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절-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절-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
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20절-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
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21절- 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가니라
출애굽기 20장을 우리는 십계명장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으로 인도하셨고,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내산 언약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힘쓰고 지켜야 하는 십계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우리가 묵상해야 할 본문 전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 모든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산 시내산에 강림하신 여호와를 “경험”하게 되었고, 여호와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되었고, 또 여호와께서 강림하실 때 나타난 현상들, 즉 우레와 번개, 나팔 소리와 산에서 나는 연기를 “보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더욱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레”라는 단어는 “목소리”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목소리”라는 뜻은 “소리쳐 부르다”라는 의미의 어근에서 파생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우레” 같은 목소리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직접적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인 것입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우레"라는 단어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다는 것이 저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또, “번개”는 “빛”을 의미하며, “나팔 소리”는 “맑은 소리”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부른 듯, 안 부른 듯 희미했던 것이 아니라 맑고 분명한 소리로 청각적으로 이스라엘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산에서 피어나는 “연기”는 “분노하다, 화내다, 내뿜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부르시는데, 시각적으로 번쩍거리는 빛 가운데서 선명하게 보이시며, 청각적으로 분명하고 맑은 소리로 분명하게 들리도록, 소리쳐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간접적인 경험이 아닌 직접적으로 친히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음성을 “직접적으로 들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임재하심을 “직접적으로 봄으로” 비로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모세라는 지도자를 통해서만 여호와 하나님을 간접적으로만 경험하였고, 간접적으로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아는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험한 이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무서워 떨며 멀리 물러났다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모세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라고 맘조리면서 간청했습니다. 이에 모세가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여전히 멀리 물러서 있는 백성들을 뒤로 한 채, 모세 혼자 하나님의 임재를 향하여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서 한 가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만나고, 직접적으로 경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봄으로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저 전해 듣기만 하고,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말씀하시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체험을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시길 고대하시는 분입니다. 계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문을 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기를 기다리고 계시고, 우리에게 들어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드리러 올 때마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해 활짝 열렸는지 점검을 해야 합니다. 때론, 우린 착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주님께 예배드리러 왔으니까 내 마음도 주님께 활짝 열렸으리라’ 으레 생각할 때가 많지만, 그건 착오입니다. 오히려 마음의 문이 꼭꼭 잠겨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몸과 마음이 따로 나뉘어져 습관적으로 몸만 예배당에 온 것입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릴 때 말씀이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것입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듣고, 보며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배에 나올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그 쉬운 방법은 우리가 예배드리러 나왔을 때마다 주님께 “주님! 제가 경황이 없는 중에 주님께 나왔지만, 제가 바쁜 중에 주님께 나왔지만, 이 시간에 제 마음을 열어 주님을 제 마음에 모시기를 원합니다.”라고 예배의 자리에 왔을 때마다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그렇게 예배를 시작하지 못했더라도 괜찮습니다. 지금 예배드리는 이 순간에라도 주님께 나직이 고백하면,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기를 고대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문을 열고 들어 오실 줄 믿습니다.
오늘 이 밤에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눈을 열어 주님을 보게 해달라고, 주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우리 마음 문을 활짝 열어드려 주님께서 들어오시고, 우리와 풍성하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출33:11에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아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던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두려워하며 뒤로 물러났던 이스라엘 백성의 콩알만한 마음의 자세를 본받지 말고,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임재를 향해 나아가며, 하나님과의 풍성한 교제를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교역자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나에게 말씀하여 주시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본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서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가,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써 다시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누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한 삶입니다. 요15:15에 예수님께서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종이라 하지 않으시고 친구처럼 대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과 친구가 되는 풍성한 교제를 누릴 때 하나님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모세나, 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얘기가, 우리와는 상관없는 옛날 얘기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던 모든 사람들은, 우리와 다를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의사소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에 힘쓰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을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체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1월, 2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묵상하며 읽고 있습니다. 말씀을 읽으며 느끼셨겠지만, 말씀을 읽는 것도 아까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 예배를 몸따로 마음따로 드리는 것과 같이 말씀을 읽으면서도 눈따로, 마음따로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셨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는 최대한 집중을 해서 말씀 속의 사건들을 이미지화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즐겨보는 드라마와 같이, 영화처럼 말씀을 이미지화해서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그 사건이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사건이 아니라 나의 사건처럼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또, 그 사건 속에서 들려진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렇게 실천하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잘 안되지만, 하다보면 조금씩 말씀에 집중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말씀에 은혜를 주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노력할 때 이것이 바로 ‘주님과의 의사소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나기를 두려워 한 것은 자신들의 죄악들 때문입니다. 그 죄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정반대의 생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크게 만나고, 경험하기를 소원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 그러하기를 머뭇거렸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 부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사는 것이 자신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만 사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거룩하게 생활하는 것이 답답할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매일매일 마음속에서 거룩한 전쟁, 선한 싸움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치열하게 일어나는데, 항상 주님 보시기에 선한 선택을 할 자신이 미리 생각해 보니 없는 것입니다. 그럴바엔 차라리 지금 하나님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은 마음이 사실 우리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과의 교제는 내 삶을 성숙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알기 원합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이토록 두렵고 떨린 여호와의 임재하심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친히 나타나 말씀하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여호와를 경외하며, 범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20절에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고, 체험을 주시고, 친밀한 교제를 나눠주시는 목적은, 우리가 더욱 성숙한 신앙을 갖고,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과 가까이 “성화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두려워하며 뒤로 물러나지 말고, 모세처럼 하나님이 계신 곳을 향하여,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거룩한 발걸음”을 해야 하는 때가 지금 이 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체험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화의 삶”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서 우리 사랑하는 교회가 2012년도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자”라는 주제 표어를 삼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만나기를 원합니다. 목사님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알기보다는 오늘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우레와 나팔소리를 직접적으로 들은 것처럼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일대일로 듣기를’ 원하며, 번개와 산의 연기를 직접적으로 보여 주신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마주대하여 보기를’ 원합니다. 또,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적으로 듣고, 볼 때에 이스라엘 백성처럼 간이 콩알만해져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멀리 도망가는 자세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히10:19-20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는 말씀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만나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 도망하지 말고, 더욱 모세처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을 크게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히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했습니다. 예리하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묵상하며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적으로 들어서 그 분과 친구처럼 교제하기를 원합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신앙이 날마다 성숙해지는 “성화의 기쁨”이 우리 삶에 새롭게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