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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목자 없는 양에게 가서 주어라!
 본문말씀 : 마14:13~21
 설교자 : 방동문 전도사
 설교일자 : 2011.3.4
조회 : 8,946   추천 : 0  


13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
         라간지라
14절-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주시니라
15절-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
         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절-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절-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절-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
         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절-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우리는 자고 일어나면 이런 저런 소식을 보고 듣습니다. 뉴스를 통하여 듣기도 하고, 사람들을 통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습니다. 최근에는 중동국가들의 민주화 시위 소식이 뉴스에 자주 거론 됩니다. 이집트, 리비아의 민주화 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지면서 이 시위의 물결이 인근 중동국가들과 아프리카 국가들로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이슬람권에 있는 어느 한 선교사님은 선교적 시각과 관점으로 바라보았을 때 “중동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토록 강력했던 철권 같았던 이슬람이 무너지고 있는 소리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또, 요즘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기독교에 관한 비평적인 뉴스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어제는 교회 십자가의 LED조명이 주민에게 ‘빛공해’를 준다는 기사거리가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이것 참 한국 기독교의 큰 위기가 찾아 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예전 기독교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은 “예수께서 들으시고”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언가 어떤 소식을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은 주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이 헤로디아의 일로 목 베여 죽임을 당한 것을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말한 것입니다. 당시 갈릴리 지방의 분봉 왕이었던 헤롯이 자기의 동생인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자신의 아내로 삼은 일에 대해 요한이 책망함으로 옥에 가두고 목을 벤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나쁜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아마 슬픔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슬픔에 가득한채 그 곳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무리들은 예수님의 떠나심을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14절 말씀 다같이 읽어 볼까요?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주시니라”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막6:34에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이 사회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영혼이며, 병자이기에 불쌍한 마음이 있었기도 했지만, 그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해서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의 죽음으로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지도자인 목자가 없다는 사실에 너무도 안타까우셨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지도자였습니다. 빛도 없이, 소망도 없이, 암흑 속에서 유리하며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빛이 되시며, 소망이 되시며,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소개해준 복음 증거자였습니다. 복음 증거의 역할을 잘 감당했던 충실한 목자였습니다. 그가 복음을 증거할 때 한, 두 명 아닌 수많은 영혼들이 눈물로 회개하며 세례를 받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목자가 이제 그들에게 없다는 사실에 예수님은 그들을 보았을 때 측은한 마음에 불쌍히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이 자리에 있는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 모두는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 모두는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깊은 절망의 때를 다시금 회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스올 같이 깊고 어두운 무덤에, 더럽고 냄새나며 칙칙한 그 깊은 절망의 수렁에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셨던 분은 누구십니까? 가정이 산산조각 날 파탄의 위기에서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신 분은 누구십니까? 잔병이 되었든지, 깊은 병이 되었든지, 영적인 최악의 병이 들어 삶이 피폐했을 때 우리를 따스한 주님의 품으로 품어주시고 덮어주셨던 분은 누구십니까?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렇게 주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아 지금 여기까지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로 살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살아오다 보니 우리도 모르게 그 때를 잊고, 우리도 모르게 삶의 소망을 갖고 새롭게 출발했던 그 때를 땅 속에 묻어 두었던 것을 오늘 이 시간에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 받았던 각자의 그 때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목자 같은 지도자, 세례 요한을 잃어버린 불쌍한 영혼들이 어제, 과거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나직히 고백해봅시다. “주님! 그 때에 저를 불쌍히 여겨주셨던 것 감사드립니다.” 또, 고백합시다. “주님! 제가 주님께 불쌍히 여김 받았던 그 때를 잊었던 것을 용서해주세요.” 오늘 이 밤에 그 때를 기억하며 다시금 주님께 긍휼이 여김 받는 은혜가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15절에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이제 저녁이 되었고, 지금 이 큰 무리들이 있는 곳은 먹을 것도 없는 빈들이고, 때도 저물었으니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들을 마을로 돌려 보내길 요청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뭐라 말씀하십니까? 