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막11:12-18절
제목 : 용서하는 삶
오늘부터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후 예수님께서 하루 하루 어떤 발자취를 남기셨는지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다음날인 월요일에 행하신 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을 향해 길을 가시다가 배가 고프셨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죄 없는 것만 제외하고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아픔과 고통의 문제를 격으신 분이시며, 그러기에 우리의 아픔과 고통의 문제를 너무나도 잘 아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참된 위로와 도움을 주실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언제든지 아픔과 고통의 문제를 예수님께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들면, ‘주님 제가 아픕니다. 힘이듭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럴때, 여러분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는 주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배가 고프신 예수님께서 무화가 나무 앞으로 가셨습니다. 왜냐하면, 무화과 열매를 얻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열매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무화과 열매가 맺힐 때(시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1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매를 얻을 수 없었던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후 15절을 보면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성전안에서 제물을 매매하고, 이방인의 돈을 유대인의 돈으로 환전해주는 사람, 그리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을 향해,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엄중하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 후 20절을 보면, 아침에 예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라 죽은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 본문의 구도는 무화과나무 사건 중간에 성전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즉,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와 성전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본문을 통해서 먼저 생각할 것은, 열매가 맺힐 때도 아닌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찾고, 열매가 없자 저주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입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실물교육을 하시기 위함입니다. 즉, 오늘 본문에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 나무는 바로 성전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주님은 지금 성전이 있고, 성전안에서 많은 의식이 행해지지만(마치 잎이 무성한 나무처럼) 결코 성전이 맺어야 할 열매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매일마다 제사의식, 종교적 활동은 있었지만, 그것들을 통해 정말 중요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보겠노라는 중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마음과 고치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러면서도 그들 자신들은 신앙생활을 잘하고, 하나님 백성답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혹시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 형식만 있고 열매가 없는 성전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들 역시 예배도, 기도도, 헌금, 봉사..., 등의 종교 생활은 열심히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겠노라는 중심, 성경과 말씀대로 나 자신을 고쳐가려는 노력이 있습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신앙생활 가운데 사모하는 마음과 감격이 있으십니까?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법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에 하체가 보이도록 춤을 추었습니다. 너무나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감격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마음이 있으십니까? 이번 고난 주간 가운데 이런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마음이 회복되지 않으면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수 없게 됩니다. 회복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사랑의 열매, 자비의 열매, 감사의 열매, 기도의 열매, 섬김의 열매, 기쁨의 열매..., 등 그 외에 주님이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열매는 무엇인지를 고민하셔야 합니다. 특별히 특별히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용서의 열매입니다. 여러분! 성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예배, 기도, 율법낭독,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용서의 기능’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전의 제사를 통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용서가 선포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용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용서의 열매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몇해전 미국 버즈니아공대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범인을 포함한 33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29명이 부상당한 충격적인 사격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범인이 바로 우리 한국청년 “조승희” 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있은후, 버지니아 대학 캠퍼스 한편에 이번 참사의 사망자들을 위한 추모석들이 놓였고, 그중에는 이번 사건의 범인인 조승희씨을 위한 추모석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승희씨의 추모석에 놓여진 작은 쪽지 하나가 많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네가 그렇게 힘이든지 몰랐다. 너를 돕지 못했다. 그리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걸 알고 가슴이 아팠단다. 머지않아 너의 가족이 평온을 찾아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그리고 또 다른 쪽지에는 ‘우리는 너를 용서한다’ 라는 희생자의 가족들의 쪽지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도 감동이 되십니까? 이 짧은 쪽지가 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용서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또, 당시 조승희에게 총을 맞고 구사일생을 살아난 한 여학생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그와 한 번이라도 만날 기회가 있었다면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줄수 있었을 텐데, 난 그를 용서합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이와같은 용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의 사람이야 말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신 사람들 모두 용서의 사람이었습니다. 예를들면, 다윗, 스데반, 요셉, 예수님..., 등 신앙의 위인들 모두 용서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용서의 사람입니까? 아니면, 용서할줄 모르는 사람은 아닙니까? 이번 고난주간, 여러분의 마음속에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용서를 말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배우자에게 용서를 말하십시오! 여러분의 부모에게 용서를 말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에게 용서를 말하십시오! 그 외에도..., 그럴 때 여러분의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회복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용서가 잘 안되십니까? 그건 여러분이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결코 용서받을수 없는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여러분이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께 용서받은 사람임을 다시 확인하시고, 용서받은 사람으로서, 누구라도, 몇 번이라고,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이 원하시는 말씀입니다.
결론 – 저는 여러분 모두가 형식이라는 잎사귀만 보여드리는 신자가 아닌, 주님이 기쁘게 받으실만한 열매를 맺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용서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용서를 결심하십시오! 그리고 용서를 선언해줌으로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여러분의 남은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