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계3:1-6절 요한계시록 강해24
제목 : 죽은 자가 된 이유!
들어가는 말
오늘 우리들이 이 수요예배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우선은 이 예배시간을 기억하고, 나올 수 있는 신앙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유혹과 핑계거리를 이기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예배를 사모하고 드리는 이런 신앙을 놓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감사한 것은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나올 수 있는 건강을 가졌다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는 예배의 자리에 나오고 싶어도 건강이 허락되지 않아 못나오는 분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 병원의 중환자실에는 생명과 사망의 기로에 놓인 사람들이 대단히 많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서 겨우 목숨을 연명하는 분들도 대단히 많이 있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겨우 생명만 유지하고 있는, 즉, 살아는 있지만, 거의 죽은 자와 다를바 없는 모습인 사데교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사데교회와 성도들이 생명력을 잃고, 거의 죽은 자처럼 된 이유가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우리 교회가 각자의 신앙을 점검하고, 건강한 교회,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거의 죽은 교회
오늘 우리들이 묵상할 교회는, “사데교회”입니다. 먼저, 사데가 어떤 도시인가를 먼저 확인하도록 합니다. 사데는 서머나 오늘날의 명칭으로 터키의 이즈미르에서 동쪽으로 85km 정도 떨어진 사르디스(Sardis)라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의 사르밧 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특별히 사데는 당시 최대 금 생산지로서 당시 소아시아지역에서 금화와 은화가 가장 먼저 주조된 대단히 부유한 도시였으며, 또, 섬유와 의류와 염료 산업이 대단히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문헌을 보면, 사데교회 성도들은 교회에 나올 때, 고급스러운 흰옷을 입고 나왔다고 합니다. 아마도 소아시아 7도시 중에 가장 부유하고 화려한 도시였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데는 높은 절벽위에 세워진 요새 도시로서 한 밤중에도 경비병을 세우지 않을 정도로 안전하고 평화로운 도시였습니다. 따라서 그 도시에 세워진 사데교회와 성도들 역시 부유하고 안전한 생활을 했을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들이 사데교회에 대한 기록에서 주목할 점은, 다른 도시의 교회들에게 있었던 핍박이나 박해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단적의 공격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결국, 사데교회는 부족한 것도, 어떤 염려하고 걱정할 것이 없는 전혀 문제없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 사데교회는 아무런 칭찬을 받지 못하고, 책망만 받는 교회, 심지어 경고도 없는, 가장 형편없는 교회라는 평가를 받게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데교회를 향해 주님의 책망은 무엇입니까?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무슨 말일까요? 살아 있는 교회로 보이지만 그러나 실상은 거의 죽은 교회라고 평가,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숨은 쉬고 있지만,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하는, 산소 호흡기에 의해서 생명만 겨우 연장하는 모습과 같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죽은 교회라고 책망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앙의 행위가 없었기 때문일까요? 예배를 안드렸기 때문일까요? 성경을 안읽었기 때문일까요? 기도를 안했기 때문일까요? 교회로서의 어떤 일들을 안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절을 보면,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비록 죽었다는 책망을 받은 교회이기는 하지만, 다른 소아시아의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열심 있는 신앙의 행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정기적인 예배도 드렸고, 기도와 찬송을 드렸으며, 헌금도 드렸고, 봉사활동도 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교회로서, 신자로서의 어떤 행위는 있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사데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다’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이 말은 사데교회가 유명한 교회였고, 명성이 높았고, 대단한 명예를 가진 교회였다는 말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을 하면, 사데교회는 다른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부러움을 살만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일까요? 경제적인 부유함, 박해와 이단이 없음, 신앙의 열심..., 등의 모습으로 인해서 부러움을 살만한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들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데교회를 존경하고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죽은 교회라고 가장 무서운 평가와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는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에게 칭찬과 좋은 평가를 받는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잘하셨습니다. 더욱 사람들에게도 칭찬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스스로도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잘하셨습니다. 앞으로서 신앙생활을 더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칭찬을 전부라고, 정확한 평가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것(마음, 생각, 동기, 이유, 목적, 진심..,등)을 다 볼 수 없고, 알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극히 일부분만 보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 이유와 목적, 본심과 진심이 무엇인지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평가에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의 평가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즉, ‘과연 하나님은 지금 나를 어떻게 평가하실까?’‘과연 하나님은 지금 우리 사랑하는교회를 어떻게 평가하실까?’를 질문하며, 답을 들으며, 점검하며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데교회와 같은 교회와 신자가 안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사데교회안에 열심히 있는 신앙의 행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교회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로, 그들의 행위가 온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면,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열심있는 신앙의 행위가 있었지만, 그것은 온전한 행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전하지 않았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쉽게 말하면, 신앙의 이중성을 말합니다. 