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집사님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천국 문 앞에는 예수님께서 한 사람씩 맞아주시고 계셨습니다. 집사님께서는 그래도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살았기에 예수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악수도 해주시면서 수고했다라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이제 천국문을 지나 천국에 들어서는데 자신의 뒤에 한 목사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무나도 감격의 눈물을 흘리시면서 정말 잘왔다고 이야기하시고 안아주시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님께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차별을 하시는지 목사님이라고 더 잘해주는 것에 대해 너무나도 억울했습니다. 분명히 공평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예수님께 항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목사가 오래간만에 천국에 왔다라고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예화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많은데 정말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신실한 사람은 적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요셉을 생각하면 정말 하나님께 신실하고 충성된 사람임을 알수 있습니다. 특히 요셉은 두 번씩이나 큰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신앙은 정말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신실한 신앙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야곱의 신앙을 이어 받았더라면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이기주의적이며 기회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을 뻔한데 성경을 보면 그러한 점들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한 야곱이 요셉만 사랑하는 편애 속에서 과연 요셉이 올바르게 클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면 요셉이 하나님께 신실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1. 고난을 통해 믿음을 올바르게 세워갔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고난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그로 인해 미디안 사람들에게 노예로 팔려 애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요셉이 미움 받았던 이유들에 대해 세 가지로 설명되어집니다. 2절에 보면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이것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면 일일이 말하였다고 나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한번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형들의 잘못은 계속적으로 고자질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기로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로 뒤치락 엎지락으로 야곱은 요셉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채색옷을 지어줍니다. 이것의 계기로 인해 더욱더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요셉은 꿈얘기를 통해서 형들이 더욱더 미워하게 됩니다. 곡식단과 해,달,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을 합니다. 이 꿈에 의미는 모두다 알고 있습니다. 곡식단, 열한 별은 형들을 이야기하고 해와 달은 부모님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가족 중에 나이가 제일 어린 요셉에게 절하는 것을 생각하면 형들은 세상이 거꾸로 간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함은 죽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4절을 보면 형들이 요셉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정말 좋지 않은 관계였음을 알수 있습니다. 결국은 우리들이 알다시피 요셉이 노예로 팔리게 되어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난가운데 요셉은 절망에 빠질만 한 것 같은데 보디발의 집에서 열심히 생활하며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쭉 성경을 읽어보면 아버지 야곱과 같이 기회주의자처럼 이기주의자처럼 지내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어떻게 이렇게 신실할까요?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저는 요셉의 인간적인 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미움 받았던 이유들을 생각해보니 요셉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무례함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이는 귀하게 자랐다는 뜻입니다. 야곱의 편애로 부모교육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교만하게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교만은 깨닫지 못했던 이유는 형들이 요셉에게 편안하게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요셉의 어떠한 잘못에도 이야기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배신에 대한 이유를 처음에는 몰랐지만 점차적 자신의 무례함과 교만함을 깨닫게 되어 겸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에 요셉의 노예의 삶은 겸손하면서도 자신의 위의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처음부터 신앙이 좋았던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우리가 요셉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신실하고 충성된 종으로 오해했지만 처음에는 요셉도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교만하기도 하고 미운 짓만 하는 사람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요셉의 신앙을 올바르게 세우셨습니다. 요즘 한국교회의 위기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신천지, 안티기독교 그리고 세상이 교회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 하지만 저는 이 여러 가지 세상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의 잘못 깨닫게 하시고 연단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더 올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실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신앙을 더욱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시고 이 고난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게 하실 것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상처를 받거나 고난을 받게 되면 움추려들기 쉽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절망과 상실감에 빠집니다. 특히 가족의 상처는 깊어서 치유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고난 속에서도 잘 읽어보면 움추려 있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셉이 노예 생활 속에서 더욱더 신실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두번째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39장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자가 되어”라고 나와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형통하게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함으로 인해서 형통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보디발의 집에 복을 더하여 주십니다. 이 사건은 이후에 감옥에 갇힐 때도 동일합니다. 39장 2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이로 말미암아 간수장이 제반 사무를 요셉에게 다 맡기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어려움은 딛고 일어나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되었고 더욱더 신실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요셉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이것들이 우리에게 믿겨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요셉과 우리와의 차이는 줄어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요셉은 어떻게 하나님께 신실할 수 있었을까요?
3.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요셉 때문에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은 더욱더 소유가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요셉은 살만 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빈틈을 보이고 흐트러질만 했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넘어 갈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유혹 속에서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민했던 습관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형들의 배신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하신 사건을 통해서 습관화되어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훈련은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해석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형들과 재회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왜 자신에게 고난이 주시고 애굽에 보내신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45장7~8절에 보면 그래서 요셉은 자신에게 고난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흉년 속에서 생명을 보존하고 후손들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먼저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애굽을 보낸 것이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그의 신앙을 이끌어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아까 이야기 했듯이 한국교회가 위기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람들의 뜻을 구하다보니 정말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올바른 신앙 속에서 자라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교회는 날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구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은 얼마 전에 각 부서별로 목표를 세우고 우리 교회의 목표를 세워보았습니다. 저는 이것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단순히 목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향하여 노력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이라는 잠언의 말씀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만약 이것을 이루는 과정가운데 어려움을 겪을 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기도할 수 있는 사랑하는 교회 성도님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요셉의 신앙이 신실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 번째로 고난을 통해서 신앙을 올바르게 세워갔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정말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충성된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요셉의 삶을 형통케 하시고 이끌어주신 것처럼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도 날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사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