1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그들이 “갈 것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가서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큰 무리에게 줄 것이 별로 없었던 제자들인데,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갈 필요없고, 너희들이 있는 것을 주라고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먹을 것을 주라”는 이 부분에 대해 육적인 배고픔을 영적인 배고픔으로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서는 영적인 배고픔에 주릴 이 큰 무리들에게 내 안에 있는 제자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큰 결심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결심은 무엇입니까?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인 지도자였던, 복음을 증거하는 지도자였던 세례요한의 사역을 이제 내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이 감당하게 하겠다는 결심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요한 대신 너희가, 바로 내 제자인 너희들이 이들의 목자가 되어 이 큰 무리가 다시는 목자 잃은 양 같은 불쌍한 처지에 있지 않도록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들의 영적인 복음의 주린 배를 채우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세례요한의 순교는 허탄하게 끝난 것 같지만 세례요한 한 사람의 죽음은 더 큰 복음 증거자들을 낳는 본문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작년 중고등부 선교주일 예배 때 보여줬던 동영상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2007년 4월 18일 터키 말라티야에 일어났던 선교사 순교 사건입니다. 현지인 우르형제, 현지인 사역자 네자티, 독일의 틸만 선교사 가정이 터키 땅에서 선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몇 달 전부터 청년들이 성경에 관심을 보이며 이들에게 찾아와 성경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실 이슬람 과격단체의 청년들이었습니다. 이 청년들은 수개월 전부터 현지인 사역자와 틸만 선교사, 우르 형제를 죽이려는 계획을 가지고 이들에게 접근한 것입니다. 이슬람 과격단체 이들은 이 3명의 형제들을 묶어두고 예수님을 부인하라고 말하며 고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 하나씩 잘랐고, 코와 입, 항문에 칼로 난도질 했습니다. 서로에게 고통의 소리, 고통의 모습을 보여주며 예수님을 부인하라고 했습니다. 칼로 배를 찔러 배에 있는 장기들을 뺐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결국 목 베여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순교했습니다. 그 후 터키 국영 방송에 독일인 틸만 선교사의 아내인 수산나 선교사가 나와 “저들을 용서합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저들이 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며 그들을 공개적으로 용서했습니다. 이 방송은 그날 생방송으로 나갔습니다. 이 방송을 터키 땅의 수많은 무슬림들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일하셨을 것입니다. 그 방송을 본 무슬림 중에는 분명 예수님을 영접한 영혼이 있을 줄 믿습니다. 또, 그 터키 땅에서 숨어 믿음을 지키고 있는 형제, 자매들이 용기를 얻었을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슬람에서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여러분들은 잘 알고 계시죠? 선교사 한 가정이 수년간 아니 10년, 20년 복음의 사역을 감당해도 한 영혼 예수님을 영접할까 말까 합니다. 3명이 허망한 순교를 당한 것 같았지만, 이 일로 인해 터키 온 땅에 보도가 되었고, 수산나 선교사의 예수님의 사랑에 힘입은 공개적인 용서의 보도는 얼마만큼의 무슬림의 철벽같은 마음을 무너지게 하는 파워가 있었는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왜 이 동영상을 여러분에게 소개했겠습니까? 바로 오늘 본문 세례 요한 한 사람의 죽음이 또 다른 많은 전도자들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이제 결론을 도출해 볼까 합니다. 여러분, 오늘의 주제를 여러분은 말씀을 들으며 찾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은 주제를 처음 시작할 때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찾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주제는 전도입니다. “목자 없는 양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주어야 합니까? 세례요한이 주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리고 바로 우리에게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부르셨던 그 때를 기억하며 우리는 이제 이 마두 지역의 목자 없는 양인 주민들에게 가서 무언가를 주어야 합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이겠어요? 바로 복음입니다. 마두 지역의 목자 없는 양 같은 영혼들, 오늘 도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유리하며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가야합니다. 오늘, 내일 죽음을 생각하는 목자 없는 양 같은 그 영혼들을 볼 때 예전에 나를 불쌍히 여기셨던 예수님의 긍휼하신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합니다. 제가 우리 사랑하는 교회에 온지 3년째 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이 곳에 보내신 이유를 알겠어요. 여러분들도 이곳으로 인도함을 받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발로 찾아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보내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이곳으로 부르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제자가 바로 우리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제자가 이 대한민국 땅의 기독교인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가 이 땅의 모든 크리스챤입니다. 제자의 모습인 우리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가 가진 것 물고기 두 마리가 되었든, 떡 한 덩이가 되었든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너희가 나가서 전하라”, “너희가 복음을 증거하라” 그리고 우리 각자가 받은 은혜와 복음을 들고 나갔을 때 주님께서 하늘에 축사하시고 그들에게 떼어 주실 것입니다. 20절에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차게 거두워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우리 사랑하는 교회의 소망입니다. 그 수준을 넘어 우리 한국 기독교의 소망입니다. 오늘 설교 처음에 말했던 한국 기독교의 위기 생각나시죠? 그 위기를 우리가 전도할 때 이 지역이 여러분으로 인하여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확산되어진다면 우리 한국 기독교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위기를 우리는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목자 없는 많은 영혼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진정한 복음이며, 구주이신 예수님을 새롭게 아는 지식이 생길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조롱받는 교회는 예수님 안에서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 받았던 그 한량없는 은혜를 다시금 기억하고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신 마음으로 우리가 영적인 배고픔에 주린 영혼들에게 나아가서 복음을 나눠주는 은혜가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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