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절-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
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절-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
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절-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절-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절-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
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절-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
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니
10절-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
나시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열두 정탐꾼들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백성들과 지도자 앞에서 보고를 한 후의 모습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말한 반면에, 10명의 다른 정탐꾼들은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라고 말하며, 가나안 정복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메튜헨리 주석에 보면 이와같은 부정적인 보고를 “부정직한 보고”라고 표현을 하기도 했는데, 저는 그 표현을 보면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보았을 때 10명의 정탐꾼들의 보고는 부정적인 보고를 떠나서 정직하지 못한 보고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로인해 부정직한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의 반응이 오늘 본문의 1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의 이같은 반응은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을 하게 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탐꾼들의 부정직한 보고와 선동으로, 온 백성이 겁을 먹고, 희망을 잃고, 절망 속에서 이성을 잃은채 이제 하나님께 정면으로 반역을 하는 가슴 아픈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또 다시, 배은망덕하고 경솔한 말로 원망을 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차라리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라고 말하며, 차라리 우리가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원망하며, 반역을 하게 됩니다. 사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이후의 삶을 보면 이 광야생활만큼 그렇게 즐겁게 지낸 날들도 없습니다. 때를 따라 하나님께서 먹여주시고, 입혀주셨습니다. 해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셨습니다. 고된 노동과 억압의 시간이 아닌 자유함 속에서 기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광야에서 죽기를 바란 이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은 얼마나 천박한 것입니까? 백성들은 만일 그들이 계속해서 전진한다면 틀림없이 칼에 망할 것이라고, 근거없는 낙망을 했었는데, 이들은 마치 하나님이 그들의 처와 아무 죄도 없는 불쌍한 자식들을 죽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곳으로 데려오신 것처럼 불평함으로써 하나님께 아주 악하고 모독적인 비난을 한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천박한 정신과 하나님을 향해 모독적인 비난을 하는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뿐이 아닙니다.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주의 길을 나선 저도 천박한 정신일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조금만 힘든 일이 있고, 조금만 괴로운 일과 부담되는 일이 있으면 그 때마다‘아 예전에 부담없었던 때가 좋았었는데...’하면서 천박한 생각을 하는 천박한 저를 보게 됩니다.
광야를 지나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아주 분별없고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현재의 상태에 불편을 느끼게 되면 내 상황을 불평하면서 자리를 옮기고 싶어하는 모습이 바로 우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을 만한 장소나 상태가 세상에 있을까요? 우리가 보다 더 나은 상태에 이르는 길은 우리의 정신 자세를 더 훌륭하게 바로 잡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정신과 자세를 바르게 잡기를 소망합니다.
원망과 불평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달리 5절에 보면 모세와 아론이 취한 행동은 어떻습니까?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여기에서 ‘엎드렸다’는 것은 ‘얼굴을 땅에 떨어뜨리다’는 것인데, 이 말은 자기를 전적으로 부인하고, 하나님만 의뢰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패역한 백성에 맞서 싸운 것이 아니라, 온 회중 앞에서 ‘자기의 능력으로는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자기를 부인하는 모습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현재 삶의 환경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까? 이 지긋지긋하고 괴로운 삶이 제발이지 순식간에 바뀌어 있었으면 좋겠습니까? 우리 자신의 능력을 부인하고,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첫째로, “어리석은 말, 악한 말을 절대 하지 말자”라는 것입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사람은 반드시 자기가 내뱉은 말의 열매를 먹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말로써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된 정탐꾼들이 40일 동안 정탐을 하면서,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돌아와서 부정직한 보고를 함으로써, 이들은 말로써 자신들이 죄를 범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선동하여, 온 백성이 반역의 죄를 저지르게 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이 어리석게 내뱉은 그 말들의 열매를 먹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손쉽게 저지를 수 있는 범죄가 말로 저지르는 죄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심코 내뱉는 말이,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될 수도 있으며, 또한 다른 사람을 죄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잠18:21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내 자신을 죽게하고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말을 하지 말고, 내 자신을 살게하고 다른 사람들까지도 살리는 말의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밤에 우리가, 성령님께서 내 입을 주장하여 주셔서, 내 입으로 범죄하지 않고, 내 말로써 나를 살리고, 사람들을 살리는 축복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입이 하나님께 범죄하는 말을 하는 입이 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범죄하도록 하는 입이 되지 않고,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하는 입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는 일에 힘쓰자”는 것입니다.
8절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이렇게 하나님 편에서 정직한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강하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의 거민이 얼마나 장대하고 강하냐 하는 것은,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힘으로 처리할 일이 어차피 아니다’라는 것이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인구조사를 하고 군대를 조직하고, 진영을 갖추어서 가나안에 진군할 준비를 하였지만, 그들이 얼마나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원래부터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을 때에도, 하나님은 홍해 바다에 애굽 군대를 전멸시키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은, 원래부터 이스라엘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탐꾼들을 통해서, 가나안의 강하고 장대한 민족들을 보여주시고,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의지하는지를 보는 시험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에도 하나님께서 시험하시는 일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통과했다는 합격통지서들이 우리 성도들에게 속속히 배달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 힘으로 능히 할 수 있는 일 앞에서는, 별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의 기적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일을 만나면, 그제서야 하나님께 매달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큰 일 앞에서나, 작은 일 앞에서나,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고백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승패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고백하시고, 쉬운 일 앞에서나, 어려운 일 앞에서나, 모든 일 앞에서, 늘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그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웃게 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메뚜기 신앙을 버리고, 밥 신앙을 갖자”라는 것입니다.
9절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라고 아주 담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장대한 아낙 자손을 보고 겁을 먹은 10명의 정탐꾼들이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라고 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오히려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참으로 놀랍고, 담대한 주장이었습니다. 9절 말씀에 보면, 이같은 담대한 믿음의 말은 바로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신앙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메뚜기 같은 우리라도, 그들을 우리의 먹이, 우리의 밥이라고 여길 수 있는 담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의 시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먹이며, 밥이고, 기회라는 말입니다. 소년 다윗이, 아낙 자손인 장대한 골리앗 앞에 섰을 때, 다윗은 누가 보더라도 메뚜기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골리앗이 다윗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골리앗이 아닌, 다윗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험들은 결국 우리의 밥이며, 기회라는 사실을 알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을 조리게 하고, 간이 콩알만해지는 ‘메뚜기 신앙’을 버리고,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에 이 시험은 우리의 먹이다’는 ‘밥 신앙’을 우리 모두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밥 신앙”을 제대로 갖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9절에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다만 메뚜기가 될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하면, 즉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야말로 메뚜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15:5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담대한 주장과 설득에도 불구하고, 10절에 보면 “온 회중들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였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거역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러지 말라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징계뿐입니다. 이들은 결국 자신들의 가지고 있던 간이 콩알만한 ‘메뚜기 신앙’대로, 가나안을 정복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징계받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밥 신앙’을 가졌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자신들의 믿음대로, 가나안 거민들을 밥으로 삼아,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기억해야 할 것은, 함부로 어리석은 말과 악한 말을 하여 내 자신을 죽이고, 다른 사람을 죽이며,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모욕하는 죄를 범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는 일에 힘쓰며, 간이 콩알만한 ‘메뚜기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저들은 우리의 먹이이라고 하는, “밥 신앙”, “담대한 신앙”을 가져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시험을 통과하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들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귀한 종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