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10:23-33절
제목 :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는 한해!
성도들의 삶속으로
플로렌스 채드윅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수영선수가 있습니다. 채워드는 1952년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카타리나 섬에서 출발해서 35km 떨어진 캘리포니아 해안까지 수영을 건너가는 것을 도전했습니다. 무려 16시간이나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쉬지도 않는 한계에 도전한 것입니다. 그러다 갚자기 짙은 안개가 덮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고, 심리적으로 불안해지자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채드윅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구조선에 올라선 채드윅은 500m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후회를 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인터뷰에서 “제가 도전에 실패한 것은 차가운 물도, 피곤도, 안개도 아닙니다. 해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해안이 보였다면 포기하지 않고 성공했을 것입니다.” 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확히 2달뒤인 9월 4일에 다시한번 도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짙은 안개가 도전을 방해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사람들이 걱정했지만 채드윅은 캘리포니아 해변에 도착해서 도전에 성공을 했습니다. 그리고 기자가, 지난번과 같은 좋지 않은 기상조건인데 성공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눈이 아닌, 제 마음으로 목표지점인 캘리포니아 해변을 보고 있었습니다.” 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같은 상황, 같은 인물이지만 목표의 유무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인생의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계십니까? 어느 통계자료에 의하면 인생의 분명한 목표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87%나 된다고 합니다.
1) 연결 -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반듯시 품어야할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품어야 할 인생의 목표를 확인하고 결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고린도교회의 문제!
오늘 우리들이 살펴보려고 하는 교회는 고린도교회입니다. 고린도는 지금의 그리스지역이며,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시점인 AD50년경 천막장사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가정과 함께 세운 교회입니다. 물론 쉽게 세워진 교회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고린도지역의 특징 때문입니다. 고린도 항구 도시입니다. 따라서 외국인들의 거주가 많은 곳입니다. 그러기에 그 지역에는 이방신전이 30개나 되고 이방종교의 포교활동이 대단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적으로도 매우 문란한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고린도를 바라보며 사도바울의 첫 느낌을 행18:9절에서는 “두려움”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다시말해 바울이 고린도를 바라보며 심각한 영적인 절망감에 빠질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복음 전파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1년 6개월만에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는 약 3-4년뒤인 AD55년경 보내진 편지입니다.
우리가 조금더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고린도교회는 매우 장점이 많은 교회입니다.(참고, 고전1:4-9절) 특별히 고린도교회는 성경적 교리에 대한 지식이 탁월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지식에 대한 열정도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는 매우 많은 성령의 은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인, 병고침, 예언과 방언, 통변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성도들이 방언을 하고 많은 성도들이 예언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교회의 사랑방 모임과 같은 성도의 모임도 매우 활성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볼로와 같은 유능한 목회자 여러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재정도 꽤 넉넉한 교회로서 구제활동에 대단한 열심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세운 몇 몇 교회들 중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지적이며, 능력과 은사가 풍부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불과 3-4년만에 대단히 급속도로 성장한 교회입니다. 우리도 이런 교회가 될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가 씌여진 이유는 고린도교회안에 방치할수 없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분쟁(1-4장), "음행(5장-서모), 성도들끼리의 법정 소송, 사기, 성적타락(6장), 심각한 외도와 이혼(7장), 교만(8장), 우상숭배(10장), 차별(11장)..,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가장 심각하게 여긴 문제는 바로 “분쟁과 다툼”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확인해야 합니다. 고전1:11-12절을 보면,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 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들끼리, 자신과 스타일이 비슷한 사람들이 어울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 자체가 틀렸다고 말할수 없습니다. 그럴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들만 옳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틀렸다고 비난하고 험담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목회자인 바울에게 가장 큰 아픔이고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잊지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교회, 흠이 없는 교회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교회이든 문제없는 교회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이상하게 여기면 안됩니다. 도리어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문제는 곧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기도하고, 품고, 해결하기를 원하시는 사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의 가정에 이런 분쟁과 다툼이 계속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혹시 우리 교회안에서 이런 분쟁과 다툼의 기운이 흐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더 나은 배우자, 가족, 성도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다름은 축복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구일까요? 어느 글에 의하면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책을 한권만 읽은 사람은 자신이 읽은 그 책의 내용이 전부라고 믿기 때문에,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말을 들으려하지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있는 곳에는 항상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바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고린도의 신자들이 서로 다툼과 분쟁이 생긴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기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별문제 없었고, 단지 서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고전1:12절을 보면,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자라” 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어떤 사람은 고린도교회의 설립자인 바울이 최고라고 여겼고, 어떤 사람은 매력적이고 탁월한 설교에 능한 아볼로를 최고로 여기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를 최고로 여기고, 어떤 사람은 성령을 통한 직통계시를 최고로 여긴 것입니다. 이처럼 각자의 생각에 따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뭉치고 자신들만 옳고 나머지는 틀렸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즉, 다름때문에 교회에 분열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와 다른것을 틀렸다고 말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이런 오류에 쉽게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가 무엇이고, 편이 갈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특별한 문제때문이 아닙니다. 예를들면, 난 이렇게 말하는데 넌 왜 그렇게 말하냐는 것입니다. 