예를들면, 교회안에서의 모습과 교회 밖에서의 모습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안에서는 거룩한 신자처럼 보이지만, 교회 밖에서는 세상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딤전5:6절에서는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즉, 비록 신앙을 가지고, 신자로서의 이름을 가지고 살지만, 세상 재미에 빠져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은 죽은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데교회를 죽은 교회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더 중요한 이유, 둘째로, 사데교회안에 성령의 역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예배는 드리지만 성령의 임재가 없었고, 찬송은 부르지만 성령의 위로가 없었고, 말씀과 기도를 하지만 성령의 감동이 없었고, 봉사와 섬김을 하지만 성령의 은혜가 없고..., 한마디로 성령의 역사가 없었던 교회인 것입니다. 이 점은 사데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1절을 보면,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일곱영이 의미하는바가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바로 성령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모습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와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혹시, 여러분은 신앙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즉, 교회안에서는 그리스도인 같아 보이지만, 교회 문밖만 나서면 세상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까? 세상 재미를 좇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사데교회 성도들과 같이 죽은 성도의 모습입니다. 또, 우리 교회안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까? 만일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다면, 사데교회처럼 죽은 교회인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건강한 성도입니까? 생명만 겨우 연명하는 성도입니까? 또, 우리 교회는 건강한 교회입니까? 죽어가는 교회입니까? 저는 여러분이 건강한 성도이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죽은 성도, 죽은 교회라는 책망을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2.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묵상할 것은, “왜 사데교회 성도들이 온전한 행위가 없었고, 왜 사데교회안에 성령의 역사가 없었을까요?” 왜 죽은 교회가 되고 말았을까요?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분명한 것은 어떤 어려움이나, 문제, 박해나 유혹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 살펴본대로, 사데교회에는 가난도, 박해도 유혹도 이단의 공격도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부족함이 없고, 평안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소홀’했고,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선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면,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고 말을 합니다. 무엇을 받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지키라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데교회가 죽은 교회가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세와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데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어떻게 소개가 됩니까? 1절에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라고 소개합니다. 일곱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계1:20절에 일곱교회의 사자 곧 교회의 사자들, 오늘날로 말하면 목회자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결국, 사도교회는 목회자로부터 성도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고 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데교회 성도들은 성경을 가지고 다녔지만, 성경에 소홀했습니다. 사데교회 목회자들은 정해진 설교시간에 설교를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연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올바르게 선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들을 깨우치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단지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설교를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성령의 역사가 사라지고, 교회와 성도가 점차 죽어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했다고, 죽은 성도, 죽은 교회가 되었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는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와 성도의 영의 양식이며, 생명입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삼로 기둥삼아 세워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딤전3;15절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따라서 진리라는 기초와 기둥이 사라지면 교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소홀하면 죽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아주 실감나게 보여주는 본문이 있습니다. 바로 암8장입니다. 암8:11-13절에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즉, ‘주 여호와께서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리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고 말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의 양식이고, 생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놓치게 되면 죽은 성도, 죽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면, 죽은 성도, 죽은교회가 되는 것은, 역사를 통해서도 금방 확인할수 있습니다. 독일의 교회, 영국의 교회, 유럽의 교회들을 보십시오! 