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절-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
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절-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절-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절-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오늘 가족기도회에 나온 여러분들 모두가 참으로 복된 선택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인도하신 분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흔히들 우리의 거친 인생을 무엇에 비유할까요? 그렇습니다. 세익스피어는 “우리 인생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의 어느 순간은 잔잔한 바다를 항해하는 것처럼 순탄할 때도 있고, 어느 순간에는 폭풍우가 몰아쳐와 거친 풍랑을 해치고 나아가야 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거친 폭풍우나 순탄한 바다가 아닙니다. 거친 폭풍우나 순탄한 바다는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봄이 가면 뭐가 오죠? 여름이 오는 것처럼 계속적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순탄할 때든지, 어려운 순간이든지 그 상황 때마다 ‘누구를 의지하는가?’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잔잔한 바다라고 해서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의지한다면 어떨까요? 갑자기 찾아오는 고난이라는 암초에 걸려 좌초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하루를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 때문이며,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 또한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께 나아왔다는 것은 복된 선택임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복 있는 사람인 의인과 복이 없는 사람인 악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시면 복 있는 사람인 의인은 “악인들의 꾀를 다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보았을 때 의인의 삶보다는 악인들의 삶에 대해 더욱 자세히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을 통하여 사람이 범죄함에 있어 세 가지 단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로 죄를 범하는데는 ‘단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범죄의 1단계로 본문을 가만히 살펴보면 “악인들의 꾀를 따라 가는 것”이 죄에 빠지는 1단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주 예배 빠지고 좋은데 놀러가자’라고 유혹 받아 본적 있죠? 이러한 꾀임에 따라가는 것이 범죄의 시작 ‘1단계’라는 것입니다. 우리 거룩한 믿음의 자녀들이, 믿음의 학생들과 청년 선생님들이 악한자들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율법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두 번째, 범죄의 2단계로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친구들의 꾀임에 따라갔을 때 어떤 모습을 보았습니까? 선을 행하는 모습을 보았습니까? 악을 행하는 모습을 보았습니까? 당연히 그 길을 따라가서 악행을 목격하게 됩니다. 재밌는데 가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친구들이 숨어서 담배를 피는 모습이나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본적 있죠? 저는 청소년 시절 이런 것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죄를 짓는 것을 막지 않고 보고만 있었고, 방관했다는 점이 마음에 큰 무거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악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죄인들의 길에 서서 목격하고, 구경하는 것이 범죄의 2단계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죄인들의 길에 서서는 안됩니다. 또한 그들의 악한 영향을 받아서도 안되고, 그들이 죄를 짓는데 막지 못하는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 안에서 가치관을 정립하고,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름답게 정화시키는 그리스도인 바르게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 범죄의 3단계는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따라가서, 서서 보고, 이제는 그 죄된 자리에 앉아서 죄를 범하는 일에 동참하게 됩니다. 학교에서 어떤 학생을 왕따하는 모습을 처음에는 뒷짐지고 보다가 어느 순간에는 나도 그 친구를 ‘바보’라고 놀리며 왕따시키는데 동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술 자리에 한 번, 두 번 가다보면 어느새 술을 따라주고, 어느새 술을 마시는데 동참하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 가정끼리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주중에 놀러가자는 말에 갔다가, 술파티를 하고, 세상 사람들의 교회를 비난하는 일에 같이 동참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죄의 자리에 서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믿음을 지키며, 우리의 중심을 지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죄된 자리에서 중심을 지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 번, 두 번은 지켰다 하더라도 또 다시 유혹과 꾀임이 온다면 죄를 이길 장사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복 있는 사람처럼,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어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그 죄된 자리들을 박차고 일어나 복된 자리로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복된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 자리이며, 하나님의 율법이 강론되어지는 이 곳입니다. 여러분, 병자가 음식을 잘 먹는 것 보셨습니까? 건강한 사람이 음식을 잘 먹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죄인은 말씀을 싫어합니다. 말씀을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낮에 일하면서도, 밤에 잠을 자면서도 계속적으로 생각합니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우리 인생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인생의 평탄함속에서 폭풍우 같은 어려움과 고비가 매순간마다 찾아오고, 죄된 길로 가게 하는 유혹과 꾀임 또한 찾아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말을 따르며, 어떤 자리에 서 있으며, 어떤 자리에 앉아 열심을 내고 있겠습니까? 우리가 의지할 분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 밖에 없습니다. 악한 자들의 유혹과 꾀임을 듣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인들의 자리에 서서 구경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있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말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아 범죄하는데 동참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