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절-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8절-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
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9절-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오늘은 “말할 의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을 하나님의 파수꾼으로 세우시는 장면을 담고 있는데, 1~6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파수꾼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절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임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파수꾼의 역할은, 온 백성을 위하여 파수를 서는 것, 즉 망을 보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려는 걸 보게 될 때에, 나팔을 불어서 백성들에게 알릴 의무가 파수꾼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백성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도, 그것을 무시하여 회개하지 아니하고 멸망하면, 그 책임이 파수꾼에게 돌아가지 않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를 보고도 파수꾼이 나팔을 불지 않아 백성들이 회개하지 아니하여 멸망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에게 물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파수꾼의 역할에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그의 손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파수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10년도 8월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 쓰나미로 인한 희생자가 500명이었습니다. 그 지역의 마을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가 되어 버렸던 것 기억할 것입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화산폭발로 인한 피해까지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쓰나미가 몇 차례 왔었던 곳입니다. 지난 2004년 쓰나미 온 뒤 경보 시설을 갖췄지만 2010년도 8월 초 고장이 나는 바람에 이 경보시설이 무용지물이 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위험이 오는 걸 알고도 피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당하길 기다리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험이 오는 걸 모를 때에는,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파수꾼의 역할을 했던 경보시설이 고장 남으로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치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파수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파수꾼은 정확하고 확실한 정보를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백성이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내리신 파수꾼의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에게 경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파수꾼의 임무인 것입니다. 이 파수꾼이 인도네시아의 경보시설처럼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백성들은 어떻게 될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 대하여, 마치 이 파수꾼과 같은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 가정은 어떻습니까? 우리 가정에 파수꾼과 같은 책임을 맡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 사랑하는 교회 안에 파수꾼과 같은 책임을 맡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각자의 가정 속에 파수꾼과 같은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세상 사람들은, 믿지 않는 내 가족, 내 자녀들은 위험에 처해있으면서도 자신이 위험에 처해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가정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남편, 아내, 자녀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우리 소중한 가족에게 “말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할 의무”를 저버리는 파수꾼에게, 멸망하는 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이라는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파수꾼의 책임을 맡겨주셨음을 깨닫고, 우리의 “말할 의무”를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의 “말할 의무”에 대하여 몇 가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복음을 전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롬10:14에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어떻게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 반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복음을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구원을 얻어 멸망의 길에서 피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저들에게(자녀, 성도, 불신자)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선교한다는 말이죠. 선교의 대상을 크게 4가지로 나눕니다. M0(기독교 문화 안에서-교인출석 가운데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M1(동질문화권-기독교 안에 믿지 않는 자), M2(유사문화권), M3(타문화권)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한 사람의 영생 또는 영벌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영원히 천국에서 사느냐, 아니면 영원히 지옥에서 벌을 받게 되느냐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은”, 우리의 “말할 의무” 중에 가장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자들에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가족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죄의 씻음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복음”을 말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 없이 아무리 선하게 살아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살고, 다른 사람을 돕고,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칭찬받는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복음이 없다면, 꼭 있어야 할 알맹이가 빠진 것입니다. 주일학교 교육이나 교회 교육도, 바로 이 “복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복음”에 대한 확실한 교육 없이, 도덕적 교훈을 아무리 해봐야 소용없는 것입니다. 중고등부를 3년, 길게는 6년을 다니고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청년 대학부로 올라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고 노력하고, 그것에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전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전도 방법도 다르게 해야 합니다. 그 대상의 성격이 어떤지에 따라, 전도 대상의 환경이 어떤가에 따라 그 상황에 맞추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에,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말을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물론 다짜고짜 대놓고 이런 말을 하면 듣는 이로 하여금 반감이 생겨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가서는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사실을 속이고 전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그 사람을, 그 영혼을 지옥 안 가게 하려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지속적으로 만나는 어느 한 명의 개인이나, 가족들에게 반감을 생기지 않게 서서히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오히려 길거리를 스쳐지나가는 시간적, 환경적 제약을 받는 사람에게 반감 없이 접근하는 일보다는 쉽습니다. 우리는 지속적 관계를 맺는 사람이든지, 지속적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사람이든지간에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늘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가족과 우리의 이웃들에게 또, 지나가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는, “우리는 말함으로, 사람들을 죄악에서 돌이키게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에서, 하나님이 에스겔을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삼으신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죄악에서 떠나게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멸망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망하는 길로 가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깨우쳐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 이 밤에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것을 기도 중에 깨우치길 소망합니다.
