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왕상22:1-40절 열왕기상 강해31
제목 :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삽시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20C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이며 목회자였던 무디목사님에게 한 성도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개업하려고 하는 양조장(술공장)에 와서 축복기도를 해주기를 부탁했습니다. 다음날 목사님은 양조장에 가서,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고 합니다. ‘오! 하나님! 이 양조장이 내일이며 문을 열게 됩니다. 이 양조장 문이 열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문이 열리면 엄청난 술이 생산될 것입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이 술을 마시고 타락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술을 먹고 취하여 제 정신이 아닐 것입니다. 오! 하나님이시여! 제발 오늘 밤 이 양조장 주인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셔서 이 양조장 문이 내일 열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양조장 주인은 참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양조장 주인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새벽까지 한숨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뜻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는 양조장을 그만두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힘들게 준비한 양조장 사업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훗날 그 양조장 건물이 목회자를 양성하는 무디 신학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이며, 참다운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의 뜻을 고민하고 묻는 2명의 왕이 소개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확인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음으로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을 따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람연합군과의 1,2차 전쟁에서 승리한 후 3년이 지난 어느날 남유다의 왕인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인 아합을 찾아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시기에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관계가 상당히 우호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절을 보면, 아합왕이 아람나라에게 빼앗겼던 길르앗 라못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고, 4절을 보면, 여호사밧왕에게 함께 전쟁을 해서 되찾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러자 5절을 보면, 여호사밧왕이 아합왕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자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6절을 보면, 아합왕은 이스라엘 땅에 있던 선지자 400명쯤을 모이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참고로, 여기에 나오는 400여명의 선지자들은 어용선지자입니다. 어용선지자라는 말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었지만, 바알과 아세라에게 무릎을 꿇은 자들로서, 정치인들의 편에서 그들의 원하는대로 말해주고, 복을 빌어주는 고용된 선지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합왕에게 전쟁 할 것과 이기게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7절을 보면, 여호사밧왕은 그들이 어용선지자들이라는 점에 마음이 미심 적은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선지자들에게도 묻을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9절을 보면, 미가야선지자를 불러오게 됩니다. 그리고 미가야 선지자를 부르러 간 사이, 11절을 보면, 시드기야 선지자가 다시한번 이스라엘이 승리할것이고, 길르앗 라못을 되찾을 것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14절을 보면, 잠시 후 미가야선지자가 도착합니다. 처음에는 아합왕이 듣고싶은대로 승리를 예언해줍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전쟁에서 지고, 아합왕은 이스라엘로 돌아오지 못할 것, 곧 죽을 것을 예언하게 됩니다. 그 결과 24절을 보면, 미가야 선지자는 시드기야에게 빰을 맞고, 아합왕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미가야선지자가 예언한대로,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아합은 아람과의 전쟁에서 화살에 맞아 죽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묵상해야 할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첫 번째로,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함”에 대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의 아합은 아람과의 전쟁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물을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왕은 달랐습니다. 그는 매우 신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5절을 보면, 아합왕에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한지 물어보소서’라고 제안을 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묻자는 것입니다. 우리도 여호사밧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묻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어느것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인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신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축복해주실 일인지? 물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잘됨과 성공이라는 축복을 주셨다면, 하나님께 축복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행하시는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분의 삶에 고난과 실패가 찾아왔다면, 고난의 순간을 겪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또, 여러분이 뜻하지 않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에도 그 사람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또, 여러분의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또,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또, 여러분의 자녀를 어떤 사람으로 키워야 할지도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다 결정해 놓고 하나님이 도와주시기를 바라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둘째는, 무엇인가를 결정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것은 아닌가를 점검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지난 한주간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많이 물으셨습니까? 혹시,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살지는 않았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살아간다면,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게 아닙니다. 바른 신앙생활이란?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왜 내뜻이 있는데 왜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하냐? 라고 물으실 분이 계십니까? 정말 몰라서 묻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살면 인생에 문제가 생깁니다. 성경의 인물로 예를들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보십시오! 그는 아브라함과 분가를 하게 됩니다. 그때 롯은 어디로 갈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 눈에 보기에 좋은 소돔땅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의 신앙도 무너졌고, 그의 집안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또, 사시시대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즉, 하나님의 뜻에 관심없이 없었고 자신의 뜻대로만 살았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많은 인생의 문제와 불행을 겪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내 뜻대로 살아가는 일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살면서 인생의 문제와 신앙의 위기를 만날때가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내 경험, 내 지식, 내 생각을 따를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욱 복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뜻을 알고 따르는 것이 복되겠습니까? 