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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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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하나님의 고발1.
 본문말씀 : 겔16:1~63
 설교자 : 방동문전도사
 설교일자 : 2012.4.20
조회 : 8,173   추천 : 0  


1절-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절-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3절-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
       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머니는 헷사람이라
4절-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5절- 아무도 너를 돌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네가 들에 버려졌느니라
6절-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게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
       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7절- 내가 너를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
       이 자랐으나 네가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더라
8절-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4절-네 화려함으로 말미암아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
        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5절-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가지고 행음하되 지나가는 모든 자와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22절-네가 어렸을 때에 벌거벗은 몸이었으며 피투성이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네가 모
        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

25절-네가 높은 대를 모든 길 어귀에 쌓고 네 아름다움을 가증하게 하여 모든 지나가는 자에게 다리를 벌
        려 심히 음행하고
26절-하체가 큰 네 이웃 나라 애굽 사람과도 음행하되 심히 음란히 하여 내 진노를 샀도다

30절-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는 방자한 음녀의 행위라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오늘 말씀은 제가 두 번에 나누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에스겔은 바벨론에 사로잡힌 자들 가운데 있는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물의 선지자였던 예레미야는 포로들을 위로하기 위한 글을 썼다면, 에스겔은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그들의 죄에 대해서 수치를 줌으로 죄를 깨닫게 하는 글을 쓸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지시받았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임무는 예루살렘 유다 백성으로 그들의 가증함을 알게 하며, “그 죄목을 그들 앞에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는 것을 2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6장은 예루살렘에 대해 “얼굴을 대놓고” 비난을 퍼붓고 있는데, “도금성 예루살렘(Jerusalem the Golden)"의 화려하게 보이는 겉옷을 벗겨내고, 그 진짜 모습인 “음녀 예루살렘(Jerusalem the Prostitute)”의 모습으로 바꾸어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밝히며 비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에스겔은 하나님의 법정에서 심문 하는 검사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예루살렘의 겉옷을 발가벗기어 가증스럽고, 속된 예루살렘을 낱낱이 폭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제 자신과 우리 성도들, 더 나아가서 한국교회의 믿는 모든 성도들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 자신의 가증스럽고 속된 모습, 우리 성도들 각자의 눅눅하고 습한 죄들, 한국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믿음의 신자라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내면에는 더러운 죄악의 군상들이 군더더기를 이룬 모습들이 다 발가벗겨진채 고발당하고 있는 처지라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며 참으로 초라한 모습으로 고개를 차마 들 수 없는 저의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한 주 동안의 우리 자신들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더욱 거룩한 삶이 우리에게 있었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자신들의 모습은 고발당할 만한 일들을 더욱 많이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모습으로 엎드려져 있는 한 주는 아니였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법정 앞에서 서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소송하는 원고이시며,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피고로 나와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피고로 나와 있는 예루살렘의 모습을 더욱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생아와 같은 예루살렘의 출생(1-5절)
 예루살렘의 원래 모습은 사생아와 같이 버려진 여자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4절, 5절에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아무도 너를 돌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네가 들에 버려졌느니라” 본래 이스라엘은 아모리 족속이나 헷 족속의 가나안인처럼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기 전 이스라엘은 버려진 자식이었습니다. 태어났는데도 배꼽줄을 잘라주지 않았다면, 피투성이인 몸을 물로 씻어 깨끗하고 정결하게 하지 않았다면, 소금을 뿌리지도, 평안한 엄마 뱃속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강보로 싸는 어떠한 산파적 조치도 받지 않은 출생이었다면 참으로 불쌍한 출생, 축복받지 못한 출생, 축복의 자격을 박탈당한 출생으로 이스라엘은 자격이 없고, 버려진 자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무력하고 무지하며, 소망도 없는 피투성이의 발짓을 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시고 그 상황 가운데 개입하셔서 “생명을 주는 말씀”으로 그 피투성이 아이를 살리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의 결혼(6-14절)
 6절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마치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법적으로 받아들임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체중이 한참 모자라는 미숙아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도 저를 임신했을 그 때 저희 어머니의 삶은 무척이나 고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뱃속의 아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위해서 먹지도 않았고, 본인을 위해서도 먹지를 않아서 제가 미숙아로 태어났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태어났는데 저희 외할아버지가 와서 보시고는 ‘곧 죽겠다’고 한 마디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중에 제 몸이 차가워져 있고, 시꺼멓게 변해 있는 저를 어머니는 안고 우시며 “하나님 이 아이를 살려주시면 이 아이를 위해서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셨다고 믿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피투성이인 이스라엘을 보시고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고 말씀하시며 버려진 계집아이인 이스라엘을 받아들이시고, 들의 풀같이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 아이는 자라서 성적으로 성숙한 “사랑을 할 만한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처녀 이스라엘을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였다”고 8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옷으로 너를 덮어” 주신다는 이 표현은 우리가 어디서 본듯한 표현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이 과정은 룻3:9의 보아스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인 룻 자신을 덮어, 기업을 잇게 하라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관계의 성립으로 남편이 미래의 아내에 대한 부양을 준비하는 상징적인 선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버려진 자식, 축복받지 못한 피투성이와 새로운 관계를 성립하셔서 하나님이 친히 자신의 옷으로 덮으시고 그 이스라엘이 살아갈 수 있도록 부양하시는 언약의 체결을 맺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결혼관계를 맺어주심으로 처녀 이스라엘에게 기름을 발라 주시고, 아름다운 보석들로 치장시키시며, 그녀를 가장 아름다운 옷, 하나님의 영화로운 옷으로 입히셔서 화려하고 온전하게 빛나게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제 자신도 이스라엘과 별반 차이가 없이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투성이인 제 몸의 더러움들을 씻기셨고, 정결하게 하셨던 때가 기억납니다. 예수님을 고등학교 1학년 때 인격적으로 만났는데, 제가 예수님께 와서 만난 것이 아니라 힘없이 발짓하는 저에게 주님이 오셔서 저를 부르셨고, 주님이 저를 정결케 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바로 피투성이 같았던 저를 주님이 저를 거듭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빛나는 의의 옷을 입히셨고, 주님의 자녀로 아름답게 세우셨으며, 머리 한 터럭도 상하지 않도록 저를 품으시고 지켜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저의 고백이 저만의 고백이겠습니까? 여러분들의 고백, 우리 믿는 성도들의 고백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의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각자의 삶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주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만나 주셨고, 죄악들을 정결케 하셨으며, 의의 옷을 입혀 주셨고, 머리 한 터럭, 털 끝 하나도 상하지 않도록 지금까지 우리를 주의 품에 품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의 기가막힌 은혜를 우리가 기억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살아오면서 삶의 여러 우상들에게 다 빼앗겨 버렸다는 것이 우리의 현재 모습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두어주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행음한 그 모습입니다. 


