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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무엇을 줄 것인가?
 본문말씀 : 창22:6~12
 설교자 : 방동문 전도사
 설교일자 : 2011.8.26
조회 : 7,721   추천 : 0  


6절-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
        람이 동행하더니
7절-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
        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절-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절-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절-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절-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절-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
        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오늘은 “무엇을 줄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기독교계의 화두는, 아마 단연 ‘선교’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지상 명령이, “너희는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었는데, 한국의 많은 교회가 이 말씀에 순종하여 “선교”를 외치며, 열심히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 인구가 천만밖에 안 되는 조그만 나라 한국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보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선교사들이 와서, 선교를 하던 나라가 우리나라인데, 불과 몇 십년 만에 거꾸로 선교사를 보내는, 선교 대국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한국인 선교사가 없는 나라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매년 선교사의 수는 늘어가고, 선교사 파송수도 들어가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의 기독교인 수는 매년, 줄어가고 있습니다. 통계를 보면,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개신교 교인 수는 7%가 감소했다고 합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균형이 안 맞는다는 것입니다. 교인의 수가 늘어야, 그에 따라 선교사의 수가 느는 것 아니겠습니까? 균형이 안 맞는다는 말은, 교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병들었다는 것은 가정 또한 건강하지 못하고 병들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을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의 자녀들의 식구 수를 세어 보시고, 그 중에 몇 명이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세어 보세요. 의외로 믿지 않는 식구들이 꽤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 교회가 병들게 된 원인으로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첫 번째 원인은, 바로 교회가 싸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교파들끼리 싸우고 분열하고, 교회들끼리 싸우고, 교회 내에서도 우리끼리 싸우고 분열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사람들은, 자녀들은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서 서서히 등을 돌리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의 고린도 교회에도 똑같이, 이러한 분열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교회 내에서 당파를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력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바울파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아볼로파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나는 베드로파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나는 그리스도파다”라고 하면서, 교회를 분열시켰습니다. 이들은 심지어,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워서,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다들 자기가 하나님의 편이라고 주장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교회를 분열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교회를 분열시키는 일만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교회 성도들은, 서로 물지 말고,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침착하게 하나씩 이뤄가고, 사람들을 세워나가는, 하나님의 귀한 생명의 건축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 교회가 기울어가고 있는 두 번째 원인은, 바로 어린이들에 대해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 10년간 한국 개신교가 7%가 감소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주일학교는 5년 동안에 32.9%가 감소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엄청난 수치죠? 이제는 어느 교회 아동부나 중고등부를 가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교회의 미래인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10년, 20년이라는 훌쩍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교회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목사님, 사모님을 보면서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철부지 같은 아이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평소에도, 아이들에게 행사가 있을 때에도, 수련회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에도 보면 정말 정성을 드리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 성도 한 분, 한 분 또한 아이들을 생각하고 대하는 모습에 소중히 생각하고 대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교회는 미래가 결코 어둡지 않고 밝다는 것을 느낍니다.


한국 교회가, 전도와 선교에 열심을 내며, 수평적인 복음 전파에는,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세대와 세대 간에 신앙을 물려주는, 이러한 수직적인 신앙 전수에는 결코 성공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30년 후의 한국 교회들이, 어떤 모습이 될지, 상상하기조차 힘듭니다. 교회들마다 텅텅 비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미 유럽 교회는 오래 전에 이러한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지금 유럽 교회들의 모습을 보여준 동영상이 생각납니다. 많은 돈을 들여서 멋진 예배당을 지어 놓았는데, 그때는 성도가 많았으니까 그랬겠죠. 그런데 교인들이 줄면서 교회 운영이 안 되니까, 교회 건물들이 팔려서, 레스토랑으로 사용이 되고, 술집으로, 나이트 클럽으로 팔려나가는 교회가 부지기수입니다. 교회 안에 그 많던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 술집에 있고 이제 노인들 몇 명밖에 남지 않은 교회들의 초라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국교회의 주일학교가 살아나지 않고,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잘 전수해주지 못한다면, 유럽교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한국 교회의 모습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유럽이 과거에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일꾼을 많이 배출했습니까? 루터가 나오고, 칼빈이 나온 곳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선교지가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이 아프리카로, 아시아로만 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유럽으로도, 많은 선교사가 파송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음 세대로의 신앙 전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우리 중고등부를 사역하면서 항상 부딪히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 성도들의 자녀가 없고, 거의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믿지 않는 분들이라는 것 입니다. 신앙전수를 하려 해도 부모들이 도통 이래서, 저래서 자녀들을 교회에 안 보내면 어떻게 해볼수 가 없습니다. 또, 믿음 있는 부모들도 자녀가 피곤해 하는 것에 마음이 안쓰러워서 보내지 않을 때가 많고, 자녀가 교회 나가던, 나가지 않던 신경도 안 쓰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세대 간의 신앙 전수는, 기본적으로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다 큰 자녀에게도 세대 간의 신앙 전수를 하셔야 합니다. 집에 한 달에 한 번 찾아온 자녀들에게 신앙의 경험들을 들려주시고, 여러분들이 만나고 경험했던 하나님을 부지런히 소개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헤어질 때 사랑하는 여러분의 자녀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 최고의 유산인 부모의 신앙, 부모의 믿음을 물려 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가 않지요? 가장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자식 농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자녀를 위한 기도를 그치지 마십시오. 