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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순종은 신뢰의 결과물!
 본문말씀 : 눅1:26-38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20.1.22
조회 : 10,279   추천 : 0  
본문 : 눅1:26-38절
제목 : 순종은 신뢰의 결과물!    

  성도들의 삶속으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를 신용사회라고 말을 합니다. 신용사회라는 것은 신용 곧 신뢰가 기반이 되는 사회를 말하며, 신뢰가 지켜질 때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용, 또는 신뢰가 깨진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가정은 더욱 그렇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신뢰하고, 아내는 남편을 신뢰하고, 자식은 부모를 신뢰하고, 부모는 자식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의 관계를 통해서 가정은 더욱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느 공동체이든지 신뢰가 지켜질 때, 공동체가 유지되고 행복한 공동체가 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뢰가 더욱 필요로 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신앙이라는 영역입니다. 우리들이 올바르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없이는 신앙이 성립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마리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마리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마리아의 잉태 – 하나님의 사랑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출생을 예고하는 장면입니다. 먼저, 26절 이하를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3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34절을 보면,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라고 반문합니다. 그러자 35절을 보면, 가브리엘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즉,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하게 될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37절에서는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답을 합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38절에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라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이 첫번째로 묵상할 것은, ‘마리아의 잉태’에 대해서입니다. 우리들이 마리아의 잉태를 묵상해야 하는 이유는, 마리아가 처녀(동정녀(童貞女))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27절을 보면, 마리아는 다윗의 후손인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동정(童貞) 곧 순결을 지키고 있던 처녀였습니다. 그래서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잉태 예고를 받았을 때, 34절을 보면,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처녀의 몸에 잉태하게 된 것입니다. 과연 처녀로서 잉태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인간의 생육법(정자와 난자의 만남, xx와 xy염색체)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동정녀의 몸에 잉태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35절을 보면,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라고 말을 합니다. 즉,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처녀의 몸에 잉태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인간의 생육법으로 잉태되지 않으시고, 성령으로 잉태되셔야만 했을까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죄 없는 인간으로 이 땅에 태어나시기 위함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만일 예수님이 인간의 생육법이라는 방식으로 잉태 된다면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죄인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육법이 아닌, 거룩의 영이신 성령으로 잉태되셨기에 죄 없는 인간으로 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죄 없는 인간으로 태어나야만 했습니까? 그것은 예수라는 이름의 뜻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구약의 여호수아, 호세아와 같은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마1:21절에서는 ‘저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자이심이라’  고 구체적으로 설명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간으로 태어나시는 목적이 범죄한 인간의 대속제물이 되시고 구원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이 인간의 생육법으로 잉태되어 죄인으로 태어나셨다면, 대속적인 죽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 없는 인간으로 태어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의 생육법이 아닌, 성령으로 잉태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는 사건은 어떤 사건입니까? 기적입니까? 물론, 처녀가 잉태한다는 것은 놀라운 기적이고 초월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처녀가 잉태하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이시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으로 죄악된 세상으로, 그리고 죄인의 자리로 오셨다는 점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하나님처럼 되려다가 죄인이 된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죄인의 자라에 오시기로 작정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잉태사건은 하나님의 사랑이 온 인류에게 임할 것을 예고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측량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받은 자임을 깨달고, 감사하고, 그 사랑에 보답하는 인생을 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이유이며 목표인 것입니다.