당연히 완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묻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묻고, 알게 될 때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속에 두려움이 많은 것은, 단순히 어떤 어려움과 문제 때문만은 아닙니다. 도리어 지금 당면한 어려움과 문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크고 복되신 뜻을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를들면, 지금 여러분이 어떤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격게 하시고, 그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크고 복된 뜻을 알게 된다면, 그래도 두려우시겠습니까? 절망하시겠습니까? 그럴리 없습니다. 어떤 순간에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평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는 분이 계십니까? 그러면 이것 한가지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의 왕이시며 주인이십니다. 맞습니까? 믿습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여러분은 매 순간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거룩한 습관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갈망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2.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숲속 오솔길을 걸어가던 중 두 갈래 길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의 길을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지팡이를 중앙에 놓고 쓰러뜨렸을 때 지팡이가 왼쪽으로 쓰러지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쓰러지면 오른쪽으로 가겠습니다" 할머니가 지팡이를 쓰러뜨렸습니다. 그러자 지팡이가 오른쪽으로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마음은 왼쪽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다시 지팡이를 쓰러뜨렸습니다. 하지만 역시 지팡이는 오른쪽으로 쓰러졌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지팡이를 쓰러뜨렸고 여러 번을 거친 후에 왼쪽으로 지팡이가 쓰러지자 할머니는 "역시 하나님이 왼쪽 길로 인도해 주시는군" 하면서 왼쪽 길로 길을 갔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합왕과 여호사밧왕이 이 할머니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가야 선지자를 통해서 전쟁의 패배와 아합의 죽음을 예고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게 옳습니까? 전쟁을 하면 안됩니다. 적어도 하나님께서 미가야를 통해서 예언을 말씀을 주시는 것은, 아합왕에게 또 한번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왕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전쟁을 결정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을 묻고 확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멘하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아합과 여호사밧왕은 하나님의 뜻에 아멘하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처음에 계획했던대로 자신의 뜻대로 전쟁에 나갑니다.
그런데 이 2명의 왕의 모습이 우리와 너무 비슷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때로는 굳이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예를들면,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있을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잘압니다. 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잘입니다. 또,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도 잘압니다. 또, 겸손히 서로를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런 것들은 묻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 외에도 말씀을 묵상하는 것, 절제하는 것, 희생하는 것..., 등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 중에 하나님의 뜻이 몰라서 신앙생활을 잘 못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적어도 여러분 정도면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을 많이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삶속에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따르지 않고 있는 일들은 없습니까? 열심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열심내지지 않는분 안계십니까? 용서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용서하지 않는 분이 계십니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안하고 계신분은 안계십니까? 그 외에도 희생, 감사, 결단, 헌신...,등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은 없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합왕의 길을 뒤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합이 격은 패배를 격게 될 것입니다.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내가 하나님의 뜻에 아멘하며 따르겠습니다.’라고 결심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확인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담대히 용기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도!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아십겠습니까? 그 이유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면서, ‘만사형통’ ‘세상적 축복’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도, 고난이 있고, 실패가 있고, 반대에 부딪히게 될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라고 무조건 거침없는 길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면, 만사형통할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 실패할수 있고, 어려움을 격을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미가야를 보십시오! 미가야는 아합왕의 패배와 죽음을 전했습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리고 자신이 아합왕에게 얼마나 미움을 받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미가야선지자는 아합에게 패배와 죽음을 전합니다. 왜냐하면, 그게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미가야 선지자에게 일어난 일은 무엇입니까? 24절을 보면, 시드기야 선지자에게 빰을 맞게 됩니다. 또, 27절을 보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런 경우는 성경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바울을 생각해보십시오!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얼마나 많은 고난과 고통을 당했습니까?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항상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를 중심에 두고 사신 분이십니까? 이렇듯, 하나님의 뜻대로 완벽하게 사신 분이신데, 예수님이 당한 미움과 멸시와 고난과 죽음을 생각해보십시오! 결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 사람들에게 만사형통은 약속되지 않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헛수고라는 생각이 드십니다. 아닙니다. 하나님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축복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진정한 축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떼돈, 건강, 형통함...,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고 모두가 그런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것은 진정한 축복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진정한 축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된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그 자체가 축복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나 하나님뜻을 따라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며 얻게되는 진정한 축복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그 자체가 축복인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쉽게 지치고 하나님의 일을 넘어지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리고 비록, 만사형통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삶이고, 가장 안전하고 복된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축복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삽시다.
말씀을 마치면서
하나님의 뜻은 항상 우리의 뜻보다 크고 선하고 복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행복과 기쁨과 축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