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학생들은 수련회를 갔다왔습니다. 참 학생들에겐 은혜롭게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외부에서 오신 선생님들은 도와주러 왔다가 도리어 더 배우고 더 사랑 많이 받았던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참 수련회는 우리에게 귀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우리들은 항상 이런 수련회 통해서 은혜 받고 변화될려고 하지만 항상 우리의 삶으로 가면 항상 어렵고 힘든 삶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또한 우리들은 항상 주일 예배를 통해서 은혜 받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변화되겠다고 다짐하지만 세상 속에 다시금 힘든 삶을 삽니다. 우리는 이런 삶이 왜 반복되어지는 것일까요? 우리는 항상 수련회 때마다 주일 예배를 통해 우리의 상황과 환경 그리고 주변들 사람들이 변화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변화된 사람을 살지 않기에 이런 삶이 계속 반복되는 것입니다.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을 통해 알아가고 적용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본문을 들어가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두려움 마음으로 이야기한다고 전합니다. 이 두려운 마음은 우리가 행한 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마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두려움 마음으로 이야기했던 이유는 당시 고린도 교회 상황을 보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당파가 나누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라고 나누어져 그들은 각기 자신이 맞는 파대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가 자신의 말을 귀 기울지 않을 것임을 기억하였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리려는 마음에서 모두가 들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썼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두려운 마음으로 알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을 과시하는 자랑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외모로 자랑하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라면 바울은 무엇을 이야기 할려고 장대하게 설명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고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런 죽음은 모든 사람의 죽음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유는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사신 자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죽으심과 부활은 15절에 나타나있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은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살게 하시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위하여 사는 사람을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혹시 이 시간에 하나님보다 먼저 인 것이 있으십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에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삶, 예수님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2.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알기 전에는 육신대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육신을 따라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난 후로는 그렇게 살면 안됩니다. 육신대로 산다는 것은 나만의 고집 나만 생각하는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그 당시 고린도에는 헬라와 라틴 문화가 공존했기에 여러 가지 세상의 철학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업적으로도 발달된 도시였기에 외국의 종교들도 유입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철학과 다른 종교와 혼합된 자신만의 신앙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결과로 고린도 교회 안에 성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내 마음대로 하나님을 믿지 않으십니까? 내가 원하는대로 말씀이랑 동떨어져서 이것은 내게 유익이 되니까 하나님을 믿으시지는 않습니까? 이것이 나 자신을 위한 삶인 것입니다. 17절을 읽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있으므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이전 것이 지나갔고 우리는 새것이 되었다고 합니다. 메시지 성경을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옛 삶이 지나가고 새로운 삶이 싹트게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서 과거의 삶에 대해서 새롭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죄에 대해서 상처에 대해서 하지만 우리들은 항상 이런 과거에 얾매여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책감을 들기도하고 상처로 인해 우리의 삶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전 것이 지나갔고 새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새롭게 출발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도 이런 새로운 삶 즉 예수님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과거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사람이 된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분의 변화를 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새 사람이 되었는데 과거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다라면 우리는 새 사람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보통 어떤 병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요즘 현대인들의 병들 중 허리, 손목, 척추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재발 원인은 과거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새 삶을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된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들의 과거의 습관은 무엇입니까? 지은 죄를 또 지은 것, 과거의 상처에 대해 또 아퍼하는 것,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더 생각한 것, 내 마음대로 하나님을 이용한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새롭게 된 삶을 살기 위해 해야 할 것 한가지씩을 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새 사람처럼 그리스도인처럼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러한 변화된 삶을 유지 하기 위해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3. 화목하게 살아야 합니다.
화목하게 산다는 것은 단순히 옆에 있는 친구와 가족과 다투지 않고 산다는 것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18절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고 이로 인해 하나님과 다투는 관계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게 하는 중재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과 화목하게 지내야합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과 화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사는 것이 먼저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싸우지 않고 친하게 지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하게 지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친구처럼 자주 만나서 대화도 하고 힘들 것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하나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결국은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말씀과 기도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목하다는 것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 우리는 세상 속에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새롭게 된다는 것은 기본은 이렇게 말씀과 기도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학생부 1년 주제가 말씀과 기도로 세상과 맞짱 뜨는 용감한 녀석들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지겹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려면 우리 안에 예수님이 있어야 하고 예수님 안에 거할려면 이렇게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어떤지 고민하면서 하루에 얼만큼 말씀을 보고 기도할까? 결단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 예수님을 위해서 살므로 인해 새롭게 되어지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선 결국은 하나님 중심으로 삶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바로 내 자심의 욕심때문임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고백하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