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i TV > 설교말씀 >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HOME 로그인회원가입
교회안내 설교말씀 목장 및 양육 선교사역 부서소개 사랑방

  사랑 i TV  
     설교말씀 
     찬양영상 
     행사영상 
     성가대찬양 
     찬양소개 
     QT영상 





설교말씀
    > 설교말씀 >>  금요설교
 
[금요설교]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본문말씀 : 시1:1-6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0.11.05
조회 : 11,569   추천 : 0  

본문 : 시1:1-6절
제목 :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은 인생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셰익스피어는 인생을 바다를 항해는 것과 같다고 말을 했습니다. 다시말해, 인생이란 잔잔한 바다를 항해 할때도 있지만 때로는 거침없는 파도속을 헤쳐나가야 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행복을 꿈꾸며 삽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행복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1-2절을 중심으로 확인하시고 남은 여러분의 인생가운데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오늘의 시작은 복있는 사람으로 시작을 합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이 말하는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1절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꽤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는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행복한 사람은 1)그리스도인으로서 악한자의 삶을 좇아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2)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아멘하시겠습니까?


 
어쩌면 여러분 중에는 그런 삶이 뭐가 행복한가? 라고 반문하고 싶으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 또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행복의 기준을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 어떤 사람은 건강, 어떤 사람은 좋은 대학, 어떤 사람은 좋은 직장과 사업, 어떤 사람은 취미생활, 어떤 사람은 성공...,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것이 우리들에게 기쁨과 행복감을 주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은 샘솟는 행복이 아닌, 목마른 행복일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지금에 만족할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어디인지를 아십니까? 2006년도 영국 신경제 재단이 세계 178개국을 대상으로 행복한 지구지수 즉 행복지수를 계산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요. 1위는 오세아니아 군도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102위, 미국은 150위이라고 합니다. 뭐 느껴지는것 없습니까? 우리가 흔히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나라들의 행복도가 낮다는 것입니다. 바누아투는 영국과 프랑스의 틍치를 받다가 독립한지 32년밖에 안되고, GNP가 1400$ 밖에 안되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몇나라 중 한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가장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 통계로 우리들이 확인할수 있는 것은, 돈, 집, 명예.., 등이 결코 행복의 기준이거나,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합3:17-18절을 하박국 선지자의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이런 고백입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행복해하리로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무화과, 포도, 감람, 식물, 양, 소, 이것들은 당시의 중요한 재산 목록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어도 행복하다는 고백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인하여” 이라고 말을 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 역시 로마 감옥에 수감되어 사형을 기다리는 상태에서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을 합니다. “주안에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말하노니 기뻐하라” 이 말은 빌립보 그리스도에게 기뻐하라고 권면하는 것만 아니라, 자신이 비록 수감되어 있고, 죽음을 날을 기다리고 있으나 기쁨과 행복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행복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 안에서”입니다. 그리고 지혜의 왕인 솔로몬은 전1:2절에서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고백합니다. 무엇이 헛되다는 말입니까? 세상의 것을 만족을 얻고, 세상의 것들로 행복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모두는 행복한 인생을 꿈꾸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여러분이 꿈꾸는 행복한 인생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혹시 여러분에게 참다운 행복을 줄 수 없는 것들은 아닙니까? 기억하십시다. 진정한 행복은 세상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 안에서 얻고 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누리는 그리스도인,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2.인생의 낮과 밤
렇다면, 하나님안에서 행복을 구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다시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야로 묵상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무슨 말일까요? 하루 온종일 성경을 읽어야만 행복하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하루 종일 성경구절을 암송하고 되새기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이며, 하나님도 그런 광신도적인 잘못된 삶을 원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주야로 묵상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말씀일까요? 우선 확인하야 할 것은, “주야”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우리들이 매일 접하는 낮과 밤을 의미하는 말은 아닙니다. 성경은 자주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합니다. 특별히 예언서에는 거의 대부분이 상징입니다. 예를들면, 요한계시록에 보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사람들의 숫자가 나옵니다. 144000명입니다. 이것은 정말 144000명만 구원받은다는 말이 아니라, 구원얻는 사람들의 총수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또한, 세상의 종말이 올때 하늘의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이 떨어질 것이라는 표현이 복음서와 계시록에 자주 등장합니다. 이것은 상징입니다. 정말 종말의 때에 해와 달이 빛을 잃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 세상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오늘 본문의 주야라는 말 역시, 상징성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러면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까요? 특별히 이 말은 우리들의 인생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들의 인생에는 낮과 밤이 있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모두가 행복한 하루 하루를 기대하고 원하지만, 특별히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복된 자녀가 우리들이지만 행복날들만 누릴수 없다는 말입니다. 때로는 견딜수 없는 시련과 절망, 답답함과 두려움의 때도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전7:14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시면,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며,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시편안에는 150편의 시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안에도 1)인생의 낮을 맞이한 사람들의 감사와 찬양이 기록되었으며, 그리고 반대로 “억울하게 고난당하는 자, 질병, 위기와 역경 속, 고통 가운데, 기도의 응답을 간절히 기다림,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형통함을 보며 생기는 신앙의 갈등..., 등의 위기와 역경속에 있는 2)”인생의 밤을 맞이한 사람들”의 고백과 모습들이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인생이 낮과 같다면 감사와 찬송을 부르십시오! 그러나 혹시라도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 밤이 찾아왔다면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의 인생의 밤을 누가 주는지, 정하셨는지? 생각하십시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에게 자신의 독생자 예수를 죽음으로 내어주신 분이시며,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분이 여러분에게 인생의 밤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인생의 밤이 여러분에게 무의미하지 않고, 지금 격는 인생의 밤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행복한 사람이란?
이제 결론으로 들어가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가?”를 생각하도록 합니다. 다시 2절을 보면,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낮과 밤에 율법을 묵상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선 믿음이 없는 세상사람들은 인생의 밤이 찾아올때 어떻게 하나요? 어떤 사람은 나쁜 방법의 꽤를 내어 인생을 비관하여 자살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비록 잘못된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인생의 밤을 극복하기 위해서 죄인의 길인 부정, 불법을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들도 참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오만한자의 자리에 앉아 로또의 대박에 인생을 걸고, 점과 굿을 통해서 한치도 내다볼수 없는 인생의 밤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런 방식으로는 인생의 밤을 해처나갈수 없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더 깊은 밤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불신자들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인생의 밤을 만났을 때에 자살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 부정과 불법에 손을 내미는 사람, 로또의 대박을 꿈꾸고 점을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들이 인생의 밤을 만났을때 올바른 자세는 무엇입니까?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2절에 “주야로 묵상하는 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인생의 낮이나 특별히 인생의 한밤중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유일하고 정확한 좌표로 삼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아니 더 강조하는 것은 인생의 밤이 찾아올 때 더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을 확신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무엘상을 보면, 이스라엘의 2지도자가 나온다. 그들은 다윗과 사울입니다. 이 두사람의 공통점은 이들 모두가 인생의 밤을 맞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첫번째, 사울의 경우에는 삼상28:3-5절을 보면, 사무엘이 죽은 후 불레셋 군대가 쳐들어 오는 이스라엘과 자신의 심각한 위기라는 인생의 밤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울은 이러한 인생의 밤을 만났을 때 선택한 방법이 무엇일까요? 바로 “점치는 여인”을 찾아 간 것입니다. 마치 오늘 본문 1절의 악의 꽤,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자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결국 사울은 비참한 죽음으로 인생의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둘째로, 다윗의 경우에도 삼상30:1-2, 6절을 보면, 다윗과 그의 군사들이 잠시 성을 비운 사이에 아말렉 군대의 공격을 받게 되어, 모든 아내와 자녀들과 재산을 빼앗고, 성에 불을 지르게 됩니다. 물론 다윗의 아내와 가족도 잡혀 갑니다. 더욱이 다윗에게 충성을 다짐한 부하들이 자신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다윗 때문이라고 여겨 다윗을 죽이려 하는 아무 심각한 인생의 밤을 맞게 됩니다. 그때 다윗은 6절“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 힘을 얻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치 오늘 본문 2절의“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함으로 주야로 묵상하는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아말렉 군대에 빼앗기 아내와 자녀와 재산을 도로 찾게 되고, 결국에는 이스라엘의 최고의 왕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 외에도 인생의 밤을 만났지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승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를들면,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히는 인생의 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찬송과 기도로 인생의 밤을 이겨 옥에서 나오게 됩니다. 또한, 요셉은 형들의 미움, 종을 팔림, 억울한 누명으로 옥에 갇힘이라는 인생의 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인생의 밤을 이겨내어 결국 애굽의 국무총리가 됩니다.