  2.마리아의 순종 – 순종으로 일하시는 분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케 하여 죄없는 인간으로 이 땅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셨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구속사역을 누구를 통해서 하고 계십니까? 가브리엘천사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단지 전달자 일뿐입니다. 그러면 누구입니까? 바로 마리아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마리아를 통해서 이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라는 점이며, 또는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 순종하는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서, 순종하는 우리를 통해서 기적도, 능력도, 축복, 은혜도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이 점을 성경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홍해도하 사건을 보십시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은 곧 홍해바다 앞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더욱 강팍해진 바로왕은 이스라엘을 붙잡으려고 온 군대를 이끌고 뒤쫓아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사면초과, 진퇴양난에 놓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홍해바다를 마른 땅과 같이 건너가는 방법으로 바로의 군대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팡이를 들어 바다를 갈라지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모세가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또, 이스라엘이 여리고 전투에서 승리한 사건을 보십시오! 여리고성은 대단히 견고한 성입니다. 그 성이 얼마나 견고했냐면, 우선 그 성은 이중으로 쌓여진 성이고, 그 성 위에서 마차경기를 즐겨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대단히 견고한 성입니다. 그런데 그 여리고성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게 되었고,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 승리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즉,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바퀴, 제 7일에는 7바퀴를 돌라는 명령에 순종한 결과입니다. 또, 베드로를 생각해보십시오! 베드로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 순종으로 고기만이 아니라 주님의 제자도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보십시오! 오순절에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놀라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 곧 성령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으로 성령만 임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 밖에도 성경을 보면, 오병이어사건, 가나안 혼인잔치의 포도주 사건, 사르밧과부의 기름병사건...,,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의 사건..., 등 모두가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신 사건들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고 계십니까? 만약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 본문대로 말한다면, 바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응답해주심을 경함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응답해주심을 경험할 수 없게 됩니다. 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나를 찾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환란 날에 내게 부르짖으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심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을 보면, 순종이라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복을 바라고, 능력을 바라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안그렇습니까?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들이 순종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아도, 신앙의 연수가 쌓여 있어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마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능통한 박사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결단하고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기쁘고 감격스러운 하루 하루를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순종해야 하는 진짜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순종이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진 의무이고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왜 순종이 의무이며 책임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신 크신 은혜와 사랑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을 애굽땅에서 구원하시고, 십계명 준수를 요구하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그러기에 순종은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너무나 마땅한 의무이며 책임인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순종해야 할 이유는, 순종이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리아를 생각해보십시오! 눅1:46절 이하를 보면,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지금 마리아는 자신에게 구원자가 잉태되는 것이 특권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은 특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순종함이 특권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아마 여러분은 순종이 특권이라는 생각을 놓칠 때가 많을 것입니다. 도리어 특권이라는 생각보다는 부담스럽고 무거운 짐으로 여겨질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순종은 최고의 특권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만 요구하시는 것이고, 자기가 사랑하는 자들에게만 요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아닌 그 어느 나라에게 율법에 순종하라고 명령하신 적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그 누군가에게 원수를 사랑하라, 일흔번찍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오른 빰을 치거든 왼빰도 돌려데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고 순종을 요구하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순종할 수도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자녀이고, 하나님께서 사랑받는 자들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순종 할 수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특권입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이야기 합시다. 순종은 특권입니다. 순종합시다.

  3.순종은 신뢰의 영역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쉬운 일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약혼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약혼자인 요셉을 생각해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당시 약혼기간은 보통 1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에서 부정한 행위가 들어나게 되면, 이혼을 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기간에 임신을 하게된 것이 알려진다면, 당연히 이혼을 당할 수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마리아는 처녀였습니다. 처녀가 임신을 하는 것은 단순히 이혼 사유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나가서 마리아는 이 일로 인해서 많은 비난과 정죄를 당해야 했을 것이고, 심각할 경우에는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측면으로 본다면, 마리아의 순종은 결코 쉬운 순종은 아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마리아가 순종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 때문입니다. 34절을 보면,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가 잉태에 대한 소식을 전할 때, 잠시 주춤합니다. 그러나 36절을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불임부부였던 사가랴와 엘리사벳 가정에 임신이 된 것과 무엇보다도, 37절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하자 마리아는 38절처럼 순종을 말합니다. 즉, 마리아가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갖을 때, 그는 그 모든 어렴들을 감수하고 기꺼이 순종을 다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10명의 문둥병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문둥병에 결려 공동체에서 쫓겨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너희 몸을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 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즉시 제사장을 향해 나갔습니다. 순종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바울을 생각해보십시오! 바울은 1차 전도여행을 마친 후 같은 곳으로 2차 전도여행을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바울을 막으시고 환상을 통해서 마게도냐로 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즉각적으로 전도의 계획을 바꾸어 마게도냐로 가게 됩니다. 이 일은 쉬운 일일까요? 아닙니다. 지금까지 준비한 것이 허사가 되고,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지역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순종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순종은 신뢰가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살펴본 하나님께서 일하시게 한 모든 순종은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를 말합니다. 이래서, 저래서..., 그러나 우리들이 순종하지 못하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순종을 이성, 상식, 이해의 영역에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마리아가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라고 이해와 이성, 상식의 영역에서 생각했을 때, 순종을 망설였듯이, 우리도 순종을 이성, 상식, 이해의 영역에서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순종이 안되는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순종은 이성, 상식, 이해의 영역이 아닌, 신뢰의 영역입니다. 즉, 오직 하나님을 신뢰 할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순종은 신뢰의 싸움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이 순종하는 못하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신뢰하십니까? 더 구체적으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신뢰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합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신뢰합니까?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신뢰하십니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신뢰하십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신뢰하십니까? 하나님의 변함없으심을 신뢰하십니까? 정말 우리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신뢰한다면, 우리들에게 순종하지 못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만큼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해해야 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신뢰해야 할 분이십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들이 100% 신뢰해도 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그 신뢰함으로 순종의 삶을 살아내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한때 이런 유머가 유행하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목욕탕에 갔는데 아버지가 뜨거운 탕 속에 들어가면서‘아, 시원하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아들이 탕에 들어갔다 뛰어 나오면서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들이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은 없습니다. 사랑해야 할 대상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이 신뢰할 수 있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위하시는 일에 변함없이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내어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순종의 자리로 기쁨과 담대함으로 나가기를,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봄으로 날마다 감사와 감격가운데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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