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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환난을 당하게 하시는 이유!(요한계시록강해17)
 본문말씀 : 계2:8-11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10.30
조회 : 11,432   추천 : 0  
본문 : 계2:8-11절   요한계시록 강해17 
제목 : 환난을 당하게 하시는 이유!  

  들어가는 말  
 우리들이 인생을 살다보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물건을 갖기 위해서는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 학생은 공부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또,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에 가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당연한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예배를 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 큐티하는 것, 감사하는 것, 순종하는 것, 전도하는 것..., 등 이러한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것들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한 것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바로 ‘환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당연히 만나게 되는 환난을 하나님의 의도하심 대로 잘 감당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환난이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이 기록 될 당시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환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서머나교회와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네 화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라고 말을 합니다. 지금 환난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0절을 보면,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하지 말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전에도 환난을 당했고, 지금도 환난을 당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이 환난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필연적인 일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특별히 신자들이 환난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첫째로, 우리의 구주이시며 왕이신 예수님께서 환난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예수님께서 환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그분을 따라가는 우리들 역시 환난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 살지만, 세상을 반대하고, 하나님 편에 서기로 작정한 들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반대하고 하나님 편에 서기로 작정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세상을 떠나 살기로 했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편에 서기로 했다는 말은, 간단히 말하면, 세상의 경향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살고, 그래서 세상과 다른 삶을 살기로 했다는 말인 것입니다. 예를들면, 세상은 거짓을 말하지만 우리는 정직을 말합니다. 세상은 높아져 호령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낮아져 섬기려고 합니다. 세상은 미워하고 복수하지만 우리는 사랑하고 용서합니다. 세상은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우리는 과정과 방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렇듯 세상과 다른 삶을 살기로 한 것이 바로 하나님 편에 서기로 작정했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삶에는 환난이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신앙의 이유로 환란을 당하냐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네 물론, 초대교회시대, 계시록이 기록될 시대, 일제시대, 6.25때와 같이 예수를 믿는다고 죽임을 당하고, 직장을 잃고, 매를 맞고, 고초를 당하는 일은 적어도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 땅에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자들에게 환난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환난이 없다면, 성경은 모순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이미 말씀드린 대로 성경은 모든 시대의 모든 신자들에게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환난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환난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게 환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환난은 무엇일까요? 우선 환난이란 이미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대로, 신앙이라는 이유로 외부로부터 어떤 공격과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들면, 목숨을 빼앗기고, 직장을 잃고, 미움을 당하고, 손해를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환난의 더 중요한 내용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해서 생기는 영적인 고통, 또는 내면적인 고통을 말합니다. 예를들면, 모세는 애굽 나라의 왕자였고, 누구보다도 보장된 미래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애굽나라의 왕자이기를 포기하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기로 선택을 했습니다. 신앙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물론,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신앙의 선택 때문에 일어난 일은 무엇입니까? 뜻밖에도 도망치는 것이고, 광야에서 목자로 사는 일이었습니다. 모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십시오! 왕자이기를, 보장된 미래를 포기했는데 도리어 아무런 결과도 없이 고작 도망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어쩌면 후회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마음의 아픔과 고통이 바로 환난입니다. 또, 시73:2-14절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신자된 자신은 늘 힘들고 어렵게 사는데, 악인들은 너무 형통하게 잘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게 마음에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이런게 바로 환난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실생활로 적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를들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 자꾸 어려움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에 갈등도 생기고 회의도 생깁니다. 이게 환난입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신앙의 선택 때문에 겪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누군가를 보며, 화가 나고 욕도 하고 싶은데 신자로서 그럴 수 없어서 참습니다. 그래서 더 괴롭습니다. 이게 환난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역시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신앙의 선택 때문에 겪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신앙생활을 잘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괴롭고, 예배 안드린 것, 기도 안한 것, 성경 안 읽은 것, 십일조를 정직하게 하지 못한 것, 미워한 것, 순종하지 못한 것...., 등으로 인해서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운 것도 역시 환난입니다. 왜냐하면, 이것 역시 하나님 편에 서기로 한 신앙의 선택의 포기하지 않아서 겪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유 막론하고 신자된 여러분이 격게 되는,  모든 아픔, 고통, 상처, 괴로움, 답답함, 갈등..., 등이 환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측면으로 본다면,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환난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2.환난을 당하게 하시는 이유?