 
때때로 여러분에게, 또는 지금 인생의 밤이 찾아 올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밤과 함께 1절의 말씀처럼 “악인의 꽤와, 죄인의 길과 오만한 자의 자리”의 유혹도 찾아 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갈등하게 할 때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인생의 밤의 순간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대로 행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람이야 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인정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형통의 축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3절) 마치 시냇가의 나무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시119:103절의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이 고백은 하나님의 뜻대로 산자의 행복의 표현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진정한 행복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인생의 낮과 밤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특별히 인생의 밤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과 원하심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Share

최은주 10-11-08 12:59
 
저번주 설교 읽어보고 갑니다
답답한 가슴이 조금은 풀린듯 하네요...
 
 

번호 말씀제목 보기 본문말씀 설교자 설교일자 조회 추천
2530 [특별새벽기도] 사랑하기!(고난주간4) 롬5:6-11절 최용민목사 2026.4.2 600 0
2529 [특별새벽기도] 한 걸음 내 딛기!(고난주간3) 잠16:1-9절 최용민목사 2026.4.1 484 0
2528 [특별새벽기도] 방향 묻기!(고난주간2) 시119:57-64절) 최용민목사 2026.3.31 657 0
2527 [특별새벽기도] 기억하라!(고난주간1) 시77:1-12절 최용민목사 2026.3.30 348 0
2526 [주일설교] 거룩한 멈춤! 집중!(고난주간)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3580 0
2525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108 0
2524 [수요설교] 다시 세워진 신앙!(사사기강해15)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6 2141 0
2523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5 104 0
2522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습관(習慣)!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2306 0
2521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12 0
2520 [주일설교] 주일2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55 0
2519 [수요설교] 원칙(原則)이 있는 신앙!(사도행전강해96)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181 0
2518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225 0
2517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결단!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362 0
2516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175 0
2515 [수요설교] 위로받고 위로하고!(사도행전강해96)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152 0
2514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252 0
2513 [주일설교] 신앙 성장의 목적? 마5:1-16절 최용민목사 2026.3.8 180 0
2512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마5:1-16절 최용민목사 2026.3.8 185 0
2511 [주일설교] 주일2부실시간예배 마5:1-16절 최용민목사 2026.3.8 154 0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