자녀를 위한 부모의 기도는, 결국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제가 저의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앙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저를 만나기만 하면, 같이 어디를 가든지 항상 신앙적인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리고 끝에는 항상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자식에게 신앙의 뿌리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자녀도, 그 자녀들에게 신앙의 뿌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또 우리의 자녀들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오늘은,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해 주어야 하는, 부모의 중요한 사명에 대해서, 세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본을 보이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교육 방법 중에서, 가장 효과가 뛰어난 것은, 본을 보이는 교육입니다.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함으로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위대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에 속해 있는 22장 1절에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내린 명령이라고 나와 있지만, 아브라함에게는 시험이 아니라 진짜 실제적인 명령이었습니다. 창12장에서 하나님이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다시 한번 “내가 네게 지시하는 산에 가서 네 아들을 번제로 바쳐라” 하는 당혹스러운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본문에는 이 과정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이 어려운 명령에 대해서 아무 질문 없이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모습만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삭은 이러한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생생하게 옆에서 몸소 보고 체험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죽이려 하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으니 얼마나 생생하게 체험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게 행하는 아버지 아브라함을 보면서 하나님의 크고 높으심을 볼 수 밖에 없었겠죠.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음으로, 이삭도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이 되는 것 너무도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습니다. 금식 후 광야의 시험을 어떻게 이기셨는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겸손하게 세례를 받으셨던 것,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에도 말로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3년 동안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살면서 삶으로 본을 보이셨습니다. 서로에게 크고자 하는 자가 되기보다는 종이 되라고 말씀하시며 몸소 제자들의 말을 씻기셨습니다. 그 당시 발을 씻기는 일은 매우 천한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렇게 천한 일로 간주되는 그 일을 자처해서 하신 것입니다. 분명 제자들은 깜짝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 만큼 발을 씻기는 일은 천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충격적인 행동으로,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섬김의 가르침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행동이 말보다 더 위력적으로 가르치는 법이지만, 행동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행동에 설명을 더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여전히 어리둥절해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행동의 의미를 설명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이렇게 설명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자녀들을 교육시킬 때에, 행동으로 본을 보이고, 또 말로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환란과 시험을 당했을 때 기도와 믿음으로 어떻게 극복하는지 보여주시고, 멀리 있는 자녀에게는 만났을 때에 꼭 말해 주시고, 여러분들이 겸손히 예수님이 섬겼던 것처럼 다른 영혼들을 어떻게 섬기는지 보여주시며 신앙을 전수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은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것을 잊지 말고, 지금 이 때가 우리의 신앙을 전수하는 때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고전11:1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중요한 단서가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나를 본받으라” 하면 콧방귀끼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감히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먼저 예수님을 본받는 자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에게 “자녀들아, 너희는 예수님을 본받아 참고, 인내하며 기도했던 나를 본받으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서, 여러분의 자녀에게 본이 되는 좋은 부모가 되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을 만들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녀들에게 무슨 본을 보이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둘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잠1:7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교육하는 데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자녀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벌벌 떤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을 하나님께는 아끼지 않고 드릴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내가 하나님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이 나에게 있어 특별 순위이시고, 특히 자녀들 앞에서, 내가 하나님보다 자식에 더 목매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식을 목숨과 같이 사랑하되, 그 자식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함을, 자녀들에게 확실히 가르치셔야 합니다. ‘내 아들 이삭은 기적적으로 낳은 아들인데... 내 아들이 어떤 아들인데...’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보다 자식을 아끼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이면 안 됩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아들아, 하나님이 너를 바치라고 했으나, 우리가 도망가자. 내가 어떻게 사랑하는 너를 죽이겠느냐” 했으면, 이삭에게는 신앙이 전수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우리 신앙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못하면, 그래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없다면, 그때부터 우리는 잘못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넘어지는 시험이, 바로 오늘 이 아브라함이 겪은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고, 절대 놓지 못하는 그것을, 우리에게 직면시키시고, 그것과 하나님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시험을 하십니다. 그것을 빼앗기 위한 시험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에서 멋지게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함을 증명하였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왔을 때, 예수님이, “너는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렇게 시험하셨습니다. 이 부자 청년에게는, 그의 재물이 그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재물과 예수님 사이에서 재물을 택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세상을 사랑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를 비우고, 끊임없이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이삭을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으면, 나도 모르게 또 다른 이삭이 생기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들이, 자꾸만 생겨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시험하시기 전에, 그러한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마음을 몰라서 확인하려고, 이러한 시험을 하셨을까요? 아마도 아브라함이, 100세에 기적적으로 낳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기 시작하게 된 걸 아시고,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시는 싸인이 아닐까요? 틀림없이 마음을 바로잡으라고 알려주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꼭 집어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을 것입니다.
