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구시가 되어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시간에 되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갑니다. 이때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와 성전에 들어가는 미문이라는 곳에 내려놓습니다. 이때 나면서부터 못 걷는 자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다가가 구걸을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무엇을 얻을까 바라봅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못 걷는 자에게 이야기합니다. “내게는 은과 금이 없다. 하지만 내게 있는 것을 너에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에 힘이 얻어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과 성전으로 들어가서 걷기도하고 뛰기도 하면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은 그가 구걸했던 사람이었음을 알고 놀랍게 여깁니다. 이 본문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지 같이 고민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소망합니다.
1. 무엇보다도 큰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구원입니다.
이 본문을 설교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꾸준히 기도함이 능력을 행할 수 있다는 비결이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성전에 가서 기도하는 것은 베드로와 요한만의 기도의 시간이 아닌 그 당시 유대인들의 관습이었습니다. 제 삼시(오전 9시), 제 육시(12시), 그리고 본문에 나타난 제 구시(오후3시)에 이렇게 히루에 세 번 기도하는 것이 그 당시의 관습이었습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그 시간에 많은 유대인들이 성전에 모이므로 아마도 전도할려고 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기도의 능력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기도만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이 본문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런 전제는 기적에 대한 초첨이 맞쳐져 있기 때문에 나오게 되는 묵상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하지만 이 본문은 기적보다 그 안에 있는 궁극적으로 더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말을 살펴 보면 됩니다. 6절을 읽어봅시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혹시 찾으셨나요? 나면서부터 못 걷는 자가 걷게 되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습니까? 이것은 학생들이 잘 압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입니다. 베드로가 걷게 되는 기적보다 예수님의 그 이름을 전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얻게 되는 축복인 것입니다. 하지만 병 고치는 기적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는 것을 잘 보지 못합니다. 실은 기적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기적과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기적이 틀림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게 표적을 즉 기적을 구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 밖에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요나의 표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은 겉으로는 나면서부터 못 걷는 자가 걷게 되는 기적이 나타나지만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더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기적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진정한 기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구원이라고 해서 우리에게 동떨어지게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교회 모였는데 구원받으라고 이야기하니까 조금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으신가요? 하지만 제가 여기서 더욱더 주목했던 점은 나면서부터 못 걷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타난 그의 행동이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서 그의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한마디로 구원 받은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구원받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구원 받은 자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자가 구원 받기 전의 모습과 구원 받은 후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나는 과연 어느 쪽에 속한지 고민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2.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는 구원받기 전에 영적으로도 못 걷는 자였습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는 말 그대로 태어나서부터 못 걷게 되었습니다. 주석에서는 이를 중풍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보면 이 사람의 나이는 40여세나 되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40년 동안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모습 속에서는 유대인 즉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모습이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적으로도 못 걷는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사람의 특징을 두가지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스스로 활동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2절에 보면 다른 사람들이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메고 와 성전 미문에 둡니다. 혼자 걷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습니다. 또한 자신이 일을 못하니까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구함으로 자신의 생계를 이어갑니다. 신앙생활에도 스스로 활동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히 학생 여러분, 이런 말 듣기 지겹지 않으신가요? 기도해라, 찬양해라, 떠들지 말고 집중해서 말씀 들어라, 혹시 교회 나오는 것도 부모님한테 끌려와서 아니면 친구한테 끌려오지는 않겠지요? 저는 학생들이 제가 말하지 않아도 기도하고, 찬양하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신앙생활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수동적으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처럼 자발적으로 신앙생활 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구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어서 낫기를 포기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현실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판단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구걸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서 구걸했습니까? 성전 앞에서입니다. 성전 앞에서 하나님을 뜻을 구하며 낫기를 간구하기보다 자신의 현실 앞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돈을 더욱더 구했습니다. 우리도 교회 안에서 눈에 보이는 것만 구하지 않으십니까?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집중하기보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것들에만 집중하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내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해서 남을 탓하거나 비판하지는 않으신지요. 실명을 거론하지 않겠지만 학생부에 모학생은 교회 오면 항상 먹을 것을 구합니다. 그리고 다른 학생은 항상 악기를 치는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또 다른 학생은 항상 가방을 메고 다니면서 컴퓨터와 대화하는 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물론 저희 학생들이 이런 것만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더욱더 하나님께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 왔으면 이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자가 예수그리스도께 집중하여 문제가 해결 된 것처럼 교회 안에서 항상 하나님을 만나서 자신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입니다.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자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겼습니다. 그는 기뻐 성전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성전에 들어갔던 이유는 병든 사람은 부정한 자로 여기기 때문에 그동안 성전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병이 낫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성전 안에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감사함으로 인해 사람이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가운데서도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집중하며 하나님을 구합니다.
이런 예배는 우리들이 드리는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등으로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들은 예배자라고 합니다. 예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음으로 인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배자는 자신의 삶에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합니다. 저는 이 시간 진정한 예배자 한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같이 동영상을 봅시다. 송명희 시인은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자와 같은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혹시 어영부영하게 보내시지는 않으셨나요? 오늘밤 기도하면서 우리들의 이런 삶을 회개하고 내일 하루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우리 사랑하는 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초첨을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구원받은 사람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기 전에는 스스로 신앙생활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구하며 하나님을 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헸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예배드리며 구원으로 인해 주어진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이제부터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의 모습 즉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교회 안에 이런 예배자가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