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전16:15-20절
제목 : 모든 일에 함께 합시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사자들의 사냥 성공률은 20% 미만이라고 합니다. 이 점을 얼룩말, 가젤, 영양.., 등과 같은 초식동물들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사자의 공격에서 생존할 확률이 80% 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초식동물들이 사자의 공격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무리를 이루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개별적으로 생활을 한다면, 생존률은 급격이 줄어 들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함께 할 때 큰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은 우리나라 속담에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백지장도 맞 들면 낫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아무리 쉬운 일도 함께 하면 더 쉬워진다는 말입니다. 또는, 무엇이든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할 때, 더 잘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든 함께 할 때,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우리의 삶속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운동, 다이어트, 위기를 극복,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 등 함께 할 때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함께 하면 더 잘 할수 있는 것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도 함께 할 때,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기도도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할 때 더 힘이 나고 잘 할 수 있고, 전도도 함께 할 때 더 잘 할 수 있고, 봉사의 일도 함께 할 때 더 잘 할 수 있고, 시험을 이겨내는 일도 함께 할 때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예배, 사역, 선교...,등 도 함께 할 때,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많은 동역자들과 함께 함으로 사역을 더 잘 감당했던 바울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함께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확인하고,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신앙안에서 모든 일에 함께 할 것을 기쁨으로 다짐하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바울 사도의 위대함
오늘 본문은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동역자들을 소개하고 그에 따른 권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자신의 동역자들을 소개합니다. 15절을 보면, ‘스데바나’를 소개하고, 17절을 보면,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19절을 보면, ‘아굴라와 브리스가’(브리스길라는 애칭) 를 소개합니다. 또, 20절을 보면, ‘모든 형제’라고 묘사되는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다고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권면을 합니다. 16절에 ‘이 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고 권면하고, 18절을 보면,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고 권면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나라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는 자들을 격려해주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줄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역시도 여러분에게 권면을 합니다. 우리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는 분들의 수고를 알아주고, 격려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고하는 분들의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었으면 합니다. 아멘이십니까? 네 진심으로 아멘이기를 바랍니다.
이제 오늘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우리들이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위대함”입니다. 물론, 성경은 바울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더나가서 성경은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다윗, 엘리야, 엘리사, 다니엘, 베드로..., 등 그 누구도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도리어 그들의 인생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셔서 그들을 만들어 내신 하나님의 위대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신앙의 교훈을 얻기 위해서 부득불 바울의 위대함을 말하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기독교 역사속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이며, 그리스도인이며, 선교사라고 말해도 지난치지 않는 사람입니다. 먼저, 바울은 위대한 신학자입니다. 그는 신약27권 중 13-14권의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가장 명확하게 정립한 사람이며, 더나가서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죄는 무엇이며, 예수님이 어떤 분이며, 성령이 어떤 분이며, 율법의 역할이 무엇이며, 구원이 무엇이며, 교회가 무엇이며, 종말이 무엇이며, 부활이 무엇이며, 은사가 무엇이며, 그 밖에도 다양한 신학적인 주제들을 잘 정립한 위대한 신학자입니다. 또한, 바울은 위대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성경과 신학적으로만 탁월한 사람이 아니라, 철저히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힘썼던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날마다 달음질 했습니다. 그것도 잠시 잠간이 아니라,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부터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한결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스스로를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고 까지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본다면, 이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을 만한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맞습니다. 또, 바울은 위대한 선교사입니다. 바울은 어디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바울은 1,2,3차 전도 여행을 통해서 여러 지역의 대단히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안디옥, 버가, 구브로, 이고니온, 갈라디아, 루스드라, 에베소)과 유럽지역(빌립보, 데살로니가, 뵈레아, 아덴, 그리고 고린도)에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물론, 바울이 전도하는 일, 특별히 교회를 세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의 적극적인 방해가 있었고, 뿐만 아니라, 로마로 인한 박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상숭배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어려움은 고후11:23-27절에 자세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즉,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고통스러움을 상상이나 하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단 한번도 복음을 전하는 일과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절망하고, 중단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바울은 AD67년 참수형을 당하는 순교로 인생을 마쳤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힘들고 어려운 순간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사람을 구원하고, 교회를 세우고, 돌보고, 성장시키는 사명을 감당함으로 한 평생을 살았던 정말 위대한 선교사였습니다. 