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절-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
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절-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절-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8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
타나나니
19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로마서 1장을 보면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해주고 싶은 바울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로마를 방문하기를 심히 고대하고, 원하고 있습니다(13절). 15절은 더욱 그 마음을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얼마나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면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 복음 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를 방문하려고 한 계획들이 계속 길이 막혀서, 가지를 못해 결국 모든 방법 중 최후의 방법인 로마서라는 편지를 그들에게 쓰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이 서신서에 바울의 열정과 노력이 담겨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 학창시절 때 편지를 한, 두 줄 쓰고 맘에 들지 않아 종이를 버리고, 바꾸곤 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바울의 노력을 조금이나 엿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교리와 복음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면서 로마의 성도들이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을 가지고 성화의 삶을 살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로 그리스도인이 된 로마의 성도들이, 거짓된 복음을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유혹을 받고, 사탄의 공격에 노출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참된 복음과 참된 교리에 굳게 서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의 가르치는 은사와 열정을 사용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3절에 바울이 여러 번 로마에 가고자 했으나, “지금까지 길이 막혔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에게 직접 부르심을 받고,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명을 감당하는 그의 길을 쉽고 평탄한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보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의 사명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은 길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고자 했던 것은 그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한 것이었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방인에게 길과 진리와 생명인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은 계속 막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맡겨주신 일 또한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맡겨주셨다고 해서 우리는 순탄함만을 생각하거나, 원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여러 부서들, 예배의 한 부분인 찬양을 하는 찬양팀, 성가대, 대표기도, 또 교회 안에서의 여러 봉사의 일들 맡았을 때 우리는 순탄하기만을 바라는 사고의식이 우리 안에 잠재해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껄끄러운 일이 생겨도 ‘내가 맡지 않으려 했었는데’ 하면서 원망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들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그 일들을 감당해 가는 길에 결코 순탄했던 것이 아니라 열심과 노력, 기도로 개척하며 나아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욕심을 따라서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에 의해서 그 길이 막히면, ‘아,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지 않고 내 욕심으로 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돌이키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바울의 경우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려고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최선을 다해서 감당하려고 하는데도, 자꾸만 그 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되고,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3월부터 총력을 다지며 시작한 전도도, 그 복음을 전하는 일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탄치 않음을 마음에 전제로 하고 오늘본문의 사도 바울을 통해서, 길이 막혔을 때의 올바른 2가지의 태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바울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켰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기를 소원한다는 간절하고 강력한 소망을 롬15:23에 보면, 바울은 이러한 소망을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있어서, 자신의 간절한 소망보다 더 앞서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원함보다는, 자신의 계획보다는 바로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10절에서,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한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고 분명하지만, 그렇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하나님께서 허락만하시면 가기를 원한다”라는 하나님의 뜻이 먼저라는 사고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사고의식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바울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좋은 길 얻기를 구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좋은 길을 얻는다”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께서 좋은 길을 열어 주신다”라고 하는 뜻입니다. 바울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좋은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100m 달리기에서 ‘땅’ 하는 총성을 주의 깊게 듣는 달리기 선수처럼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바울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철저하게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내어드린 사람입니다. 바울은 원래 누구보다도 의지가 강하고, 고집이 세고,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이루고야 마는, 그런 불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하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드렸습니다.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다짐한 인물입니다. 이제 그의 삶에 있어서 제1의 원칙은, 무조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먼저가 된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는 내 자신의 뜻을 바울처럼 버리고,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살겠다는 선한 마음의 움직임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서바나 즉 스페인에 가기를 원했고, 스페인으로 가는 길에 로마에 들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들기 전에는 결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바울이었다면, 당시 모든 곳으로 통하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서, 전 세계로의 선교의 길이 열린다면, 틀림없이 그건 기쁜 일이고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도 틀림없이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룬 것이 아니면, 그 어떤 일이든지 잘된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만약 바울이 로마에 가서 그곳을 세계 선교의 전초기지로 삼았다면, 복음 전파의 측면에선 더 효과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고자 하는 강력한 소망은 있었지만, 그것보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13절에서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길이 막혔다”는 표현을 썼는데, 여기서 “길이 막혔다”고 하는 원어의 뜻은 “방해를 받았다, 막아서 금지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바울에게 장애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인도하셨는데, 바울은 그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 장애물로는 자신이 현재 있는 곳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로마에 갈 시간을 얻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그 동안 여러 곳을 다니며 교회를 개척하였고, 그 성도들을 돌보아야 했습니다. 너무나 바쁜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전도지역을 두고 로마에 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롬15:23에 바울은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그 동안 이 지방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이 지역을 놓아두고, 너희를 방문하지 못했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제 “내가 예루살렘에 가야 한다. 이 일을 마치고 나면 너희에게로 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하느라고, 다른 일을 할 시간을 얻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쉬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가지 못할 때가 있어 손해 보는듯한 느낌, 아쉬운 마음, ‘꼭 이렇게까지 내가 해야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매일 집안일을 하며, 자녀를 돌보는 주부가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는데, 그것이 금요철야가 있는 금요일 저녁일 때... 직장 생활의 무료함을 느끼며,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가는 시점에서 시원한 맥주와 함께 한일전 축구경기로 그 무료함과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수요일 저녁인데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야 할 때... 