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17:14-20절
제목 : 사랑이 역사를 일으킵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지금 성경학교와 수련회를 기도로 준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한가지 묻습니다. 유치부성경학교이든, 아니면 다음주간에 있을 수련회이든, 우리들이 갖아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요?
1.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을까?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3명의 제자와 함께 오르시고, 산아래 9명의 제자들에게 있었던 일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먼저 1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자, 무리중 한사람이 예수님께 ‘귀신들린 자신의 아들을 고쳐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16절을 보면, ‘당신의 제자들이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오시자 곧 예수님께서 간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 귀신을 좇아 내어 줍니다. 그후 19절을 보면,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묻습니다. ‘우리는 왜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20절을 보면,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묵상해야 할 내용입니다.
여러분! 왜 제자들이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지 못했을까요? 참고, 제자들은 이미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일들을 이미 경험해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산아래 남겨진 9명의 제자들의 마음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예수님께 섭섭하고, 예수님께 함께한 3명의 제자들에게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라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던 가운데, 누군가가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달라고 찾아왔을때,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우선은 자신을 찾아와 도움을 구하는 사람을 보며, 자신이 꾀 괜찮은 사람이라는 뿌듯함과 우쭐함을 갖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귀신들린 이 사람을 고쳐줌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적어도 예수님과 함께 올라간 제자들보다 못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귀신을 쫓기 위해 애썻을 것입니다. 한번 상상을 해보십시오! 귀신들린 청년을 고쳐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겠습니까? 안수를 하고, 큰 소리로 기도했을 것이고, 귀신아 나가라고 소리도 쳤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귀신을 좇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오래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을 좇아주지 못했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우선, 귀신을 쫓아주고자 한 이유에 있습니다. 다시말해, 귀신을 쫓아내어 줌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하는 마음, 영웅이 되고자 하는 그런 마음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성경학교와 수련회 기간 가운데 여러분이 이런 마음을 품지 않기를 바라고, 이런 기대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를들면, 내가 찬양을 인도했더니..., 내가 말씀을 전했더니..., 내가 기도를 해주었더니...., 내가 뭔가를 했더니..., 라는 칭찬과 과시의 욕심을 버리기를 바랍니다. 사실 저 역시 사역초년병 시절에 이런 과시와 칭찬에 대한 욕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사역을 할때는 잘 잘한 은혜는 있었지만, 놀라운 은혜를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여름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마음으로는 어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도 일어나게 할수 없습니다. 이번 수련회와 성경학교에 그 어떤 영웅도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웅이 되기를 바랍니다.
2.그렇다면 우리들이 품어야 할 마음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 내어준후 제자들이 챙피하니까, 조용히 묻습니다. 우리는 왜 못했습니까? 그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믿음이 적은 자’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만 있었으면’ 이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적은 믿음과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의 차이가 뭡니까? 크기와 모양면에서는 사실 차이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적은 믿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력의 문제입니다. 다시말해, 믿음의 생명을 가지고 있느냐? 믿음의 생명력을 가지지 못했느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믿음의 생명은 과연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갈5:6절에서는 “사랑을 따라 역사하는 믿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음의 능력이 발휘가 되는 것은 오직 사랑이라는 근거안에서 발휘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강조하시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은, 제자들이 그 귀신들 사람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있었냐? 는 말인 것입니다. 사실 9명의 제자들은 사랑의 마음을 놓치고, 품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믿음의 생명력입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믿음은 사랑이 전제되지 않으면 절대 역사할 수 없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능력은 사랑이 전제되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로, 고전13장을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을 지라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고 말을 합니다. 그 만큼 사랑은 모든 것보다도 더 선행되어야 하는 신앙의 핵심인 것입니다. 마치 철로와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힘좋은 기차가 있어도 철로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3.사랑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번 성경학교를 준비하고, 수련회를 준비하는 가운데, 우리들이 가장 중요하게 품어야 할 것은 교회를 사랑하고, 함께 할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어떤 피곤함과 낙심된 일이 있어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아야 합니다. 특별히 이번 성경학교와 수련회에 참석하기로 결정된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아직 참석이 결정되지 않은 사람들,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찬양을 하고, 설교를 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그 안에 풍성한 사랑이 담겨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들이 수련회와 성경학교 기간 가운데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남은 1주일간 사랑을 마음에 채우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사랑의 눈으로 봐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럴때, 우리의 여름사역속에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일어나게 될줄 믿습니다.
결론 - 무엇을 하든 자신을 자랑하고, 과시하고, 칭찬을 얻고자 하는 목적을 품으면 안됩니다. 오직 사역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따라 하나님의 역사함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