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
라들을 섬긴지라
8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
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라
9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10절-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
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11절-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주위 환경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3번 이사를 했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 환경이 중요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하게 여기는 “환경”이 본문과 어떻게 연관되어지는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메소보다미아의 왕 구산 리사다임의 지배를 받게 하십니다. 이렇게 8년을 식민 지배를 받은 후에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옷니엘”이라는 사사를 일으키시어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옷니엘이 죽을 때까지, 40년 동안 이스라엘이 평온을 누렸다고 하였습니다. 사사 옷니엘의 이야기를 통해서, 3가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우리가 하나님을 잊게 되면 악을 행하게 된다.
7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었을 때, 바알과 아세라라는 우상을 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사시대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며 살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세상에서 풍요와 안락함을 누리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완전히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가나안 민족들을 몰아내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즉, 이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태평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사사시대 전까지는, 이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고생을 하고, 또 가나안 정복전쟁을 치르던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이때에는 이들이 그래도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들을 많이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들이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면서, 악을 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데에는, 또 다른 실리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때 가나안 땅의 문화에서 “바알”은 풍요와 수확의 신이었고, “아세라”는 다산의 신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면서, 유목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빠르게 바뀐 것처럼 이스라엘은 유목사회에서 농경사회로 급전환이 되어졌습니다. 생활이 안정되자 하나님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대신에 가나안의 농경사회의 우상들인 바알과 아세라가, 그들에게 풍요와 다산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일으키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며,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유일한 신이심을 광야 40년동안 가르치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순식간에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이 드십니까? 이게 다 환경의 영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가나안의 농사일을 배워야 하고, 그들처럼 농사일에 성공하려면 그들의 농사법을 따라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농사를 주관하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겨야겠구나” 하는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은 지금 어떤 환경에 있으십니까? 하나님 없이도 살만합니까? 혹시 ‘세상’이라는 가나안의 농경문화에 정착해 있으십니까? 아니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광야문화에 있습니까? 우리 자녀들은 지금 어떤 환경에서 양육 받고 있는 것 같습니까?
우리가 서구 사회를 보면, 국민소득이 만 달러가 되면서 더 이상 교인이 늘지 않기 시작했고, 2만 달러가 되면서는 교인이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3만 달러가 되면서는 교회가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 3만 달러를 향해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교인이 감소되고 있고, 우리도 곧 서구사회처럼 교회의 문이 닫힌다는 말 아닐까요? 어려울 때에는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던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이 나의 공급자가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잘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큰 재미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 이런 것들만 추구하게 됩니다. 내가 하기에 따라 돈을 벌수도 있고, 내가 하기에 따라 삶의 즐거움과 여유를 가지며, 삶의 질을 높일수 있고, 내 하기에 따라 공부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갖게 되고, 더 많은 것들을 누리게 될수록, 그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즐거움의 환경에 취해서 하나님을 잊게 되면, 인간은 반드시, 악을 행하는 길로 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느냐,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느냐, 둘 중 하나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에 붙들려 살고, 공부에 붙들려 살고, 쾌락과 즐거움에 붙들려 삽니다. 그러다가 교회 오는 것에 대해 의미를 찾지 못하고, 교회에 오는 것이 나에게 이득이 있는지, 재미가 있는지,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는지 없는지 세상의 가치관의 잣대로 저울질 하다가 점점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점점 하나님과 멀어져 하나님을 잊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은, 하나님을 잊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임을 오늘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환경이 악을 행하는 환경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내 자신의 환경과 내 가정의 환경을 믿음으로 지켜야 합니다.
믿음의 자녀들인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삶을 살지 말고, 날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중심이 되는 삶을 살고, 다른 것에 붙들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붙들린,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간구하는 자에게 응답하신다”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고 우상을 섬기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들이, 메소보다미아의 왕 구산 리사다임의 지배를 받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구산 리사다임”은 왕의 진짜 이름이 아니라, 왕의 별명과 같은 것인데, “구산”은 “구스인”, 즉 오늘날의 이디오피아인을 가리키는 것이고, “리사다임”은 “두 배로 악한”이라는 뜻입니다. 즉, “구산 리사다임”은 “두 배로 악한 구스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이름은 이 메소보다미아의 왕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잔인하게 압제하였는지를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이 8년 동안을, 이 구산 리사다임의 지배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사사기에서는 이스라엘이 차례로, 여러 민족에게 지배를 받습니다. 사사기는 이것을 통해서,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 행하는 불순종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죄악을 미워하시며, 죄인에게는 반드시 죄에 대한 값을 치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사사기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는데, 회개하는 자와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9절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구산 리사다임 밑에서 8년을 고통 당한 후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한 구원자를 세우셨는데, 그가 바로 첫 번째 사사인 “옷니엘”이었습니다. 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옷니엘에게 성령 충만함을 주셔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긴 벌로 8년간 고통을 당하였지만, 이들이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은 다시 이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말은, 하나님을 떠난 죄를 회개하고, 합심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옷니엘을 일으키셔서, 이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 구절이 참으로 우리에게 있어서는 은혜로운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 언제든지 다시 받아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죄에 빠져 헤매고 있을 때, 또 고통 중에 있을 때에, 먼저 회개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죄에 붙들려 있는 환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가 바라볼 곳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좋은 영향력을 받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은, 옷니엘을 소개하기를,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옷니엘은 사사기 1장에서도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라고 소개되고 있는데, 그는 갈렙의 딸 악사와 결혼한 갈렙의 사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보통은 그냥 “누구누구의 아들”이라고 소개를 하는데, 특이하게 옷니엘을 “갈렙의 아우”라고 강조한 것은, 옷니엘이 믿음이 좋은 갈렙으로부터 좋은 영향력을 받아서, 이스라엘의 사사로 쓰임 받도록 준비된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옷니엘의 아버지인 그나스 외에 갈렙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옷니엘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사사로 임명된 데에는, 믿음의 사람 갈렙의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갈렙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 옷니엘이 준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로부터 영향력을 받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나는 어떤 환경에서 누구의 영향력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 자녀들은 어떤 환경에서 누구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때로는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친구따라 강남가기도 하고, 친구따라 범죄의 자리에 가기도 하며, 친구따라 교도소에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친구따라 교회에 오기도 하고, 친구따라 수련회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을 만나 인생이 바뀌기도 합니다. 어떠한 환경에서 자라느냐 하는 것은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내 자녀의 인생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친구들을 사귐에 있어서,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시고, 또 우리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뿐 아니라, 우리 자녀들은 성경을 통해서 좋은 모델을 많이 보고, 좋은 영향력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우리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만한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특히 우리는 모든 것에 완전한 본이 되시며, 완벽한 모델이신 예수님의 영향력을 많이 받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신앙의 위인들의 믿음을 본받고,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영향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고, 또한 우리도 우리가 만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그러한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옷니엘이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40년 동안, 이스라엘이 평화를 누렸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사사 옷니엘의 지도 아래, 좋은 영향력을 받아서, 하나님을 잘 섬겼다는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옷니엘과 같이, 좋은 사람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귀한 하나님의 사람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