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왕상21:1-29절 열왕기상 강해30
제목 : 나와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것!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 퀴즈를 내보겠습니다. 이것은 나를 불행하게 하고, 또 다른 사람도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욕심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나친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마치 불을 품고 사는 것과 같아서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무엇이냐면, 그런 욕심으로 인해 자신만 불행하게 되는게 아니라, 주변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욕심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죄악인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욕심 때문에 자신과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아합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욕심이 만들어 내는 결과가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욕심이 아닌, 나눔과 배품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아합 자신을 불행하게한 욕심
오늘 본문은 아람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아합과 그 가문이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그 후에’라고 기록됩니다. 그 후라는 것은, 아람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대승이라는 은혜를 주신 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왕은 느닷없이 자신의 왕궁 근처에 있는 나봇이라는 사람의 포도원이 욕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정당한 방법 곧 값을 지불하거나, 더 좋은 포도원과 바꾸자고 나봇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4절을 보면, 나봇에게 그 포도원은 아버지가 유산으로 물려준 것임을 말하고 정중히 거절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포도원 이야기는 끝나야 합니다. 그런데 아합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합은 어린 아이처럼 음식을 먹지 않고, 계속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아내 이세벨이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10절을 보면, 이세벨은 나봇에게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누명을 씌우고, 거짓 증인 2명을 세워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 아합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아합왕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21-26절을 보면, 엘리야를 통해서 아합왕과 이세벨, 그리고 그의 집안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시겠다는 통보를 하셨습니다. 물론, 이번 일 때문 만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죄에 대한 심판인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합은 27절을 보면, 회개를 합니다. 그러자 그 회개로 인해서 심판이 다음세대로 유보됩니다. 심판이 취소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첫 번째 묵상할 것은, “왜? 아합왕과 이세벨, 그리고 그의 가문이 비참한 최후를 통보받게 되었을까요?” 우선은, 그들이 이스라엘나라에서 행한 일때문일 것입니다. 무슨 일을 했습니까? 자신의 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시돈나라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시돈나라의 공주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땅에 바알우상과 아세라우상을 들여왔고,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짓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반대하던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는 일을 하게 된 것 입니다. 결코 해서는 안될 일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우상의 나라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아프셨고, 심판을 준비하게 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심판을 결정하게된 결정적인 이유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합왕의 욕심과 이세벨의 악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아합과 그의 가문은 욕심 때문에 심판의 선고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과 욕심이라는 심판의 이유를 보면, 이 두가지가 사실은 같은 맥락의 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는 곧 욕심의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우상은 각 각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능력을 부여한 존재는 누구일까요? 인간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각 각의 우상에게 능력을 부여했을까요? 그러한 능력이 자신에게는 없기 때문에 우상에게 능력을 부여해서, 그 능력을 얻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우상은 욕심과 본질상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골3:5절에서는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우상을 숭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다다익선 때문입니다. 많은 신을 섬기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즉,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여러 신들의 혜택을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도 욕심에 근거한 죄입니다. 결국, 아합과 그의 가문이 심판받게되는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욕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욕심의 결과 4절을 보면, 아합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근심하는 불행함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비침한 죽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합왕과 그의 가족들이 불행하게 된 것은, 욕심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욕심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누가 있을까요? 아담과 하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먹지말라 말씀하신 선악과에 욕심을 부려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또, 야곱입니다. 야곱은 장자권에 욕심을 부려 그의 남은 인생이 불행했습니다. 또, 아간입니다. 아간은 이스라엘이 여리고성과의 전투에서 외투와 금덩이에 욕심을 부려 사형을 당하는 불행한 결말을 맞았습니다. 다윗도 한때 여인에 대한 욕심으로 불행한 세월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 역시, 왕이되고자 하는 말도 안되는 욕심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는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누가 크냐라는 욕심 때문에 불행한 제자의 삶을 살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욕심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극작가인 셰익스피어를 아실 겁니다 그가 욕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에는 눈물이 있고, 행운에는 기쁨이 있고, 용맹에는 명예가 있다. 그러나 욕심에는 죽음이 있다.’고 말입니다. 사실 이것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약1:15절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욕심은 각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속에 욕심으로 인해 불행이 생기거나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욕심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또는, 불행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배우자와의 문제의 원인이나 불행을 느끼는 이유도 결국은 욕심때문입니다. 또, 자녀와의 문제 역시 욕심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웃과의 문제도 욕심때문이고,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문제들을 역시 욕심때문입니다. 욕심이 나를 불행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욕심의 심각성을 항상 잊으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욕심은 왜 사람을 불행하게 할까요? 욕심이 모든 죄의 원인이고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욕심 그 자체가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욕심은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 할 때도 많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욕심이 죄라고 여기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중세시대 기독교 지도자인, 존 벱티스 드라셀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수천명의 사람들을 상담하고 대화를 해보았지만, 그중에 단 한사람도 욕심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없었다.’ 참 정확한 평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둑질을 하고, 미워하는 것으로 죄책감을 느끼지만,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욕심으로 인해 죄책감을 가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마치 암과 같아서 쉽게 위험성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욕심이라는게 그래서 무서운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계십니까? 아니면, 전혀 죄책감이 없으십니까?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욕심은 죄입니다. 그리고 욕심 더 많은 그리고 심각한 죄를 만들어 내는 죄의 공장입니다.