여전히 아름다운 건축물과 유명한 이름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죽은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 웅장한 예배당이 관광객들의 눈요기거리가 되고 있고, 술집이 되고(아일랜드의 어느 교회는 400년된 교회인데 술집으로 운영, 술집이름은 교회, 더 자극적이어서 운영이 잘됨) 나이트클럽이 되고, 일반 사무실이 되고..., 겨우 남은 교회는 노인 몇 사람만 모여 예배드리는게 고작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예, 독일교회는 나라가 적어준 설교원고를 읽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게 먼 나라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게 이 시대 한국교회의 문제이고, 지금 우리의 문제입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국교회도 말씀을 놓치고 있는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끔말하지만, 성도들이 생각하는 좋은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부담 안주는 교회입니다. 1시간 안에 집에 보내주는 교회입니다. 요즘은 40-50분안에 예배를 마치는 교회가 많아지고 있답니다. 또, 설교를 30분 미만으로 하는 교회입니다. 심지어 요즘은 찬양의 시간은 늘리고, 설교는 20분으로 줄여가는 교회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사데교회, 사데교회 성도화 되어 가는 것입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40분짜리 드라마가 끝나면 아쉬워하고, 다음 주를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그런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설교가 길다고 좋은거냐? 고 물을 분이 계십니까? 아닙니다. 설교가 길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좀 짧아도 훌륭한 설교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설교가 짧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짧은 걸 바라는 마음, 긴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설교가 성도들의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시간이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설교는 여러분의 잘못을 지적받고, 야단맞는 시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런 설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설교를 하는 목회자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들과 교회가 이미 병든 것입니다. 이미 죽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십니까?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십니까? 그래야 합니다. 또, 우리 사랑하는교회는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되고 있습니까?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정말 심각한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교회 설교자인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을 걸고 있는가? 말씀을 전하기 위해 전심전력하고 있는가? 그리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선포하려고 애쓰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사랑하는교회 교사, 목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연구해서 말씀대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인도하고 있는가? 혹시, 사데교회처럼 형식적인 설교, 형식적인 권면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교역자들과 교사, 목자들이 말씀에 소홀하다면, 우리 교회가 사데교회처럼 죽은 교회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뿐 일 것 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분이 목사인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더 전심전력을 할수 있도록 기도하셔야 하고, 격려하셔야 하고, 지지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도우셔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교회의 많은 일들을 여러분이 책임져야 합니다. 여러분! 행6장을 보면, 초대교회에 7집사를 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7집사를 세운 목적이 무엇이라고 말을 합니까? 행6:4절에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라고 그 이유를 분명히 말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말씀과 기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선다해 교회의 일들을 여러분이 맡으셔야 합니다. 전에 말씀 드린대로, 목사의 역할, 성도의 역할을 잘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안에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생명력 넘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3.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사데교회를 죽은 교회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소망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사데교회와 성도들을 포기하지 않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만일 사데교회를 포기하셨다면, 결코, 이런 책망조차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사데교회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직 사데교회가 완전히 죽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면,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내게 있어’ 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데교회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 이런 신자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더욱 이런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은 더 많은 성도들이 아니, 모든 성도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데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3절에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말씀을 놓친 것을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합당한자로 여기시고(4절), 흰옷을 입히시고(5절),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으시겠다(5절)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말씀을 소홀히 여긴 것을 회개하십시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살아가십시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회는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와 기둥으로 삼는 곳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면 교회는 생명력을 잃게 되고, 성령의 역사가 사라지게 되고, 결국, 사데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개인과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하게 여겼다면 반드시 회개해야 하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와 의미를 알고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와 성도된 여러분 모두가 건강하고 강한 그리스도인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