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왕상19:1-21절 열왕기상 강해28
제목 : 신앙이 무기력 할 때!
성도들의 삶속으로
우리는 살다보면, 무기력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상에 아무런 의욕(식욕저하)이 생기지 않고,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며, 현실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며,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 결과 무슨 일을 해도 즐겁지 않고, 활기가 없으며, 말 그대로 하루 하루를 버티며 살게 됩니다. 요즘 이러한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무기력증은 일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 안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 해보고자 하는 의욕도 안생기고, 신앙의 회의가 느껴지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부정적인, 그래서 신앙생활을 마지 못해 하게 됩니다. 역시, 그리스도인 가운데 신앙의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신앙의 무기력증에 빠져버린 엘리야선지자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신앙의 무기력증이 찾아오는 이유가 무엇이고, 신앙의 무기력증을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대단한 열심의 소유자
먼저, 오늘 본문은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2절을 보면, 아합왕의 아내인 이세벨이, 자신이 아끼던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죽인 엘리야를 죽이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리고 4절을 보면, 그 소식을 들은 엘리야는 광야로 도망을 치게 됩니다. 그런데 광야에 도착한 엘리야는 심각한 신앙의 침체를 격게 됩니다. 신앙의 무기력증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죽고 싶어 하고, 무기력감에 잠만 자게 되었고, 지금의 상황에 대단히 부정적인 마음을 표현하게 됩니다. 그러나 5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은 그런 신앙의 무기력증에 빠진 엘리야의 필요를 채우시고, 그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를 쉽게 신앙의 무기력증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15절을 이하를 보면, 신앙의 무기력증에 빠진 엘리야에게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그 결과 엘리야는 신앙의 무기력증에서 벗어나 다시 이전의 엘리야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선 우리들이 먼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엘리야의 열심에 대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을 보면 엘리야가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열심을 품고, 얼마나 열심히 충성했는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보시면,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오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도 다시한번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얼마나 유별한 열심을 품고 있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유별이라는 말은, 두드러지게 다르다, 특별하다는 뜻으로 옛날 성경에서는 특심이라는 말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에 대해서 대단한 열심, 특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엘리야는 아합왕이 우상숭배에 빠진 일에 대해 책망을 할수 있었고, 갈멜산에서 이방선지자 850명 선지자 앞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라고 담대히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리고 당시 왕에게 특별 대접을 받던 이방의 거짓선지자들을 죽이는 일에 전혀 두려움이 없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온 나라가 이방선지자에 미혹되어, 하나님과 우상 앞에서 갈팡 지팡 머뭇거리는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그들의 신앙을 바로 잡기 위해 목숨을 걸고 용감히 앞장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엘리야는 하나님을 향해 대한한 열심, 특별한 열심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엘리야를 모든 선지자들의 대표(마17장의 변화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열심이 유별나고 특별난 사람이었습니다.
또,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예레미야, 다니엘, 호세아, 여호수아, 갈렙..., 등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바로 바울입니다. 고후11:2절을 보면, 오늘 본문의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가 열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즉,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선교와 목양의 사역을 위해서 핍박도, 고난도, 미움, 위험도 감수할 정도로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신약성경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초기 그리스도인들 역시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40일 금식을 하고, 밤을 세워 교회에서 산에서 기도하고, 어려운 형편 중에 구제의 삶도 살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고..., 등 이렇듯 초기 그리스도인들 역시 대단한 열심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대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결국, 한국교회의 놀라운 부흥과 열심은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엘리야와 같이, 바울과 같이, 신앙의 선배들과 같이 신앙생활이나 사명 감당하는 일에 열심히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열심히 있으십니까? 어떤 일에 열심히 있으십니까? 혹시, 돈버는 일, 성공하는 일,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 잘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신자로서 놓치지 말아야 할 열심의 내용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열심히’ 이라는 부사와 함께 사용된 가르침들이 나옵니다. 우선, 롬12:11절에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고 말을 하고, 벧전3:13절에서는 ‘열심으로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계3:19절에는 ‘열심으로 회개하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벧전4:8절에서는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고 말을 합니다. 물론, 열심히라는 형용사가 없어도 우리들이 열심을 낼것은 많습니다. 예를들면, 기도도 열심해야 하고, 예배도 열심히 해야 하고, 찬양도, 감사도, 순종도, 헌신도, 전도도, 봉사도, 섬김도, 이웃을 돌아봄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은 열심이 있는 분이십니까? 아니면, 아무런 열심히 없는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이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가 엘리야의 열심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열심을 가져 본 사람들에게 신앙의 무기력증이 찾오고, 신앙의 위기도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활력있게 신앙생활을 한 사람에게 신앙의 무기력증이 찾아오지, 활력 있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신앙의 무기력증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신앙의 무기력증이 뭔지도 모를 겁니다.
2.신앙의 무기력증에서 벗어나는 방법!