또한 내 생각을 이런데 네 생각은 왜 그러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무서운 생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매우 큰 축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다름이 축복임을 인정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안에서는 똑같은 사람이 있을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같음을 강조하는 것은 창조질서를 거역하는 일이 됩니다. 예를들면 우리의 눈에 보이는 외모, 연령, 직업, 학력의 차이..,등 또한 보이지 않는 생각, 성격, 관심과 습관의 차이..., 등 뿐만 아니라, 영적인 수준 역시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초신자로 시작하여 안수집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분자도 분명히 교회안에는 존재하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안에서 하는 일도 각 각 다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서로가 다르다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다 똑같은 스타일, 재능, 수준을 가졌다면 어떨까요? 예를들면, 우리 교회 어떤 집사님이 사모님처럼 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저는안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사모님은 참 조용합니다.목소리를 아십니까? 누구를 흉보지도 않습니다. 기도도 열심히 합니다. 그리고 이쁘고 착하고, 피아노도 잘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 교회 성도들이 다 사모님같이 된다면 어떨까요? 아마 기도하는 것, 조용한 것, 피아노는 참 잘 칠 것입니다. 그런데 웃음을 주는 분위기 메이커는 할수 있는 일이 많이 제한 될것입니다. 처음 오시는 분은 너무 조용해서 절인줄로 착각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12명의 제자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똑같은 사람이 있었나요? 아닙니다. 불같은 성격을 가진 베드로, 의심이 많은 도마, 배타적이고 과격한 야고보, 진지하고 신중한 빌립, 강한 결단력을 가진 마태, 계산에 빠른 유다,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른 민족주의자인 열심당원 시몬..., 등 모두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런 방식으로 제자를 부르셨을까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우리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십시오! 이것이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다름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고전12:12절에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공동체의 서로 각기 다름은 결코 약점이나 교회의 불리함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며 축복입니다. 저는 지금 우리 교회안에 조직된 중창단이 활성화 되기를 바라며, 더나가 조만간에 성가대가 조직되기를 기대합니다. 왜냐하면, 서로 다름이 아름답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중창단이나 성가대를 해보신 분은 아실 겁니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각 각의 음은 결코 감동을 줄 만큼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질 때, 아름다움과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름의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다름으로 늘 문제되는 가정에서 다름이 어우러진 합창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안에서 목사인 제가 독창하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자신의 파트에 맞는 소리를 내어 합창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만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버리시고, 자신의 주장하고 강조하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상처난 여러분의 마음의 치료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럴때, 다름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듣게 될 것입니다.
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느 시골할머니가 서울 사는 딸네 집을 찾아 서울에 올라 왔습니다. 몇 년 사이에 어찌나 변했는지 이 집이 저 집 같고, 저 집이 이 집 같아서 할머니는 당황해 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청년이 할머니에게 어디는찾는지 물었습니다. 할머니가 대답하시길 딸네 집을 찾아왔는데 도무지 어느 집인지 모르겠다고 사정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청년은 주소도 모른다는 말에 난처해져, 그럼 혹시 딸네 집에 다른 집과 달랐던 무슨 특징이 없었던가를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한참 생각하더니 발게 웃으시며 다음같이 말했답니다. "맞아 있었지, 내가 그때 기억해 두기를 잘했어. 우리 딸네 집 담장 위에 누런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네." ...,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혹시, 돈, 건강, 명예, 학벌, 호화호식이라면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는 누런 고양이 같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할것은, 우리네 인생의 목표에 대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분쟁과 다툼가운데 있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제시한 해결방안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31절입니다. 즉, “먹던지 마시던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고린도교회의 성도들 사이에 분쟁과 다툼이 생긴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 이라는 인생의 목표가 없었기 때문인이라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답안입니다. 우리 같으면, 서로 맞춰주라! 사랑해주라고만 권면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가장 본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하나님됨의 나타남” 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소개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32절을 보면, “누구에게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리고 24, 33절을 보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기 위익을 구하지 말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 말을 합니다. 다시말해,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산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리가 먼 빗나간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를 기쁘게하고, 감동을 주며, 서로의 유익을 위해 사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안에는 분쟁, 다툼은 끼어들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모습을 알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수없이 많은 박해와 고난이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매우 큰 기쁨과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라는 분명한 인생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교회와 성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분명히 외형적으로는 대단한 성장을 이루었고, 교회에는 수없이 많은 프로그램이 있고 또 개발되어지고 있습니다. 어디그뿐입니까? 재정적 풍요와 좋은 장비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면에서 부족했던 초대교회와 당시의 그리스도인들과 같은 감격과 기쁨이 물결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보겠다는 고민과 노력이 식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감격과 기쁨이 오간데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시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살아보겠노라는 인생의 목표가 세워질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여러분의 가정도 교회도 인간의 나라가 세워지게 되고, 다툼과 힘 겨루기의 싸움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것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기준으로 생활합시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작은 일을 먹고 마시는 문제 라고 소개합니다. 그런 훈련이 되어질 때, 우리의 목숨까지, 우리의 미래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제물이 될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장로교 교리의 표준인 소요리문답 제1문에 “사람의 제일된 목적”에 대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과 삶
1)고린도의 성장과 열심을 본받읍시다.
2)우리는 서로 다름이 축복이며 기회임을 알고 늘 멋진 합창의 하모니가 울려나는 가정과 교회가 됩시다.
3)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인생의 목표로 삼을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더 이상 누런 고양이 같은 인생의 목표로 인생을 낭비하지 맙시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멋진 인생의 목표로 오늘 새로운 출발을 할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