 계속해서 오늘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한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서머나교회와 성도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은 하지만, ‘환난을 면하게 해주겠다, 또는 환난을 당할 때, 도와주겠다, 환난을 당할 때 어떻게 해주겠다.(매 맞을 때 안아프게 해주겠다, 고문을 당할 때 그 고통을 이길만한 다른 대안을 주겠다?)’는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 흥미롭습니다. 아니면 좀 섭섭함도 느껴집니다. 단지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두려워 하지 말라’ ‘죽도록 충성하라’ 라는 말뿐입니다. 물론, 10절 하반절에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절에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는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대로, 이러한 약속들은 나중에 받게 될 구원을 의미하는 것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환난을 당하는 그 순간에 대해서는 아무런 약속이나 보장도 해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안희숙씨의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때, 신앙의 이유로 박해를 당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입니다. 이 책을 보면, 주기철 목사님을 비록한 많은 순교자들과 그들의 가족 이야기가 많이 소개됩니다. 그리고 그 중에 투옥이 되었다가 풀려난 목사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옥고를 치루고 풀려나자 성도들이 다음과 같이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투옥되어 매를 맞을 때, 그리고 고문을 당할 때, 하나님이 고통을 면하게 해주셨습니까? 고통을 견딜만한 뭔가를 해주셨습니까? 그러자 목사님은 아무것도 안해주셨다고 대답을 했고, 그 말을 들은 성도들이 낙담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서머나교회 성도들도 그러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 모든 신자들이 환난을 당하게 두신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환난을 당하도록 두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시, 환난을 면해주실 능력이 없기 때문일까요? 우리를 도와주실 힘이 없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우리를 덜 사랑하시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얼마든 환난을 면해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고, 환난 당하는 자들을 얼마든지 도와주실 수 있는 힘을 가지신 분이시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를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환난을 당하도록 두실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이유를 답해주고 있습니다. 그 답은 바로 ‘실상은 부요한 자’ 는 말씀속에 답이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환난이 서머나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부요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환난이 서머나교회 성도들의 구원을 완성하게 하고, 신앙을 온전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신자들에게 환난이 유익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환난을 당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119:71절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환난이 유익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여러분은 야곱, 요셉, 욥, 이스라엘 백성..., 등의 여러 사건을 통해서 환난이 유익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환난이 왜 우리의 신앙에 유익을 주게 되는가? 라는 부분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환난은 어떤 점에서 우리의 신앙의 유익을 줄까요? 2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환난은 우리로 하여금 인내를 배우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인내로 완성이 됩니다. 예를들면, 부부가 부부다워지는 일, 좋은 부모가 되는 일, 학생이 성적이 오르는 일, 사업이 성공하는 일, 더 나은 인격과 성품을 가지는 일..., 등 모든 가치와 의미는 인내로 완성이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도 인내로 만들어지고 인내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구절  롬5:3-4절을 보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말을 합니다. 즉, 우리를 소망의 자리로 인도하는 것은 인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인내를 강조한 사도가 있습니다. 바로 야고보사도입니다. 약1:3절에서는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또, 약1:4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인내의 의미와 가치를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약5:11절에서는‘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환난은 우리들에게 인내하도록 하고 그 인내로 하여금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환난은 우리의 신앙에 유익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환난을 당하도록 두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환난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를 깨달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몇가지 분명한 신앙의 내용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만이 온 우주만물을 지으신 분이라는 알고 믿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모든 것을 통치하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밖으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내 편이라는 것을 알고 믿게 됩니다. 그런데 현실은 환난인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생각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내편이라는 것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거나, 내가 뭔가를 착각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것로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 생각이 맞을까요? 