3. 예루살렘의 행음(15-34절)
 예루살렘의 죄악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화려하게 빛나는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옷을 입어 영화롭고 화려한 것인데, 그 사실을 잊고 자신 안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 화려하게 빛나게 여겼던 착각의 교만(15절)이며, 하나님이 아닌 이방에, 하나님이 아닌 물질이면 다 된다는 유물론적 세계관에 푹 빠져서 향락을 즐기는 영적인 간음(15-19절), 하나님보다 세상이 더욱 크게 여기는 영적인 우상숭배, 자기의 자녀들을 부모가 같던 그 길로 똑같이 걷게 하는, 하나님이 아닌 세상에게 먼저 내어주는 모습, 세상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히게 한 영적인 인신제물(20-21절), 무엇보다도 22절에 “네가 어렸을 때에 벌거벗은 몸, 피투성이 몸”으로 발짓하던 그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하나님을 향한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두고도 잊고 있었던 ‘망각’이 큰 죄라 할 수 있습니다. 더 중한 죄는 그 ‘망각’이 내 안에 있으면서도 그 중대한 죄를 깨닫지 못하고, 그렇지 않은척 했던 ‘가증함의 죄악들’ 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이스라엘의 죄악들이 나의 죄악, 우리의 죄악들이 아닙니까? 나의 잘남과 나의 똑똑함이, 나의 언변이, 나의 바지런함으로 얻었던 이익들이, 나의 애쓰고 땀 흘림이 이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자생적으로 생겨 나왔던 것입니까? 원래부터 내가 가지고 있었던 능력이었습니까? 이 모든 것들이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고, 우리 하나님이 주신 것 아니었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영화로운 빛, 영화로운 옷을 입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믿음의 삶을 살면서 ‘현실적으로는 맞지 않다’ 는 말을 자주 반복하면서 세상의 이치보다 하나님을 작은 분으로 여겼던 하나님을 무시하는 마음의 죄악들이 우리 안에 얼마나 자주 있었습니까? 하나님보다는 물질에 영향을 받아 그 물질 세계에 맞추어 생각하고, 계획하며, 행했던 죄악들이 바로 저와 우리의 모습입니다. 자녀들을 하나님 품으로 인도한다 하면서도 나 자신도 모르게 자녀들을 세상의 원리와 이치에 따라 가라고 등을 떠밀어 세상의 물에 빠뜨렸던 모습이 우리 안에 너무도 빈번히 있었습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두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행하심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가벼운 도움과 격려, 위로를 더 크게 여기고, 더 감사를 표현하며, 더욱 오래도록 기억했던 모습이 저의 모습이고, 안타깝지만 우리의 모습입니다. 어느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에 대해 우리 머릿속에서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웠습니다. 하나님을 잊은 망각으로 인해 내 안에서 큰 어려움으로 때마다, 일마다 나에게 와서 부딪히며 힘들게 하는데도, ‘나는 힘들지 않아, 나는 어려움이 없어, 나는 지금 주님과 좋은 사이’로 착각하며 여겼던 내 안에 가증함이 우리에게 군더더기로 붙어 있는 죄악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어렸을적 피투성이로 죽음만을 기다리며 발짓하던 때를 다시금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피투성이었던 이스라엘의 모습은 버려진 자식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이며,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태어났는데도 배꼽줄을 잘라주는 사람이 없었고, 내 몸에 엉겨붙은 죄악의 피투성이들을 정결케 씻겨주는 이가 없었으며, 부드럽고 따뜻한 강보로 감싸주는 이가 없어서 추위 속에서, 힘없이 발짓을 하고 있던 우리를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고아같이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그 가운데 개입하셔서 우리를 안으시고 품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화로운 옷으로 입혀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하지 못하고, 또 하나님의 앞서 행하심을 기억하지 못하고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버리는 큰 잘못을 범한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이뿐 아니라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세상 쪽에 치우친 온전치 못한 모습이 우리 안에 매순간마다 있었습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약합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둔하여 심각성을 못 느꼈고, 내 앞에 드리워진 하나님의 큰 진노하심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안도하며 ‘평안하다’ 말했던 우리의 무지함과 어리석음, 내 자신의 본래 모습인 ‘버려진 자식’이었던 피투성이 때를 기억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던 모든 죄악들을 오늘 이 밤에 다 고백하고, 회개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선처를 간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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