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어떻게 넣는가를 보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두 부류가 나옵니다. 여러 부자들과 한 가난한 과부입니다. 여러 부자들은 자신이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한 가난한 과부는 두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습니다. 두렙돈이라는 돈을 계산한다면 하루에 번돈, 일당을 한 데나리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한 데나리온의 64분의 1이 두렙돈이라고 합니다. 현대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오늘날 일하는 하루 일당이 64,000원이라고 생각합시다. 물론 이런 비싼 일당은 별로 없습니다. 해봤자 3만원, 4만원, 5만원 이렇게 밖에 안됩니다. 하지만 여기 있는 분들은 모두 고급인력이시기 때문에 하루 일당이 64,000원이라고 치면 두렙돈은 64분의 1인 1,000원 밖에 안됩니다. 얼마나 작은 돈입니까? 물론 여기에 물가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으면 더 작아질수도 있고 커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가난한 과부가 넣은 헌금은 모든 사람보다 많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풍족한 중에 넣었고 이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보통 이 말씀을 묵상하거나 설교를 들을 때 가난함의 미덕에서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부자가 천국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어떤 분들이 이 말씀을 설교하실 때 건축헌금에 관련되어서 설교하십니다. 그래서 가난한 과부가 헌금한 것처럼 우리가 힘에 지나도록 헌금하는 것이 복이 있다라고 하면서 교회에 많은 헌금을 낼 것을 이야기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절대로 가난함의 미덕, 부자가 천국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 그리고 헌금에 대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예수님의 더욱더 중요한 메시지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라면 예수님께서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1.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마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살필 때 먼저 그 앞 구절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앞구절 38~40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여기는 서기관들의 모습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긴옷을 입고 다니고,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좋아하고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고,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신앙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신앙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지도자들이었는데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좋아했으며 겉으로는 신앙 좋은 척하면서 속으로는 거짓된 일을 삼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과 비교하여 가난한 과부의 모습을 어떠합니까? 서기관들이 과부의 가산을 착취하는 줄 모르고 그 가난한 과부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전 재산을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잘 생각해봅시다. 자신의 전 재산을 헌금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것입니다. 과부는 헌금 하기 전에 깊은 고민에 빠졌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순수한 마음으로 헌금을 주님 앞에 드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과부를 칭찬하시고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서기관 같지 않습니까?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서기보다는 때로는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신앙생활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교회에서는 착한 척 믿음 있는 척하면서 세상 속에 살아갈 때는 서기관처럼 거짓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거짓,욕,미워함 누구나 이런 모습이 보인다고 생각되어집니다. 한입으로는 주님을 사랑하고 섬긴다면서도 우리의 행동으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바로 서기관같은 모습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우리는 과부처럼 하나님 앞에 이런 진실되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되고 기쁨이 되시는 여러분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과부의 헌금을 통해서 또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보다 과부가 많이 넣었다고 이야기하셨지만 여러 부자들이 절대로 적게 헌금하지 않았습니다. 41절 마지막 부분을 봅시다.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라는 나옵니다. 부자들은 자신이 풍족한 만큼 자신의 소유를 주님 앞에 많이 헌금했습니다. 이말은 부자들이 잘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것입니다. 이것은 곧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쉽다라는 얘기를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또한 가난한 과부도 헌금 중에 자신의 것을 모두를 드릴 의무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부자들처럼 자신의 생활비를 떼어놓고 하나님께 드리는 모습을 비판하시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라면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를 왜 칭찬하셨습니까?
2.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전부를 주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유의 전부를 주님께 드리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마음이 행동으로 옮겨졌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삶의 전부를 주님께 드리기 원하십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것은 자신의 전 재산을 헌금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은 우리가 주님께 헌신하여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치만 우리의 소유의 일부만 주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내가 가진 돈과 소유 모두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그중의 일부를 주님께 감사함으로 헌금하면서 우리가 가진 소유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올바르게 쓰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과부의 마음은 이런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중한 삶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우리의 삶을 내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이 받은 이 소중한 삶을 주님의 영광위해 주님을 기쁘시게 하시기 위해 써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과부가 자신의 전부를 주님께 드리는 것에 대해서 칭찬하셨습니다. 이 말은 저처럼 여러분들 모두가 전도사, 목사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환경과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은 세상에 살아가면서 어려움과 고난을 겪고 살아갑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내 삶을 내 마음대로, 내 욕심대로, 내 뜻대로 살아갈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이 삶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대로 살아간다면 우리 안에 어려움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항상 하나님의 것 따로 내 것 따로 구분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처럼 우리의 삶의 전부를 받으시기 원하십니다.저는 고2때부터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하고 사역자의 길을 가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부터 신학의 길로 간지 어느덧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하나님의 일이라면 열심히 했습니다. 방학 때는 6,7개 수련회에 가서 봉사하기도 하고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주님의 일이라면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돈에 대한 욕심, 소유에 대한 욕심이 들 때가 많습니다. 친구들처럼 대기업에서 돈을 잘 벌어서 제가 하고 싶은 것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욕심이 많기도 합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비교할때면 불평, 불만이 가득하고 믿음이 흔들릴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처음엔 억울하게 느껴질 때쯤에 하나님께서 은혜들과 함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저에게 있음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삶의 전부를 주님께 드릴 때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보다 더 큰 것들을 주님께서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마음에 우리들 자신보다 우리 안에 하나님으로 가득 채울 것을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들 마음엔 하나님보다 아직 욕심과 죄악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들은 항상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려고 노력하지만 항상 나의 것을 떼어 놓고 나머지를 하나님께 드리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내 자신을 주님께 내려놓고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이 가득차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1980년대 가요계에서 시인과 촌장이라는 그룹이 있었습니다. 하덕규, 함춘호라는 두 분이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분은 그리스도인이시고 지금은 하덕규는 ccm가수로 함춘호는 가요계와 ccm계를 드나들는 유명한 기타리스트입니다. 하덕규가 작사 작곡한 가시나무라는 곡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시나무 – 시인과 촌장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당신의 쉴곳이 없네
내속엔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한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없네
3.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서 우리의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내 욕심, 내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목표라면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주님께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라면 우리 삶의 전부를 주님께 드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에게 주신 이 소중한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주님께 우리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주동안 살면서 하나님께 기쁘시게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과부처럼 잘했다 충성된 종아 칭찬 받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