비행 청소년들 중 상당수가, 자신들의 나쁜 행동에 대해서, “너 그러면 안 돼. 그거 나쁜 행동이야”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자신들의 나쁜 행동에 대해서, 어른들로부터 제 때에 적절한 피드백을 받았다면, 아마 상당수의 비행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나쁜 행동에서 돌이켰을지 모릅니다.
잠언 13:24에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자녀에게 매를 아끼는 것은 자식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가 잘못할 때에, 제대로 교육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다 받아주기만 하는 것은 자녀를 망치는 길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축복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자녀를 무작정 축복하기 이전에, 먼저 죄에 대해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 자녀들이 짓고 있는 죄에 대해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죄에 대해 다루지 않고, 축복만을 바라는 신앙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고기를 달라고 하나님께 원망하자, 하나님이 고기가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간을 먹게 하겠다고 하시고, 메추라기를 내려주셨는데, 성경말씀에 보면,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혹시 “기브롯 핫다아와”라는 말을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여호와 이레”라든지, “에벤에셀”이라든지, “임마누엘”이라든지, 이러한 좋은 뜻을 가진 축복의 말씀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수기에는 “기브롯 핫다아와”라는 지명을 기록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탐욕을 내다 하나님께 벌을 받은 사실을 늘 기억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축복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그 이전에 먼저 죄에 대해 말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말할 의무가 있다고 하였는데, 특히 오늘 본문 7절에 파수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경고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잘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올바로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파수꾼으로서, 내 말을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도록, 지혜와 분별력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가치관이 매우 혼란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상대주의가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엔 용납되지 않던 것들이, 지금은 대부분 아무렇지도 않게 용납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분명하게 죄악시하고 있는 동성애를, 지금은 옹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단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고 이용하는 것입니다. 갈수록 동성애가 여러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동성 간의 결혼을 합법화하는 나라가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공식적인 동성 간의 결혼식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동성애자에게 목사 안수를 주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의 현실입니다. 이 혼란한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하시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타협하면 안 됩니다.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교회학교의 영적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 가르친다면 다함께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바로 말함으로, 사람들을 죄악에서 돌이키는, 파수꾼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단,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말로써 사람들을 죄악에서 돌이키라는 말이, 그 사람을 정죄하고 저주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무슨 말을 하든지,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말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내가 말만 하면 그만이다’라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령님의 도우심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말할 의무가 있다고 해서, 무책임하게 말을 내뱉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성령님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우리의 파수꾼의 의무를 다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문 8절과 9절에서 똑같이,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파수꾼이 경고했는데도, 악인이 자기 죄에서 돌이키지 않아서 죽게 된다면, 그 악인은 자기 죄로 죽는 것이고, 파수꾼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파수꾼이 경고하지 않아서, 악인이 미처 회개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파수꾼에게, 전하지 않은 책임을 물으실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악인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이 악인은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서 죽는 것입니다.
평생 예수님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죄인이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착하게 산 사람도, 죄가 없지 않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나는 의인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복음을 들었든지, 듣지 못했든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기의 죄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게을리 하면, 복음을 듣지도 못하고, 예수님을 영접할 기회를 얻지도 못하고 죽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죄에서 돌이키도록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는 무슨 의무가 있습니까? 말할 의무가 있습니다. “말할 의무”가 있는 파수꾼으로서 우리의 책임을 다해서, 우리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돌이켜 구원을 얻게 되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