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계2:8-11절
제목 : 칭찬받는 한 달이 됩시다!
10월이 시작되었습니다. 특별히 10월은 주님께 칭찬받는 달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소아시아 7교회중 유일하게 책망이 없고 칭찬만 받은 2교회중 하나인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1.서머나 교회는 어떤 곳인가?
서머나교회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가운데 에베소와 더불어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행19:10절) 그리고 서머나 지역은 과학과 의술이 발달했고 황금의거리가 있을 정도로 풍요로운 해안도시입니다. 지금도 소아시아중에 가장 부유하며 아시아의 꽃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이며 터키의 중심도시 이즈밀입니다. 이처럼 서머나지역이 크게 발달한 이유는, 로마의 도움 때문입니다. 즉, 서머나 사람들은 로마에 로마여신을 위한 신전까지 지어 바칠 정도로 매우 큰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충성에 감동한 로마황제가 서머나를 로마의 동맹국, 더나가서 로마의 시민으로까지 인정하며 많은 특권을 주었던 것입니다. 물론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로마의 황제를 숭배”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머나는 황제숭배를 받아들였고, 로마로부터 많은 특권을 얻게 되어 많은 부유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2.서머나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
먼저, 8절의 말씀을 보면, 주님의 모습이 소개됩니다.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 라고 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처음이요 나중”이라는 의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분이시며, 모든 것을 창조하신 역사의 주인되시고 모든일을 주관하시는 분으로서 또한, 최후에 심판하실 분임을 말합니다. 둘째로,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 라는 의미는 말 그대로 죽음을 경험하셨고 또한 그 죽음을 정복하신 분으로서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주님의 모습속에서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아픔을 모르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주님이 우리의 아픔을 모르는 분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 내 아픔 아시나, 정말 내 어려움 아시나..., 등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아픔과 마음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우리의 머리털까지 헤아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격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4:15절에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히2:18절에서는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주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아시는 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님은 서머나교회와 성도들의 아픔과 괴롬을, 그리고 우리의 아픔도 다 아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이런 저런 일로 아픔가운데 있는 분이 계시다면, 여러분의 아픔을 모두 아시는 주님께 진정한 위로를 받기 바랍니다.
3.서머나 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
그렇다면, 서머나교회가 주님께 칭찬받은 내용이 무엇인가를 묵상하도록 합니다. 9절 말씀을 보면,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자니라” 라는 칭찬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 서머나 교회가 부자가 아니라, 도리어 가난한자이지만, 주님께서 보시기에는 부자라고 칭찬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에 서머나지역에 대해서 잠시 나누었듯이 과학과 의술이 발달되었고, 황금의 거리가 있을 정도로 매우 부요한 지역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서머나 교회를 바라보시면서 “궁핍을 아노니”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지금 가난과 궁핍의 상태에 있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왜일까? 그것은 환란이라는 단어로 알 수 있습니다. 즉, 서머나 지역은 부요한 지역이지만 그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매우 궁핍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핍박 때문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서머나 지역은 로마황제숭배가 강하게 강조되었던 지역입니다. 따라서 일상적인 생활(구입, 판매, 법적인 보호를 받기 위해)을 위해서는 반드시 “황제숭배 증명서” 라는 것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증명서는 황제의 제단에 분향함으로 발급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생활의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물건을 살수도, 팔수도 없고,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그 어려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가진 믿음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황제숭배를 거절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성도들의 삶은 궁핍하며 또한 많은 핍박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궁핍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서머나교회가 핍박과 환란으로 인하여 궁핍하게 된이유는, 황제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머나교회의 지금당하고 있는 환란과 궁핍이 끝이 아닙니다. 10절을 보면,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심으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난이 있을 것 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옥에 던져지는” 고난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옥만을 말하는게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고난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서머나교회와 성도들은 로마가 주는 특권을 거절하고, 도리어 가난과 궁핍, 그리고 고난을 선택한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들은 “세상에서 부요한자가 되는 것보다 하나님께 대해 부요한자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서머나교회와 성도를 보고, 주님은 부요한자라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이 보실 때 서머나교회처럼 부자입니까? 아니면, 가나한자입니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대해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세상에 대해서는 가난한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많은 갈등이 있고, 시험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에 대해서도 부요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세상에서도 부요한 자가 되고자 하는 두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니까?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다시말해, 세상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세상에 마음이 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6:24절을 보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를 사랑하면, 다른 하나를 미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세상을 미워하게 되고,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을 미워하게 된다는 말인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와 성도들을 세상을 주인삼지 않고, 하나님만을 주인삼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이 모습을 주님이 칭찬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결심을 해야 합니다. 특별히 10월한달, 세상에 대해 부요한자가 되기 보다는 하나님께 대해서 부요한 자가 되기를 위해 노력하는 한달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한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한달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에, 또는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 걸림이 되는 것이 있다면, 과감히 버릴 수 있는 결단을 발휘하는 한달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 칭찬만 가득히 받는 한달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을 향한 축복이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4.주님의 말씀
하나님께 대해 부요한 자가 되기를 위해 세상적인 가난을 선택한 서머나 교회를 향해, 10절에서 “두려워말라” 또한 “죽도록 충성하라” 라고 말씀을 하신다. 이것은 그들의 환란당함을 가볍게 여긴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그들의 환란과 충성을 잊지 않고 보상하시겠다는 굳은 약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포기하는 삶을 살아가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적당히, 피곤할때까지, 할수 있는 만큼이 아닙니다. 생명이 끊어지도록입니다. 마치, 많은 순교자들처럼 말입니다. 당시 서머나교회에서는 주님을 위해서 순교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서머나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은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가이오는 주님이다.” 라는 한마디만 해도 살수 있었지만 그는 그러한 생명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화형을 당했습니다. 폴리갑 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원형경기장 안에서 참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면서 사자들의 밥이되어 죽었습니다. 이것을 영광으로 볼 수 있는 부러움이 있기를 바란다. 이런 그리스도인에게 11절을 보면 영생을 주실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말한다면 이미 영생을 얻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신의 생명까지 포기하는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인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축복은 주님의 칭찬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한달 우리 주님께 칭찬받는 여러분, 가정, 일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의 부요함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부요함을 구하고, 하나님만 주인삼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충성된 그리스도인, 하나님만을 뜨겁게 사랑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