대학생활의 낭만과 자유, 재미를 흠신 즐기고 있는 청년이 같이 놀자는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맡은 일을 준비하기 위해 평일에 교회 왔는데 아무도 오지 않을 때) 손해 본 느낌이 들고 그냥 계획대로 할 것을 하는 마음이 듭니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이고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믿음으로 선택한 길이며, 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칭찬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바울의 길을 막았던 중요한 장애 요소는, 바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행16:6에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바울에게는 분명히 아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할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 길을 막은 것은 성령님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라는 표현이 쓰였는데, 여기서 “애썼다”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시험하다”, “시도하다”, “자세히 조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바울은 비두니아로 가는 것이 성령님이 막으시는 일인지 아닌지를 깨닫기 위해서 시험도, 시도도 하는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밤에 마게도냐 사람이 자기를 부르는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각하고 계획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알 수 있도록 허용하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생각에 간섭하시고 다른 길로 인도하실 때도 있는 것입니다. 잠16:9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로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가 보기에는 그곳으로 가는 것이 필요하고 또 좋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닫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였던 사람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울 때, 그것이 가장 좋아 보이고, 자연스러운 것 같고, 하나님께서 그 길을 열어주신 것 같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령님께서 마음속에 뭔가 불편하게 하고 걸리는 마음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멈추어 서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간절한 바람들이 있습니다. 이루고 싶은 소망들이 있습니다. 가정에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어 하나님께 많은 헌금을 드리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교회가 어서 속히 부흥되어 사람들이 북적이는 모습을 저는 상상하곤 합니다. 우리 학생들은 어느 한 순간에 내 공부실력이 높아져 있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이 모든 소망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하는데도, 하나님께서 그 길을 막으실 때가 우리에게는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 이 소망은 하나님에게도 좋은 일인듯 싶은데 왜 막으십니까?”하고 따지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든 판단과 생각에 앞서, 그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 싫어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을 좌절시키시려 하시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선하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우리에게 좋은 길을 열어 주실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께 온전히 나를 복종시킴으로, 하나님의 때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내하며 오직 믿음으로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길이 막혔을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첫 번째 태도입니다.
둘째, “바울은 길이 막혔을 때에도, 기도를 계속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형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도, 여러 해 동안 자신의 소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울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바울은 길이 막혔을 때에도 기도를 계속했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로마로 가는 길을 막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항상 로마의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였고, 로마에 가고자 하는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아뢰며, 로마로 가는 길을 열어주시기를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의 고집을 부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길이 막혔다고, 자기의 계획이 방해를 받았다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자기의 뜻대로 억지로 길을 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결코 자기의 뜻을 먼저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로마로 가는 것을 막으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로마로 가고자 하는 자신의 선한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그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동시에, 자기의 소원을 놓고 계속 기도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러한 꾸준한 기도와, 인내를 배워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소원을 두고 기도할 때에, 길이 막히더라도 바로 포기하거나, ‘아, 이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보구나’ 하고 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 조르는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계속 기도하되, 내 고집을 주장하는 기도를 하는 게 아니라, 인내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지만, 먼저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겠다는 확실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좋은 길을 열어주시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열심을 다해서 노력해도, 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때에, 좋은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의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을 본받아서, 쉽게 기도를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기도하되,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좋은 길을 열어주시기를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에 총력을 다하는 이 때에 될 수 있는 대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전도하되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길 바울처럼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바울이 길이 막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도한 것은, 그 마음에 빚진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임을 오늘 본문 14절에 밝히고 있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헬라인들은 스스로를 지혜있는 자로 여겼습니다. 헬라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야만인이요, 어리석은 사람으로 그들은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헬라인이나 헬라인이 아닌 사람에게 빚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에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실 것을 꾸준히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복음의 빚을 진 사람들 아닙니까? 그동안 우리 마음에 복음의 빚진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애써서 짓누르고, 억눌렀던 강퍅한 우리의 마음을 회개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바울사도와 같이 남녀노소 구별치 않고, 신분여하를 구별치 않고 모든 사람에게, 모든 민족에게 복음의 빚을 진 사람으로 우리 이 마두 지역에 사는 영혼들을 위해, 한국 땅에 사는 수많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전 세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스스로 억누르고 있는 모든 영혼들을 위해 기도로 하늘의 문을 두드리는 이 밤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전도를 해보니 참 어렵죠? 눈도 마주치지 않고 쌩하니 바람을 날리며 가는 사람도 만났고, 남들 앞에서 웃기 참 힘든데, 우리의 얼굴 근육에 마비를 일으키며 애써 썩소를 날리며 사탕이나 커피를 들고 다가갔는데, 거부하는 불신자들을 만났을 때 우리 마음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들의 마음에도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18~20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비록 그들의 마음 속에는 구원에 이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지식은 아직 없지만, 이 세상에 영원 전부터 계셨고 영원까지 계시는 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 만한 지식이 그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들이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을 억누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다가가 억누르고 있는 지식을 두드려주고 열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중요한 일에 기도 없이는 이런 유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밤 기도로 이 산을 들러서 바다에 던지우는 역사를 나타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소원과 바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며, 계속해서 기도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기도에, “주님의 뜻대로”라는 말을 덧붙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늘 소원을 두고 기도하되,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좋은 길 열어 주시기를 기도하고, 범사에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여서,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쓰임 받고, 빚진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를 통하여 많은 영혼들이 포근하고 따뜻한 목자되신 주님의 품에 돌아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내는 진리이신 복음을 전하는 거룩한 말할 의무가 있는 하나님의 신실한 나팔들이 되시기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