하나님은 거짓말 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우리가 뭔가를 착각하고 오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착각하고 오해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복에 대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주이고, 주관자 이시고, 그리고 나를 사랑하시고 언제나 내 편이시라면 우리에게 복이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복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 성경이 말하는 복은 너무나 다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복은 무엇일까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 부자가 되는 것, 자식이 잘되는 것, 어려움과 문제없이 평안히 사는 것, 하는 것마다 다 형통하게 되는 것...,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러한 것들을 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신자들도 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전혀 복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복이라고 말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약속하신 복은 무엇일까요? 구원이고, 거룩이고, 진리를 아는 것이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자들이 진정한 복이 아닌 것들을 복이라고 착각하고 오해하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과 환난이 무슨 상관 관계가 있을까요? 환난이란 우리가 복이라고 착각하고 오해하는 것들이 진정한 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게 하는 역할, 우리의 착각과 오해를 깨트리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설명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세상 사랑들처럼 돈이 최고의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돈에 환난이 임하게 되면, 돈이 영원한 복이 아니고, 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게 됩니다.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환난이란 우리가 복이라고 착각하고 오해하는 것들을 깨트리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고, 고민하게 만들고, 결국, 하나님만이 진정한 복이고, 영원한 것들이 최고의 복이라는 사실을 깨달게 되는 것입니다. 환난이 하는 일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렇듯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를 깨달게 되게 될 때, 신자다워 질수 있고, 신앙의 모습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세상적인 복을 얻고자 했습니다. 병고침, 배부픔, 권세의 자리...,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을 복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이 체포당하자 그들은 모두가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자신에게도 예수님에게 임한 화가 임하기를 원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행2장 이후를 보면, 제자들과 성도들의 모습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담대히 전했고, 매를 맞아도 그리스도를 위해 매 맞은 일로 인해서 기뻐했고, 무엇보다도 피 같은 돈을 기꺼이 내 놓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비로써 복이 무엇인가를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강림 사건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그토록 주시고자 하는 복이 구원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자 하심이라는 것을 깨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복이라고 여긴 것이 복이 아님을 깨달았고,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를 깨달게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결과 환난을 기꺼이 감당하고, 자신들을 박해하는 유대인들에게 무력으로 저항조차 하지 않고, 기꺼이 그들로 인한 환난을 감당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신앙에 어려움이 생기고, 환난이 생기는 이유는, 결국, 내가 생각하는 복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이 대립되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복이 아닌 것을 복이라고 착각하고, 신앙을 통해서 착각하고 있는 복을 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환난이라는 것을 통해서 그 착각과 오해를 깨트리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복이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깨달아야만 우리의 신앙의 변화와 성장이 올수 있다는 점입니다. 꼭 명심하십시오! 세상이 말하는 복은 진정한 복이 아닙니다. 진정한 복은, 구원이고, 거룩이고, 진리를 아는 것이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3.환난을 당하게 될 때?
 그렇다면, 앞으로 환난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망갈 명분을 찾지 말고, 피할 길을 찾지 말고, 환난을 면하는 일에 기도를 쓰지 말고, 환난을 감당하십시오! 여기서 한가지 기억할 것은, 가장 잘못된 그리고 나쁜 교리가 휴거입니다. 이것은 성경에도 없는 거짓교리입니다. 왜냐하면, 휴거의 핵심은 환난을 면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잘 감당하십시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10절에 ‘죽도록 충성’ 하십시오! 그렇다면, 죽도록 충성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믿음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즉, 어떤 위협, 어떤 손해, 어떤 미움을 당해도 믿음을 지키십시오! 그렇다면, 믿음을 지킨단느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붙잡고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러분이 붙잡아야 할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롬8:38-39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럴 때, 어떤 환난도 우리는 감당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환난을 당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힘과 능력과 사랑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유익하게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인내를 배우게 하시고, 복이 무엇인가를 깨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환난을 기쁨으로 특별히 누구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여러분을 끊을 수 없다는 약속을 믿음으로 잘 감당하시는 이 시대의 서머나교회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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