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
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3절-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당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
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오늘은 “선봉에 서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사기 첫 장과 사사기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서 첫 권인 여호수아서의 내용과 분위기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서의 내용을 한 마디로 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해 나아가는 “약속에 의한 정복과 정착”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승리와 축복의 분위기가 가득했던 것이 여호수아서의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사사기에 오면 그러한 분위기가 정반대로 바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하나님에 대해서 배반하고 그로인해 정복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패배의 내용, 패배의 분위기가 가득한 것이 사사기의 지배적인 분위기입니다.
본문인 삿1:1은 어떻게 시작합니까?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라는 말로 사사기가 시작되고 있는데, 여호수아가 죽은 후의 사사시대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혼돈과 타락의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라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죽은 후에”라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자리가 비어 있는, 나라의 위기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모세와 여호수아 후에는, 우리가 기억할 만한 뛰어난 지도자가 전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해서,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을 정복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다면, 여호수아를 통해서는 무엇을 주셨을까요? “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호수아 후에는 그를 이을 만한 지도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구조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각 지파가 자신들의 땅을 분배 받아서, 이제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지파 별로 흩어져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완전히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족속들이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이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되어서 이스라엘은 점차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게 되었고, 하나님의 징계하심으로, 이스라엘 각 지파들이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민족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즉, 사사기는 모세와 여호수아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죽고 나서, 이스라엘에 처음으로 왕이 세워지기까지 “혼돈의 시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두운 분위기로 가득한 사사기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혼돈과 타락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쓰임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능력을 부어주시고 사용하셨던 사사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어두운 세상의 이면을 볼 때마다 우리는 “말세야 말세”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갈수록 세상은 혼돈과 타락의 길을 걷고 있는데, 이렇게 어두운 시대에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능력을 받아 쓰임 받는 사사들과 같은 인물들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3가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사람이 죽어도, 하나님의 일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나아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는 내용입니다. 여호수아는 죽었지만, 가나안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 그들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죽었다고 해서, 가나안 정복이라는 이스라엘의 임무가 중단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는 계속해서 그들의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도자를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지도자를 통해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이끌어 가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특정한 지도자의 삶에 국한되어 성취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는 죽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행진은 계속되어야 했습니다. 그 일을 수행한 사람이 여호수아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이제 죽어 없었지만, 여전히 가나안 정복은 계속되어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가 그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또 사사기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12명의 사사들이 그 일들을 감당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충성을 다해서 하나님께 쓰임 받고 죽으면,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도 우리의 후손을 통해서 계속해서 일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계획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데 쓰임 받는 작은 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가정 안에서 작은 부분이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아야 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작은 부분이지만 내가 하나님께 쓰임 받아야 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이번년도 대선이 있죠? 만약에 나라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진행 중에 있던 모든 사업이 중단되고, 취소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국민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대통령이나 시장이라고 한다면,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일꾼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관하심이 아닌 자기가 자기 주관에 빠져 주인공이 되려고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내가 주인공이 되려고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모세가 되어야겠다. 내가 여호수아가 되어야겠다’ 하는 생각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그것을 위해서 작은 한 부분이라도 쓰임 받는 종이 되어야겠다는 겸손한 생각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유다 지파와 같이, 시므온 지파와 같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고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작은 일꾼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는, “선봉에 서는 사람이 되자” 하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패역과 패배가 가득한 어두운 책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사기의 시작 부분은 아주 긍정적이고 힘찬 출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지도자가 죽었다고 겁을 먹고 움츠려든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라고 하나님께 물어본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가 올라가라”고 말씀하시며 유다 지파를 지목하셨습니다. 유다 지파는 어떤 지파였습니까?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늘 가장 앞장서서 나아갔던 지파였습니다. “행동하는 지파”였습니다. “진취적인 지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유다 지파를 선봉에 세우신 것입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유다 지파는 선봉에 서서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정 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적극적으로 행동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도 맡겨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본문을 통하여 깨닫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위기가 찾아오면 용기를 잃고, 주저앉을 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은 나라의 지도자가 죽고, 뒤를 이을 지도자가 없는 국가적인 위기 상황을 맞았지만 주저앉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누가 먼저 올라가서 싸울까요?” 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우리 가정 안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일들을 하고자 하여 가정을 바꾸려고, 가정을 개혁하려고 할 때에 우리는 ‘가족 간의 사소한 위기’로 용기를 잃고, 포기해 버렸던 기억들이 종종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을 때 이스라엘에 훌륭하고 출중한 지도자들이 죽었던 상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위기 앞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이스라엘의 지파들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기를 원합니다. 교회 안에서 또, 각 부서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엿보고 알아차렸을 때 그 일들을 행함에 있어서 큰 어려움을 느낄 때에도, 설령 해보았자 되지 않을 것 같은 예상이 뻔히 든다 할지라도 오늘 본문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이스라엘의 지파들처럼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원하심을 향해 성도들을 견인해가는 충직한 근성이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유다 지파는 항상 선봉의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유다 지파와 같이, 모두가 주저하고 무서워할 때, 과감하게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하나님의 좋은 군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남들이 먼저 나서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남들이 나를 시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말씀에 힘입어 제가 나아가겠습니다!” 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서, 늘 선봉의 자리에 서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은 이 밤에 선봉의 자리로 나아온 것입니다. 남보다 먼저 예배하는 선봉에 서고, 남보다 먼저 봉사함으로 선봉에 서고,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전도함으로 선봉에 서는 하나님의 좋은 군사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선봉에 서게 된 유다 지파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지파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협력할 줄 아는 지파였습니다. 3절에 보면, 유다 지파가 선봉의 자리에 서면서 시므온 지파에게,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하고 강력히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시므온 지파가 유다 지파와 함께 그 땅을 향해 나아갔고, 이 두 지파는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전4:12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지파는 이 삼겹줄의 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므온 지파에게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함께 협력할 줄 아는 사람은 진정으로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 혼자서 할 수 있을지라도, 자꾸 “함께 하자”고 권면해서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일에 함께 동참하도록 하고, 함께 봉사할 수 있도록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때 즐겁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동참케 하고서 부드러운 마음을 갖지 못하고 인상을 쓰는 모습을 보이면 은혜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나오신 우리 귀한 동역자들이 서로에게 쉽게 끊어지지 않는 삼겹줄을 이루고, 유다 지파와 같이 협력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발견하게 되는 재미있는 일은 시므온 지파도, 유다 지파가 함께 가자고 했을 때, 튕기지 않고, 거절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시므온 지파도 역시 협력할 줄 아는 지파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시므온 지파처럼, 누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함께 하자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힘을 모으고 협력할 수 있는, 겸손하고 적극적인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서로가 “협력하자고 하며, 흔쾌히 같이 협력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는 얼마나 기쁘고 좋을까요? 그런 성도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참으로 즐겁고, 유쾌한 상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는 좋은 기질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져서 이룬 것이 아니라, 서로 노력하고 노력해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사랑하는 교회가 하루아침에 그런 아름다운 교회로 되어져 있어서 그런 곳에서 사역하기를 꿈꾸기보다는 지금 힘들더라도 낑낑대면서 같이 노력해서 만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갈수록 혼돈과 타락이 난무해지는 이 어두운 세상에서 자꾸만 성도들이 악해지는 이러한 시대에, 밝은 빛으로 선봉에 서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