2.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욕심
우리는 지금까지 욕심이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한다는 점을 묵상했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나 자신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욕심은 내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사건의 범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임금님이 직접 사건해결에 나셨습니다. 임금님이 사건현장에 가보니, 높은 절벽 위에 돈 보따리 3개가 놓여 있고 한 사람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으며, 세 사람은 절벽 위에 가지런히 누운 채 죽어 있었습니다. 사건 현장을 자세히 살펴본 임금님은 사건의 정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의 범인은 바로 죽은 네 사람 모두이다. 네 사람이 돈을 도둑질해서 이곳까지 와서는 이 돈이 서로 탐이 나서 한 사람에게 술을 사오라고 시킨 후에 셋이서 돈을 나누기로 약속하였는데, 술을 사러간 도둑이 또 돈이 탐이 나서 술에 독약을 타서 가져왔다. 술에 약을 넣은 것을 모르고 나머지 세 사람은 술을 사온 사람을 절벽으로 밀어서 떨어뜨려 죽인 다음 기분 좋게 술을 나누어 먹고는 모두 죽은 것이다.’ 여러분이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욕심을 부리면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아합은 욕심을 부렸습니다. 그래서 4절처럼 스스로가 불행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아합 자신만 불행했던 것은 아닙니다. 결국은, 아합의 욕심으로 인해, 10절을 보면, 나봇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고, 돌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아합의 욕심이 나봇을 불행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나봇을 죽이기 위해 돈받고 고용된 거짓증인이 된 2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로 나봇이 죽었는데, 그들이 행복했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은 지옥같이 불행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봇의 아내, 그의 자녀, 그의 가족, 친구는 어떠했겠습니까? 불행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욕심이 나만 불행하게 하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한사람의 욕심으로 다른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되는 일들이 많이 소개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에 대한 욕심입니다. 그 욕심으로 인해 그들만이 아니라, 온 인류가 죄인이 되어 불행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또, 야곱의 욕심입니다. 야곱은 욕심쟁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욕심으로 인해 자신만이 아니라, 형, 부모, 처자식까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아간이 한사람의 욕심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전쟁에서 패배하는 불행을 격었습니다. 또, 다윗의 욕심이 우리야의 가정을 불행하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욕심 때문에 배우자가 불행하고, 가족이 불행하고, 성도가 불행해지고, 친구와 이웃이 불행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누군가의 욕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음주운전, 사채업자, 사기, 도둑질, 납치, 살인..., 등 자신만의 욕심을 위해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욕심 때문에 누군가를 불행하게 하는 일은 없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욕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틀림없이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욕심이 배우자를 불행하게 하고, 자식을 불행하게 하고, 가족을 불행하게 하고, 이웃과 친구, 교우들을 불행하게 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욕심은 나만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욕심은 나와 누군가를 불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욕심이 누군가를 불행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늘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3.거룩한 욕심을 내라!
지금까지 우리들이 욕심이 자신을 불행하게 하고, 내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한다는 점을 묵상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욕심이 무조건 다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욕심이 없었다면, 세상이 발전할 수 없고, 개인이 발전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더 편리한것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면, 자동차가 개발되고, 세탁기가 개발되고, 전기가 개발되고..., 등 더 나은 문명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공부를 잘해보겠다, 장사를 잘해보겠다, 어떤 실력을 더 향상시켜보겠다..., 등의 개인적인 욕심이 없다면, 개인적으로도 어떤 향상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점은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욕심을 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생활을 더 잘 할수 있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갖어야 할 거룩한 욕심들은 무엇일까요? 우선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은 예배에 욕심을 내야 합니다.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에 욕심을 내야 합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욕심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수고하는 일에 욕심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고 돕는 일에 욕심을 내야 합니다. 또, 영혼을 살리는 전도와 선교의 일에도 욕심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에 욕심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에도 욕심을 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런 일들에 대한 욕심이 가득하십니까? 아니면, 이런 거룩한 일들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적인 일에는 욕심쟁이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한, 이웃을 위한 욕심쟁이, 교회를 위한 욕심쟁이, 그리고 거룩한 일에 욕심쟁이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욕심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며, 여러분의 신앙을 활력있게 할 것이고, 여러분의 이웃의 신앙에 유익을 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모든 불행은 욕심에서 시작됩니다. 그렇습니다. 욕심은 나를 불행하게 하고, 내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와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거룩한 욕심만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