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13:1-11, 34-35절
제목 : 사랑의 사람이 됩시다!
오늘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지 4일째 되던 날 곧 죽음 하루 전날을 배경으로 합니다. 우리는 지난 첫째날, 무화과와 성전 사건을 통해서 ‘용서의 사람이 되자’ 둘째날, 가난한여인의 헌금을 통해서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살아가는 헌신자가 되자’ 셋째날, 향유를 부은 여인의 말씀을 통해서 ‘계산하지 않고 섬기는 사람이 되자’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입성후 4일째 되는 날 곧, 유월절 전날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첫 번째로 생각할 것은 “예수님의 변함없는 큰 사랑”입니다. 먼저 1절을 보면, 예수님이 자신이 죽음의 때가 되었음을 아셨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과 발을 씻겨주시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셨습니다. 그 증거는 11절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칠 것을 알았고, 배신할 것도 알고 계셨고, 특별히 제자중 한사람인 가룟유다가 자신을 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발을 모두 씻어 주셨습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변함없는 크신 사랑으로 밖에는 설명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결코 주님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제자들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주님의 크신 사랑이 다시한번 확인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요20장을 보면, 부활하신 후 주님을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후 그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또, 요2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의 삶을 포기한 베드로에게 찾아가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심으로 베드로를 향한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말해주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변함없는 큰 사랑을 가지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닌, 우리 모두를 향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게 당연한 것이지! 라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 역시 주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었고, 또한 지금도 없는 사람입니다. 왜입니까? 우리들 역시, 제자들처럼, 주님을 배신하며 살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언제 배신했냐요? 주님이 원하시는 삶, 주님의 말씀,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따르지 않음이 바로 주님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때로는 우리들도 유다처럼 주님을 팔아버릴때가 있습니다. 언제 주님을 팔았냐고요? 세상의 이익을 얻기 위해 신앙을 저버리거나, 타협했다면 그게 바로 주님을 판 것입니다. 또 우리들이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지만 우리의 생각과 계획은 얼마나 악하고 추할 때가 많습니까? 미움이 많고, 욕심이 많고, 음란하고, 거짓말하고, 도적질하고, 원망하고, 이간질하고,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더 이상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죄악된 모습들이 우리안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결국, 우리 역시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못난 우리들을 주님이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고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를 향한 이런 변함없는 사랑에 꼭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감사하고 멈추는 사람이 아니라, 첫째로, 우리도 주님을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여러 가지 이유가 주님을 향한 사랑이 변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을 어떻게 사랑합니까? 성경은 크게 2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둘째는, 주님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우리도 주님처럼 서로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15절 ‘내가 본을 보였노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들 역시 주님처럼 서로 변함없이 사랑함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34-35절을 보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왜 새계명이라고 말을 할까요? 그 이유는 이미 구약성에서도 사랑을 실천할 것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 언급된 사랑은 제한적인 사랑이며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예를들면, 동족을 사랑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새로운 사랑의 계명은 모든 사람을 대상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나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 나에게 상처를 안겨준 사람, 내 인생을 망쳐놓은 사람, 나를 피곤하게 하는 사람, 나를 숨막히게 하는 사람, 힘들게 하는 사람, 원수까지...,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조건없이,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사랑하기를 멈추거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을 근거로 본다면, 신앙의 성숙이란? 결국 ‘사랑을 얼마나 실천하는가?’로 확인 될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우리 신앙의 정도를 기준하는 시금석입니다. 사랑을 기준으로 자신을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왜 사랑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야 한다고 말합니까? 그것은 사랑이 모든 계명을 대표하고, 모든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35절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신앙을 점검하는 기준이, 성경지식이 얼마나 되는지, 기도의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봉사의 분량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뭘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가지고 점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신앙 점검이 될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들에게 제시하는 신앙점검의 기준은 “사랑이며, 사랑의 실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고전13:1-3절을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사랑이 없으면 그리스도인된 나를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신앙의 시금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는 일에 노력을 할때, 우리의 신앙도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사랑을 실천함으로 신앙이 성숙해 가기를 바라빈다.
그러면 어떻게 주님처럼 변함없이 서로를 사랑할수 있을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5절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위해 자세를 낮추시는 장면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우리들이 자신을 낮출 때에만 사랑이 가능한 것입니다. 높아지면 사랑이 어려워집니다. 높은 마음을 가진사람은 늘 남을 지배하고 조정하고, 다스리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예수님처럼 낮출때 사랑의 실천이 가능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놓치면 안될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의 존재입니다. 2절을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팔 생각을 주었다는 말만이 아니라,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향한 사랑을 깨트리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서, 서로를 향해 사랑하는 마음을 깨트리고 미움과 증오를 심어주는 일을 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벌써’라는 말을 보면, 한순간에 그런 미움을 심어줄 수 있는 존재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미움이 생긴다면, 이미 사단의 시험이 시작된 것임을 알고 사단의 공격을 이기고, 사랑의 마음, 사랑의 삶의 놓치지 않을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 주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에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더 나가서 우리도 주님처럼 자신을 낮추고 주님을 그리고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갑시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여러분에게 진정한 축복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