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막12:41-44절
제목 : 주님께 아낌없는 신자가 됩시다!
어제 우리는 무화과나무와 성전사건을 통해서 용서의 사람이 될 것을 묵상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둘째날에 있었던 내용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헌금함에 헌금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계시는 장면으로 시작을 합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 입구에는 13개의 헌금함(연보함)이 설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헌금함은 놋쇠로 만든 나팔 모양의 함으로, 당시에는 지폐가 없었고, 동전만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헌금을 하면 동전이 떨어지는 요란한 소리내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헌금을 하는지를 알수 있는 구조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 헌금함이 보이고, 소리가 들릴 만한 곳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때 여러 부자들이 대단히 많은 헌금했습니다. 아마 주변 사람들이 박수치며 믿음이 좋다고 칭찬의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헌금을 한 사람은 은근히 자신을 과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42절을 보면, 대단히 가난한 과부가 두렙돈(헬라동전으로 가장 적은 화폐단위 두개의 동전), 곧 한 고드란트(로마동전)를 헌금을 했습니다. 이 금액이 요즘으로 얼마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적으면 몇백원, 많으면 몇천원 정도인 아주 적은 금액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과부의 헌금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들 다음으로 헌금을 하게된 과부도 스스로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그때 4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주님께 칭찬받은 과부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이 첫 번째로, 묵상할 것은, ‘신자에게 헌금 생활은 매우 중요하다’ 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헌금생활과 우리의 신앙은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돈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최고의 관심사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자나 불신자나 모두의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피같은 내돈, 머니 머니 해도 머니가 최고지..., 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만큼 사람들은 돈을 중요하게 여기고, 돈에 대한 관심이 많고, 돈을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돈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믿고 신뢰하는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를 하는가? 를 점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6:21절에서 예수님께서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말3장에서도 이점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3: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내게로 돌아오라’고 초대하십니다. 그때 하나님을 떠났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십일조와 봉헌물’ 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에 대한 바램이 아닌, 마음을 돌이키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돌이켜진 증명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봉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물질과 신앙은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존 웨슬리 목사님은 웃기는 표현이지만, 의미 심장하게 ‘돈지갑이 회개하기 전까지 사람들의 회개는 믿기 어렵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과부가 하나님께 드린 헌금이 얼마입니까? 두렙돈입니다. 물론, 대단히 적은 금액의 헌금입니다. 그러나 그 돈은 과부의 생활비 전부였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아무리 적다해도 한달 생활비 전부를 헌금할 용기가 있으십니까? 그러나 과부는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헌금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과부가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헌금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이고,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에 근거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의 고백인 것입니다. 이런 신앙이 아니고는 자신의 목숨이 걸린 생활비 전부를 헌금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 사랑과 감사함으로 헌금한 과부의 믿음과 신앙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과부가 가진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 사랑과 감사의 신앙을 갖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께 대해 아까움이 없는 신앙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 풍성한 예물을 드림,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여러분의 물질만이 아니라, 시간, 몸, 재능과 은사를 아낌없이 사용하기를 기뻐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칭찬받은 과부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이 두 번째로, 묵상할 것은, ‘주님은 우리의 삶을 원하신다’ 는 점입니다. 오늘 주님은 가난한 과부를 대단히 칭찬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헌금의 액수때문이 아닙니다. 만일 액수가 중요했다면, 과부가 아닌, 부자가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바로 그녀의 삶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왜 부자들의 헌금을 칭찬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삶이 칭찬받을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0절을 보면, 부자들이 부자가 된 이유를 과부의 가산을 삼켰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그들의 헌금을 칭찬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과부의 삶이 어떠 했는지 정확히 소개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칭찬을 받을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을 더 중요하게 보시고, 우리의 삶을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바로 창4장의 가인과 아벨의 제사입니다. 이 제사의 핵심은 제물이나, 정성이 아닌, 삶입니다. 가인은 선을 행하지 못했습니다. 죄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달랐습니다. 죄를 다스렸고, 선을 행했습니다. 그것이 결과의 차이였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삶이야 말로, 우리의 신앙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결국, 주님께서 원하시는 신자의 삶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주님께 대해서 아낌이 없는 삶입니다. 둘째로, 주님이 기뻐하실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은, “왜 우리가 주님께 아낌없는 삶,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입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명령이기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이 먼저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권리를 아낌없이 내어 놓으셨고, 십자가에서 물과 피와 몸과 생명까지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진정한 기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역시, 주님을 위해 아낌없는 삶,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마땅한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 모두 신앙의 중요한 원리를 알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 신자들의 삶의 이유가 ‘주님이 우리를 위해 먼저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한다라는 원리’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우리를 먼저 섬기셨기에 우리도 주님을 섬기고, 주님이 우리를 위해 먼저 희생하셨기에 우리도 주님을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고, 희생하고, 용서하는 모든 이유 역시, 주님이 우리에게 먼저 그렇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런 마땅한 삶을 살지 않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부정하는 행위인것 입니다.
결론 – 그러므로 이번 고난주간을 통해서 주님이 여러분을 위해 하신 일, 주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것들을 되새기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주님이 여러분을 위해 고난당하시고 생명까지 내어주심을 깊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아낌없는 삶,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결심하고 살아갈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