이렇듯 바울은 위대한 신학자, 위대한 그리스도인, 위대한 선교사로 한 평생을 한결같이 살았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바울과 같은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즉, 신앙생활을 더 해 갈수록 성경과 신앙을 바르게 정립하고, 날마다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을 닮아가고, 어디서든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가는데 힘쓰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신앙의 내용, 신앙의 열심, 신앙의 목표에 조금도 변함없는 한결같은 신앙의 소유자, 신앙의 실력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에게 말합시다. ‘위대한 신자가 됩시다’
2.하께 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렇게 위대한 삶을 살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반대와 훼방, 견디기 힘든 어려운 순간속에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한결같이 잘 감당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이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본질상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즉, 우리처럼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럼 바울에게 우리들에게 없는 탁월한 능력과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한 이유들을 살펴보면, 바울에게 강력한 카리스마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후10:10절을 보면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에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무슨 말입니가? 바울이 언변이 약했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언변, 웅변 실력이 약했다는 말이 아니라, 고린도교회 성도들 앞에서 강하게 말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탁월한 리더십이나 통솔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위대한 사람으로 세워지고 쓰여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그 이유를 ‘바울에게는 언제나 함께하고 돕는 동역자들이 많았기 때문’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먼저, 15절을 보면, ‘스데바나’ 라는 사람이 소개됩니다. 그러면 스데바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소개합니까? 아가야의 첫 열매라고 말을 합니다. 아가야는 고린도와 아덴(아테네)를 포함한 헬라 남부 지역입니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바울의 전도를 통해서 처음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상당한 재력가로서 물질로 바울의 사역 곧 고린도교회를 세우는 일에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17절을 보면, ‘브드나도와 아가이도’ 라는 사람이 소개됩니다. 이들이 정확이 누구인가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이들은 스데바나의 집에 노예로 있던 사람들로 추정이 됩니다. 그런 그들이 주인이었던 스데바나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 그들도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바울의 사역을 돕는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물론, 바울이 고린도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사역은 쉽지 않았습니다. 고전2:3절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지역의 첫 사역 느낌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즉, 자신이 약하게 보였고,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바울은 고린도지역에서의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바울의 사역을 돕고 함께 했던,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도라는 동역자들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위로를 받았고, 격려를 받았으며, 물질적 지원도 받았고, 무엇보다도 바울의 모든 일에 이들이 함께 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19절을 보면, 여러분이 잘 아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아굴라와 브리스가’입니다. 이들은 누구입니까? 행18장을 보면, 이들은 로마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로마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핍박이 일어나자 고린도 지역으로 이주했고, 거기서 바울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바울과 함께 고린도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함께한 사람들입니다. 이미 언급한 동역자들 보다 먼저 동역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 후 바울이 에베소로 갈 결심을 하자, 이들 역시 고린도에서의 생업을 정리하고, 바울과 함께 에베소로 갔고, 그곳에서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에베소 교회를 세운 사람들입니다. 물론, 바울이 에베소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에베소 지역은 작은 로마라고 불리울 정도로 로마화된 도시이며 따라서 로마황제 숭배와, 특별히 아데미 여신에 대한 숭배가 대단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을 구원했으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에베서지역에서 사역을 어떻게 잘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아굴라와 브리스가라는 동역자가 돕고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16:3절에서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가라는 동역자가 함께 있었기에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밖에도 20절에 ‘모든 형제도’ 로 묘사되는 대단히 많은 동역자들이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롬16장을 보면, 이들을 추측할 만한 여러 이름들이 소개됩니다. 뵈뵈, 브리스가와 아굴라, 에배네도, 마리아, 안드로니고, 유니아, 암블리아, 우르바노, 스다구, 아벨레, 아리스도볼로, 헤로디온, 나깃수, 드루배나, 드루보사, 버사, 루포, 아순그리도, 블레곤, 허메, 바드로바, 허마, 빌롤로고, 율리아, 네레오, 올름바, 디모데, 누기오, 야손, 소시바더, 더디오..., 등 30명이 넘는 바울과 함께 했던 동역자들의 이름을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바울이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것, 위대한 사도로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을 아끼고, 사랑하고, 돕는 동역자들이 항상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바울과 함께 할 동역자들을 많이 붙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서로가 동역자가 되고 서로가 함께하게 하심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점은 성경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다윗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나라로 온전히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인생은 파란만장한 힘겨운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흔들리지 않았고, 넘어지지 않았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나라로 세웠습니다.