아 오셔서 물어봤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죄 가운데 빠지는 가인에게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예배를 받으시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에 실패한 가인에게 삶의 예배를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기도 원하시지만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기도 원하십니다. 그렇다라면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삶의 예배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7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을 보면 가인에게 원하셨던 삶은 선을 행하는 삶 그리고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이야기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평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얼마나 선을 행하시고 사시며, 죄를 짓지 않도록 얼마나 치열하게 죄와 싸우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예배를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사무엘상 15:22을 보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갑니까? 평소에 얼마나 성경을 보고 기도하며, 사랑하고 용서하며 선을 베풀며 살아갑니까? 이런 삶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입니다. 결국은 삶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그리스도인 삶을 사는 것 즉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경건하게 살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속에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실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항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3.예배는 서비스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를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와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가지 예배를 다르다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배라는 이것은 이 두가지가 아니라 하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을 이해 하기 위해서는 예배가 무엇인지 우리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배는 영어로 worship이라고 하고 service이라고 합니다. service는 우리가 서비스업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라는 뜻과 함께 봉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service라는 단어를 통해서 봉사도 곧 예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예배라고 이야기할 때 보통 God’s service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께서 봉사하다라는 것입니다. 1. 더 정확하게 말해 왜 service라는 단어가 예배로 쓰여졌냐면 바로 하나님께서 예배의 주도권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이시고 예배 안에서는 다른 것이 먼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양을 할 때 음악이 먼저가 아니고 찬양인도자가 먼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 먼저여야 합니다. 설교를 할 때도 하나님께서 설교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지 설교자 그 자체의 말씀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착각은 합니다. 아 그 목사님 설교가 좋더라 그 전도사님 설교가 좋더라, 그 집사님이 하시는 찬양예배는 너무나도 좋더라 이렇게 예배의 중심이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중심이 되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2. service는 우리가 하나님께 service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반응이 바로 예배인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그것에 대한 우리에 대한 감사와 반응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인도자의 인위적이고 강요적인 반응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이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 서비스 하고 있습니까? 그냥 하나님에 대해서 무응답으로 반응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 예배의 참다운 모습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이끄셔야 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반응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여서 드리는 예배 가운데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얼마나 하나님께서 주도하고 계시고 이끄십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십니까?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실천할 때 우리는 삶의 예배를 드렸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예배 가운데 항상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또한 말씀에 반응하고 실천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시다. 우리들은 최선을 다해 예배를 드려야 할 것과 함께 우리의 삶의 예배도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배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우리들이 반응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원하시는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한사람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예배가운데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선물로 주시는 축복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