이제 생각할 것은, 열심이 특별했던 엘리야에게 신앙의 무기력증이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입니다. 오늘 본문 앞장을 보면, 엘리야가 아합왕을 책망하고, 850:1의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고, 3년간 닫힌 하늘에서 비를 내리는 큰 사역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소개되는 엘리야는 전혀 딴 사람입니다. 4절을 보면, 엘리야가 신앙의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고, 그 결과 심각한 우울증에 빠집니다. 그리고 혼자 있고 싶어 합니다. 또,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비교합니다.(10절) 그리고 브엘세바의 한 로렘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합니다. 이것만 보아도 엘리야는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엘리야 자신도 신앙의 무기력함에서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안한 것은 아닙니다. 3절을 보면, 탈진과 신앙의 위기에 빠진 엘리야는 브엘세바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엘리야가 이세벨의 위협을 피해 브엘세바로 간것이 도망 차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찾아온 신앙의 무기력증과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브엘세바는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께 처음으로 신앙의 고백을 한곳이며,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도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아브라함의 언약을 다시한번 재확인한 곳이며, 또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도 이곳에서 단을 쌓음으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 장소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브엘세바는 성지와 같았고,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곳을 영적인 장소로 삼고 즐겨 찾았던 곳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엘리야는 자신의 신앙의 무기력증을 극복하고자 성지인 브엘세바로 찾아간 것입니다. 마치 요즘식대로 말하면, 기도원에도 가고, 신앙의 특별한 시간은 갖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무기력증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 때문에 엘리야가 신앙의 무기력증에 빠졌을까요? 엘리야에게 특별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왕상18장의 세상이나 왕상19장의 세상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말해, 세상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본문 5-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충분한 음식도 주셨고 충분한 쉼도 주셨고, 힘도 주셨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9절을 보면, 엘리야는 여전히 신앙의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신앙의 무기력증은 잘 먹고 잘 쉰다고, 해결 되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연! 엘리야에게 신앙의 무기력증이 찾아 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엘리야에게는 동역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늘 혼자 일하는 것을 좋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나누고, 그래서 위로받고 격려받고, 신앙의 문제를 함께 나눌 대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의 활력을 가지지 못하고 무기력해지는 것은, 함께 신앙적인 교제를 하고, 함께 마음을 나눌수 있는 동역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장사역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장 사역을 단순한 친교사역이 아닌, 신앙적인 동역자로 세워가는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엘리야에게는 10절을 보면, 심각한 영적인 교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다른 사람들은 모두 우상 앞에 무릎을 꾾었지만 자신만큼은 그러지 않았다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월감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의식에서 나오게 된 잘못된 생각입니다. 즉, 엘리야는 지금 다른 사람은 우상의 문제에 대항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지만 자신만은 목숨을 걸고 대항했다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18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엘리야가 신앙의 무기력증에 빠진 것은, 그가 영적인 교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에게 신앙의 무기력증이 찾아오는 것은, 영적인 교만 때문입니다. 즉, 할 만큼 했다, 이 정도면 되었다는 식의 영적인 교만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야에게 신앙의 무기력증이 찾아온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셋째로, ‘더 이상의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선지자로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엘리야 선지가 분명한 목표,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면, 결코 신앙의 무기력증이 찾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무기력증에 빠진 엘리야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특단의 조치가 무엇입니까? 15절 이하를 보면, 3가지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사엘을 아람의 왕으로 세워라! 둘째는,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라! 셋째는, 일레사는 너의 후계자로 세워라! 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러한 사명을 부여받은 엘리야는 다시 신앙의 활력을 되찾게 됩니다. 그래서 왕상21장을 보면, 그렇게 두려워하던 아합과 이세벨에게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 품에 안긴 유일하고도 위대한 선지자로 인생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의 무기력증에 빠지는 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분명한 목표가 없고, 내가 해야 할 신앙의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가운데 신앙의 무기력증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확인해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신앙의 목표, 감당해야 할 목표가 있는지 말입니다. 없을게 분명합니다. 영국의 작가 버나드 쇼는 어느날 스스로 자신이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고 판단한 후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와달라고 했다. 평소 그를 잘 알고 있었던 의사는 진짜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마음이 문제라고 간파했습니다. 그의 집을 찾은 의사는 일부러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무슨 일입니까?’ 그가 묻자 의사는 ‘급히 오느라고 심장에 이상이 생겨 내가 죽게 생겼다.’고 했습니다. 놀란 그는 벌떡 일어나 응급약과 마실 차를 준비하는 등 의사를 간호하느라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무기력증과 우울했던 감정이 싹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1시간 후 의사가 그에게 ‘진료비를 달라’고 했습니다. ‘내가 선생님을 보살펴주었는데 무슨 진료비냐?’는 그의 말에 의사는 ‘당신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다 나았지 않느냐? 이게 처방이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무기력증과 우울증에서 해방되려면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3.신앙의 분명한 목표를 가지십시오!
그렇습니다. 내가 해야 할 신앙의 일, 내가 이루어야 할 신앙의 목표를 분명히 가지지 않으면, 우리 모두도 한순간에 신앙의 무기력증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필요한 신앙의 자세는 무엇입니가? 끊임없이 신앙의 목표를 가지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고민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신앙의 목표를 갖어야 하는가? 예배에 대한 목표, 경건 시간에 대한 목표, 사랑에 대한 목표, 용서에 대한 목표, 감사에 대한 목표, 전도에 대한 목표, 나를 고치고 만들어 가는 목표..., 각자가 더 생각해 보고, 목표를 설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신앙의 목표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는 신앙의 무기력증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고, 신앙의 활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신앙에 무기력증이 찾아보면, 참 괴로워집니다. 뿐만 아니라, 참 형편없는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해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신앙의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향해서 식지 않는 열심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래서 늘 활력있고, 능력있고, 생명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