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신 동영상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용서입니다.
동영상의 여자는 육신의 생명을 살려주므로 놀라운 영혼의 구원까지 얻었습니다.
그가 용서받을수 있었기에 그가 용서를 합니다.
용서는 위대하고 용서는 지혜입니다.
허버트 경이란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남을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건너야 할 다리를 파괴하는 사람과 같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용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모두가 죄인입니다. 결국 우리는 서로 용서하며 살아야 하는 구조 속에 살고 있는것이고 그렇게 했을때에 여러분의 가정에 웃음이 생겨 날것입니다
여러분의 회사가 번창하고 여러분이 인정 받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부흥할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이밤 위대한 용서의 맘으로 우리 상황을 반전 할 수 있는 큰 은혜가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많은 성경의 내용중 용서에 대한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용서는 명령이 아닙니다.
용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용서해야 하는것입니다.
그럼 저를 따라 하겠습니다
용서는 명령이 아닙니다
용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남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용서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 그래도 그래도 용서를 몇 번이나 해야 합니까?
저정도 되니까? 이만큼 해야 용서를 하는겁니까?
베드로는 자신있게 주님께 묻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22절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
죄인을 용서하는 것에 대해서 베드로가 7번이라고 한 것은 그 당시에 랍비들은 잘못에 대해서 3번을 용서해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세 번보다 네 번 더 많은 7번을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칭찬하기는커녕 일흔 번씩 일곱 번 490번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한계없이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용서하지 않을 때 우리는 불면증 죄의식 삶의 무력감 좌절감 인내하지 못함,그리고 폭언과 분노 소화불량에 피로감 까지 육신으로나 영혼으로나 우리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 받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할때에는 우리는 자유를 누리며 숙면할수 있고 삶의 의미와 목적도 새로워질 뿐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질수 있습니다.
용서라는 말은 본래 경제 분야에서 사용되었는데.. 부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 합니다
만약제가 여러분에게 100만원을 빌렸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사랑이 많으셔서 저의 빚을 탕감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용서의 개념입니다.
더 이상 돈을 받지 않아도 되고 이자를 받는것도 없이 그 백만원에 대한 것은 백지장이 되는것입니다. 단지 그 돈을 탕감해준 여러분에게 감사와 위로 그리고 존경의 맘은 남겠지요
이것이 용서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용서를 어떻게 내것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있을까요
우리는 베드로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첫째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예수님의 제자 하면 베드로입니다.
하지만 그는 가끔씩 경솔한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또 그렇지 않은가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옆에서 그의 수종을 들었던 베드로 그는 예수님에게 떳떳하게 물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렇게 질문 했을 것 같아요
예수님의 수제자베드로가 질문 합니다. 혹시 용서를 그정도만 하면 됩니까?
자신있게 물었겠지요.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적어도 형제를 세 번 정도만 용서하면 참으로 아량이 넓고 신앙
심이 돈독한 고상한 인격자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배경하에서 사도 베
드로가 감히 일곱 번의 용서를 거론한 것은 상당한 발전이요, 파격적인 주장이라
아니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이러한 질문을 통하여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인격자인가를 넌지시 자랑하고자 했음이 분명합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무한
한 사랑과 용서와 이해를 가르치심으로써 이러한 베드로의 자아도취적이고 자기중
심적인 생각을 완전히 깨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 용서를 잘 한다고 하는 자아도취적 용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은 심판자가 아닙니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여러분이 믿음이 좋다고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명령을 받아서가 아니라 공짜로 받은 귀
한 사랑을 받고 용서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용서해야 하는것입니다.
둘째로
저는 매일 매일 쪽지시험을 보는 초대교회사 시간이있습니다.
너무 어렵고 짜증이 납니다.
다행히 방동문 전도사님이 저랑 같이 수업을 들어 저를 감시하십니다.
그래서 졸지 않고 은혜로 그 시간이 즐겁고 쪽지 시험이 그렇게 두렵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린 시절 매일 시험을 봤던 기억이 있습니까?
얼마나 짜증 나서 아닐까요?
저는 너무 그 수업이 싫습니다.
그래서 매일 방 전도사님들의 위로를 받고 밤에 기도를 하고 다음날 화요일 8시부터 그 수업을 들으러 갑니다.