우리의 교육은 가치관 교육입니다. 부모가 먼저 하나님 앞에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 때, 자녀가 올바른 가치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주일성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때, 그 자녀가 어떻게 주일성수를 하겠습니까? 부모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시간 떼우기로 생각하는데 그 자녀가 어찌 예배를 온전히 드릴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자식 사랑보다 하나님 사랑이 우선이라는 사실이 삶에서 묻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확실하지 않으면 자식은 가치관에 혼란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물려주어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천대까지 복을 받는 놀라운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는. 우리 자녀들에게 여호와 이레의 신앙을 가르쳐야 합니다.
7절에 이삭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때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들이 이 질문을 할 때, 아브라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또 마음이 흔들렸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나님께 미루었고, 자신은 끝까지 순종하였습니다. 이 순종이 가능했던 것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공급하실 것이라는” “여호와 이레”의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아브라함의 눈에 하나님은 ‘줬다 빼앗는’ 이상한 성격을 가진 분으로 비춰졌을지도 모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이 딜레마 앞에서, 아브라함은 순종을 택했습니다. 히11:19에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그가 하나님께서 약속의 여호와이심을 깨달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공급하실 거라는 “여호와 이레”의 신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실 거라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주저함 없이 순종할 수 있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실 것을 믿고, 정말로 순종하였습니다. 최후의 순간, 아브라함은 동물이 있나 주위를 둘러보거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기를 기다리며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을 죽이기 위해 손을 치켜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받으셨습니다. 이삭이 죽어서 제물로 드려지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아브라함은 그 제물을 드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순종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한 마리의 양이 이삭을 대신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양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장 아끼는 이삭을 드린 결과, 그가 가장 아끼는 이삭을 잃지 않았고, 하나님께 바칠 제물까지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잃은 게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얻은 것이 있습니다. 얻은 것이 많아졌습니다. 하나님께 바칠 양을 얻었고, 이삭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이 무수해지고, 이삭을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되는 엄청난 일을 약속으로 받았습니다. 거기에다 하나님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고 기쁘게 했으니 아브라함이 여호와 이레의 신앙을 가졌을 때 얻은 것은 일일이 셀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급하시는 여호와 “여호와 이레”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롬 8:32에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주셨음을 상기시키면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셨다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베푸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끼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무엇이든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여호와 이레 신앙을 통하여 여러분의 자녀들을 믿음의 자녀들로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그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의 먼저 되고 가장 좋은 것을 주님께 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때로 자녀들이 성장하는 걸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나랑 똑같을까? 어떻게 이렇게 나랑 똑같은 인생을 살까?’ 하며 놀랄 때가 있습니다. 그 만큼 자녀는 부모를 무섭게 닮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때로는, 자식이 비뚤어지고 잘못된 삶을 사는 것을 보면서도, ‘에이, 나도 저렇게 살았는데, 자식이라고 별 수 있겠어? 다 내가 잘못 산 탓이지. 보고 배운 게 저건데 어쩌겠어?’라고 체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체념하지 마십시오. 부모가 변화되면, 자녀도 그걸 보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을 전수해야 하는 급박한 시대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의 신앙을 전수받아 다시 믿음의 삶을 살기를 소망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기보다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또, 이 세상에서 자녀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인 신앙을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그 신앙의 베이스인 ‘여호와 이레의 신앙’을 삶으로 보여주고 부지런히 가르쳐 우리 사랑하는 교회의 각 가정들이 주님 안에서 회복되고 세워져, 다음 세대를 풍성하게 이어가는 역사가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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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2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습관(習慣)!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2306 0
2521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14 0
2520 [주일설교] 주일2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56 0
2519 [수요설교] 원칙(原則)이 있는 신앙!(사도행전강해96)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185 0
2518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227 0
2517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결단!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362 0
2516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175 0
2515 [수요설교] 위로받고 위로하고!(사도행전강해96)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153 0
2514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252 0
2513 [주일설교] 신앙 성장의 목적? 마5:1-16절 최용민목사 2026.3.8 180 0
2512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마5:1-16절 최용민목사 2026.3.8 18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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