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막2:1-12절 마가복음강해8
제목 : 용서를 말해줍시다!
2006년 10월 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아미시초등학교에 로버츠라는 사람이 침입해 총기를 난사했습니다. 이 사고로 5명의 어린이가 죽고 5명이 크게 다쳤으며 로버츠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미국 전 국민이 큰 슬픔에 빠졌지만, 그 슬픔 가운데 큰 감동도 있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큰 충격과 슬픔 가운데 있던 아미시 마을 사람들이 살인자인 로버츠 역시, 남편이었고, 아버지였고, 아들이었다는 점을 생각해서, 그의 장례식에 찾아가 위로를 하고, 용서를 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이런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1.죄는 모든 불행의 원인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그것은 5절입니다. 즉, 힘들게 지붕을 뚫고 내려진 중풍병자에게 에수님이 하신 말씀이 ‘네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 입니다. 여러분! 중풍병자와 주변 사람들이 기대한 것은 무엇일까요? ‘네 병이 나았다’ 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사람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말씀을 통해서 첫번째로 묵상할 것은, “모든 인간의 불행의 원인이 죄 때문이다” 라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기대했을까요? 병고침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사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네 자신이 죄사하는 권세를 가지셨음을 말하기 위함이지만, 인간이 격게 되는 모든 불행이 죄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 점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이전에는 불행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죄를 짓고난 다음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든 것이 불행해졌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불행을 느꼈고, 부부사이에서도 불행이 느껴졌으며, 그의 가정도 불행해졌고, 영혼의 문제에 있어서도 불행해졌습니다. 그리고 아담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이 다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불행은 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또 한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속에 불행과 고통을 느낀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될만한 죄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만나는 모든 문제가 죄때문이라고 확정할수 없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도 있고, 우리의 신앙의 성숙을 위해 주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불행과 고통이 다 죄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어떤 문제, 어떤 불행을 겪을 때, ‘내안에 이런 문제와 불행을 격게 할만한 죄가 있지는 않은지?’ 를 고민하고 삶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발견했다면,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죄된 모습을 정리해야 합니다.
2.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라는 말씀을 통해서 두번째로 묵상할 것은, “예수님은 누구이신가?”에 대해서 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이 말하려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인기가 많으신 분, 말씀을 가르치시는 분, 중풍병도 고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 그러나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이 더 중요한 소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 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단지 병을 고치시기 위함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가지는 그러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난 본문에서 문둥병자를 고치신후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병을 고치는 분으로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고, 그래서 인간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믿는자마다 죄의 용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으로 인해 죄사함을 받은 줄 믿습니다.
3.용서를 말해줍시다!
이제 우리들이 ‘네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을 통해서 묵상할 세번째는 “우리도 서로 용서를 말해주는 사람이 되라!” 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용서를 말씀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에게 용서를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용서를 잘 말해주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기관처럼 용서에 인색한 사람은 아닙니까? 5절을 보면, 서기관들이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라고 생각하는 내용이 기록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다는 그들의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입니다. 즉,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기대하며 서로 용서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용서에 인색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도리어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고 정죄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더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들이 서로 용서를 말해주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에게도 용서의 권세를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즉, 요20:23절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일흔번씩 일곱 번씩이라도 용서하라’고 제자에게 용서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엡4:32절에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했으며, 뿐만 아니라, 주기도문에서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용서는 대단히 중요한 삶인 것입니다. 좀 지나치게 말한다면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에게 용서를 말해줄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용서의 삶을 살아가고 게십니까? 아니면 용서에 인색한 서기관들과 같이 다른 사람의 잘못을 정죄하는 것을 더 즐겨하고 계십니까? 용서해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난 그 사람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혹시 여러분은 남편의 잘못이나 아내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고 여전히 마음속에 미움을 품고 살아가는 분이 계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를 말해준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은혜와 사랑, 기쁨과 평안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용서를 말해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마칩니다.
주님은 죄로 인해 불행을 겪는 우리에게 용서를 선포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역시 서로에게 용서를 말해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죄가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함을 알고 죄를 해결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