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눅22:39-46절
제목 :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오늘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지 5일째 되던 날이며 예수님이 체포되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무덤에 장사되신 날이다. 우리는 지난 첫째날, 무화과와 성전 사건을 통해서 ‘용서의 사람이 되자’ 둘째날, 가난한여인의 헌금을 통해서 ‘하나님을 위해 아낌없는 헌신자가 되자’ 셋째날, 향유를 부은 여인의 말씀을 통해서 ‘서로 계산하지 않고 섬기는 사람이 되자’ 넷째날, 최후의 만찬과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 말씀을 통해서 ‘낮은자가 되어 서로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말씀을 묵상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함께한 ‘겟세마네 동산’의 장면을 묵상하려고 한다. 특별히 오늘 하루 예수님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정이 지난후에 겟세마네동산에서 체포를 당하신다. 그리고 오전 6시경 빌라도에게 최종 재판을 받고, 사형을 선고 받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옷 벗김을 당하고, 채찍에 맞는다. 그리고 오전 9시경 십자가에 목박히시고, 12시부터 하늘이 어두워졌으며, 오후 3시에 예수님께서 운명하셨다. 그리고 오후 6시 이전에 아리마대요셉의 무덤에 묻히셨다. 참고하고 오늘 하루 생활하기 바란다.
우리들이 첫번째 생각할 것은, 주님께서 제자들과의 마지막 시간을 무엇으로 보냈는가? 이다. 무엇인가? 바로 기도이다. 주님은 제자들과의 최후의 만찬, 그리고 세족식을 모두 마치시고 감람산 곧 겟세마네라 불리우는 동산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기도할것을 명하시고, 주님은 무릎을 꿇고 참 간절히 기도를 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기도의 자리에서 갖으셨을까? 얼마든지 다른 유익한 시간을 갖을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들면, 지금까지 가르침을 요약해준다던가, 또는 제자 한 사람마다 안수기도를 해준다던가, 또는 제자 각 사람에게 임무를 부여한다던가? 장단점을 지적한다던가....,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과 이런 시간이 아닌, 기도하는 시간으로 제자들과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시기로 결심하신 것이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분명히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다. 그것은 바로 “기도의 위대함”이다. 다시말해,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도로 능력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정말 간절히 기도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45절을 보면, 잠이 들어 있었다. 그것도 3번이나 잠들어 기도하지 못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결과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다 버리고 도망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을때 모두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을 했다. 특히 베드로는 다른 사람은 다 주님을 버릴지 모르지만 자신의 주님과 함께 죽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친다. 어떤 제자들은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도망을 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는 주님이 바라보는 앞에서 주님을 3번이나 모든다고 부인하고 도망을 치게 된다. 특별히 너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말했다. 과연 제자들이 이렇게 무력기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제자들은 주님에 대한 믿음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고,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도 있었다. 결코 그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 그런데 왜 그렇게 무기력했는가? 기적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다. 그들은 기적도 경험했고, 자신들의 손으로 놀라운 일도 행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도 받았고, 주님께 특별한 가르침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무기력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다. 예수님은 체포당하신후 공의회 앞에서 당당히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선언하셨다. 또한 빌라도 총독앞에서도 자신이 유대인의 왕임을 선언하셨다. 이것은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답변이다. 지금 주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신 것이다. 주님은 참 강한 분이시다. 과연 이런 강함이 어디서 나왔나? 원래 하나님이시니까?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죄의 문제만 제외하고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다. 그래서 한때는 죽음의 순간을 면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으셨다. 하지만, 자신이 마땅한 길을 걸어가시고 죽음까지 선택하신 것이다. 그 근거는 바로 기도에 있다. 그렇다. 기도는 참 중요하다.
제자들은 참 무기력했다. 그러나 주님은 강력했다. 그 차이를 만든 것이 무엇인가? 바로 기도이다.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기력했다. 그러나 주님은 기도하셨기에 강하신 것이다. 결국, 주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쳐 주시고 싶었던 것은 기도의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그래서 먼훗날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너희는 깨어 기도하라’고 기도의 중요성을 외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들 역시 제자들처럼 믿음도 있고, 은혜도 경험했고, 놀라운 일을 행하기도 했고, 말씀도 배우고 말씀으로 은혜도 받아본 경험이 많이 있다. 그런데 시험앞에, 유혹앞에, 여러운 상황앞에, 그리고 결단해야 할 순간에 너무나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처럼 주저앉고, 무너지고, 형편없어지고, 정말 믿음이 있나 싶어지고...., 왜 그런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뭔가 열심히 하는데 힘이 없고, 집중력을 잃고, 작은것에 분위기가 달라지고, 무거워지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 역시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기도는 기름(에너지)과 같다. 아무리 최고급 성능을 가진 자동차라 해도 기름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듯,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기도없으면 정말 무기력한 사람이 될수 밖에는 없다. 그러기에 개인과 교회는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주님은 이것을 알고 기도를 가르친것이다.
기도는 43절을 보면, 하늘의 힘을 공급받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기도를 통해서 하늘의 힘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결코 그리스도인다운 삶, 강력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수 없을 것이다. 예를들면, 기도하지 않으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 은혜로운 삶이 나타나지 않으며, 기도하지 않으면, 주어진 사명을 기쁨으로 잘 감당할수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 이번 주간 함께 묵상한대로, 용서가 안되고, 헌신이 안되고, 섬김이 안되고, 사랑이 안되는 것이다. 결국,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완성할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 몇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기도의 습관을 만들어라!(39절) 새벽, 저녁, 정해놓은 시간으로 습관을 만들라, 둘째, 간절히 기도하는 훈련을 하라(44절)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자세를 갖아야 한다.
결론 - 1)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유언으로 남기셨다.
기도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그리스도인을 능력있게 하는 하늘의 힘이다.
2)기도하는 습관, 간절함으로 기도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