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바로 다윗의 동역자들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아둘람 동굴에서 만난 600여명의 동역자들이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삼하23장을 보면, 다윗이 죽음을 앞두고 2가지를 고백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목숨도 마다하지 않은 많은 동역자들이 자신과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적진에 있는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고 할 때 기꺼이 가서 우물물을 떠가지고 온 동역자들) 이것이 다윗의 인생을 만들었고, 다윗으로 하여금 사명을 감당하도록 한 가장 중요한 이유이고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또, 모세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하나님 백성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불순종하고, 반역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스라엘을 40년간 잘 이끌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모세에게도 아론, 훌, 여호수아, 갈렙과 같은 동역자들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분은 초대교회의 위대함을 잘 아실 것입니다. 예를들면, 그 시대에 왕과 지도자들도 하지 못했던 고아와 과부를 구제하고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교회의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물론, 초대교회안에도 많은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가 위대한 교회가 될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무엇이든지 마음을 같이하고 함께 하는 동역자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을 아십니까? 이 분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설교를 잘하기로 유명했던 분입니다. 어느날 친구목사님 스펄전 목사님을 찾아와 ‘자네는 어떻게 설교를 그렇게 힘있게, 영감있게 잘하는가?’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스펄전 목사님은 친구목사님을 데리고 예배당으로 가서 기도하는 성도들을 보이며 말했다고 합니다. ‘이 성도들이 나를 위해 쉼없이 기도하고 있다네’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스펄전목사님이 위대한 설교자가 될수 있었던 것은, 목사님을 위해 늘 기도하던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신앙의 수준이 다 다릅니다. 그러나 동일한 것은, 지금 여러분의 신앙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을 위한 동역자가 여러분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동역자들을 회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런 동역자들에게, 더나가서 그런 동역자들을 붙여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품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신앙생활이란 나 혼자 하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벽난로의 숯을 흩어 놓은격) 하나님은 우리를 함께 모이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이란 믿는 자들이 동역자가 되어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자만 잘하는 신앙생활은 정말 잘하는게 아니라, 함께 잘하는게 정말 잘하는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에게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이 교회의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바울의 동역자로 소개되는 사람들은 개인이면서 모두 가정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가정을 통해서 일하신 하나님임을 알수 있습니다. 노아의 가정, 아브라함의 가정, 모세의 가정, 요셉의 가정, 마가 요한의 가정..., 등 그러므로 개인과 가정이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혹시, 동역자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고, 부담스럽게 여겨지십니까? 그렇다면, 쉽게 말씀드립니다. 함께 하는 자가 되십시오! 누군가 울 때 함께 우십시오! 누군가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십시오! 누군가 주저앉아 있을 때 그 자리에 함께 앉아 계십시오! 특별히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하십시오! 교회가 제정한 예배, 기도, 사역에 함께 하십시오! 교회가 계획하고 진행하는 일에 함께 하십시오! 함께 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며, 믿음이 무엇인지 알고, 사랑이 뭔가를 아는 사람입니다. 함께 하는 것보다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자주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함께 하리라’입니다. 이렇듯 함께 할 때 교회는 건강하고 풍성하게 세워질 것이고, 함께 하는 여러분의 신앙도 건강하고 온전하게 세워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이 함께 하게 하시는 방법으로 일하시고, 은혜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며, 우리들이 함께 할 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강하게 경험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서로 권면합시다. ‘모든 일에 함께 합시다.’
3.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소원
물론, 우리들이 서로에게 동역자가 되어 함께 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모든 면에서 다르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주어진 현실이나 신앙의 수준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 함께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데바나, 브드나도와 아가이도, 아굴라와 브리스가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물질로, 시간으로, 마음으로 얼마나 많은 헌신을 했겠습니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나 이들은 바울의 동역자로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과연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의 소원이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동역자가 되어 무슨 일에든지 함께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 역시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소원을 품게 된다면 얼마든지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소원을 가지고 모든 일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사람을 구원하는 소원, 사람과 교회를 세우는 소원을 품기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동역자가 되어주고, 교회가 행하는 모든 일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그런 함께 함을 통해서 하나님은 더 크고 놀라우신 일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