공부열심히 하라고 노트북도 사주고 간식도 사주는 강현주 선생님의 말이 생각나서 일단은 맨앞에 앉아 수업을 듣습니다.
왜 싫어할까 왜 내가 싫어 할까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시험입니다. 매일 매일 보는 시험. 성적에 들어갑니다.
그말이 저를 엄청 스트레스 받게 합니다.그러나. 저는 요즘 그 수업시간에 은혜를 받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바로 매일 매일 보는 쪽지 시험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교수님이 매일 매일 쪽지 시험을 보는것은 초대교회사라는 과목 자체가 이름도 어렵고 지명도 어려워 쉽게 너희들 수업을 이해해라 해서 복습하고 예습하라는 의미였던 것이였습니다.
그 맘을 알았습니다. 또 한 학기 쪽지 시험을 통털어 10점 밖에 안되는것이였습니다.
그래 그냥 수업때 예습하는 맘으로 쪽지시험준비하자.
요즘은 점수도 잘 나오고 수업이 엄청 재미있습니다.
사랑하는성도 여러분 용서는 원인과 이유를 따지면 절대 할 수없습니다.
이 말은 제가 쪽지시험에 대해 자유하지 못하였다면 교수님의 맘을 갖지 못했다면
결국 이번학기 이 수업은 망친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백성에 대해 용서하지 못한다면 주님은 매일 매일 여러분에게 쪽지 시험을 주실것입니다.그리고 여러분을 매일 매일 괴롭힐것입니다.
내가 매일 매일 용서해야 할 일이 생긴다는것은 아직 하나님의 맘을 알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구나 라고 생각하십시오.
만약 그 용서의 쪽지 시험이 가정에서 자주 일어납니까? 그렇다면 빨리 여러분이 가정에 대해 용서하고 여러분가정을 향한 하나나님의 맘을 알라고 하는 시험인것입니다.
여러분 회사입니까? 회사안에서 여러분이 빨리 하나님의 맘을 알고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부 친구 아니면 이성친구 에 힘든 용서가 자주 일어납니까?
그건 하나님이 주신 그 상황에 대한 맘을 모르기 때문에 주시는 쪽지시험인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3.4에서
1.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없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세째로
용서는 또 다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어 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용서로 엄청나고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이 됩니다.
예수님의 실천적인 요 21:17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무제한의 용서
용서로 그는 무식한 베드로 비겁한 베드로에서 순결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수님의 제자로 만드셨습니다.
여러분 남에게 용서를 해라 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여러분이 먼저 하십시오
여러분이 먼저 하신 용서해준 상대방이 베드로처럼 주를 위해 복음을 전하고 순교하는 위대한 사도가 될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대로 자녀 교육하십시오
여러분 제대로 학생들을 가르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대로 이웃에게 용서하십시오
이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는 저희 채플 시간에 어떤 목사님 친구 이야기를 해주신것입니다.
목사님의 친구분중 춘천에서 20분정도 차를 더 타고 들어가면 교인 10명도 되지 않는 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는 친구분이 계셨습니다.
젊이도 없고 어린이도 없고 오직 노인들만 이 곳 교회에서는 희망도 미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어려워 결심한 것이 사모님이 순부부 가게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 목사님 내외를 불쌍히 여기셨는지 그 두아들이 너무 너무 잘컸습니다
그래서 큰 아들은 우리 나라에서 젤로 좋은 서울대에 입학하고 졸업이후 바로 대기업에
좋은 조건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사모님에게 이그 이제 우리 먹고 사는건 걱정 없겠다.하며 흐믓해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 가 끝나면 재미 없지요
하루는 큰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저 드릴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들어와 앉아라..
아이쿠!!!!
무슨일이 일어났을까요?
아버지 저 선교사가 되야겠습니다.
아이고 이놈아 왜 하필 너냐?
그 많은 선교사들이 줄을 섰는데 왜 하필 너냐구..
아버지는 억장이 무저졌습니다.
결국 사모님은 자리에 누었습니다.
우리야 웃지만 얼마나 암담했겠습니까?
결국 그 아들은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더 기도 하겠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이모 삼촌 고모 할것없이 모두가 매일 매일 그 집을 방문하며
이놈아 아깝지도 않니? 응? 맘 바꾸어라 왜 하나님이 꼭 니가 가야 한다니?
하면서 설득을 했습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