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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준비 시키시는 하나님!(열왕기상 강해26)
 본문말씀 : 왕상17:8-24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10.11
조회 : 9,981   추천 : 0  
본문 : 왕상17:8-24절
제목 : 준비 시키시는 하나님! 열왕기상 강해26

  성도들의 삶속으로  
 ‘양병십년 용병일일(養兵十年 用兵一日)’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병사를 키우는 데는 10년이 걸리지만, 병사를 사용하는 데는 하루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하루를 위해 10년을 준비 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교훈하는 말입니다. 또한 영국의 유명한 윔블던 테니스장은 일년에 단 두 주간만 경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두 주간의 경기를 위해서 수십명이 일년 내내 잔디와 시설물들을 관리하여 두주간의 대회를 준비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준비가 중요하다는 것과 더나가서 준비는 결코 낭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도리어 준비는 가장 값진 투자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든 준비하는 것은 대단히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어떤 사람을 쓰시기 이전에 먼저 준비시키시는 분이십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준비시키시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도 준비시키는 하나님을 사모하고, 늘 쓰임받기에 준비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다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가뭄으로 그릿시내의 물이 마르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시돈에 있는 사르밧이라는 곳에 있는 한 과부에게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 과부를 통해서 먹을 것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르밧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던 한 과부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마실 물과 떡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 과부는 매우 가난해서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줄만한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마지막 남은 양식을 먹고, 굶어 죽는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처지에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대로 그 마지막 양식을 자신에게 줄 것과 그러면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말대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일후 과부의 아들이 병에 걸리고 그만 죽게 됩니다. 그때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아이를 살렸습니다. 그 일로 인해 과부는 24절처럼,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이시며, 엘리야가 하나님의 참다운 선지자라고 고백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이 첫 번째로 생각할 것은, “왜 하나님께서 이해되지 않는 일을 하셨는가?”에 대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첫째로, 엘리야를 먹이시기 위해서 왜 하필 사르밧으로 보냈는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르밧은 아합왕의 아내인 이세벨의 고향입니다. 다시말해, 사르밧은 바알과 아세라신의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하나님께 왜 이런 곳으로 엘리야를 보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왕이면, 이스라엘땅 중 한곳으로 보내시는 것이 더 납득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이면, 먹을 양식이 없어 죽는 날을 기다리는 과부에게로 보냈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르밧은 두로의 왕의 딸이었던 이세벨 여왕이 살던 곳입니다. 즉, 얼마든지 찾으면 부자가 많이 있을만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먹을 양식이 없어 죽는 날을 기다리는 과부에게로 가고, 그녀에게 먹을 것을 얻으라고 말씀하셨는지 참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셋째로, 엘리야가 기거하는 동안 그 과부의 집에 축복을 주시면 참 좋을 텐데, 과부의 아들이 그만 병들어 죽게 됩니다. 그리고 과부에게 엘리야가 난처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넷째로, 오늘 본문을 보면, 2가지 기적이 나옵니다. 첫째는, 가루와 기름병이 마르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죽은 아이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도 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이런 놀라운 기적을 사르밧과부의 집이라는 숨겨진 장소에서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적을 바알과 아세라우상에게 마음이 빼앗긴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나타내시거나, 우상을 숭배하던 두로 사람들 앞에서 나타내 보이셨다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효과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먼 이방나라의 집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 일을 하셨습니다. 결국, 오늘 우리들이 읽은 본문의 내용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물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만 나오지 않습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자주 보게 됩니다. 예를들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살에 하나님께 아들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하나님이 이해가 되었겠습니까? 또, 다윗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후 다윗이 겪은 일은 무엇입니까? 사울왕에게 시기와 미움을 당하고, 도망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이런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또,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결혼을 약속한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요셉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또,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선민임에도 불구하고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 당하고, 또한 끊임없이 이방나라에게 지배를 당했습니다. 이해가 가겠습니까? 또, 시편을 보면, 특별히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찬양 리더였던 아삽을 보십시오. 시73편을 보면, 아삽은 악인과 오만한 자들의 형통을 보며, 16절에서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라고 말을 합니다. 도무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을 경험한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들 역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경험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생각지도 않았던 뜻밖의 사건과 사고를 경험하게 될 때, 기도를 작정하고 열심히 기도하는데 삶이 더 꼬여만 갈 때, 하나님의 일에 힘쓰려고 노력하는데 현실이 복잡해 질 때,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면 하는데 더 많은 방해와 유혹이 생길 때, 교회가 병든 사람들을 위해서 정말 간절히 기도했는데 데려가실 때..., 등 저 역시도 자세히는 말할 수 없는 내용이지만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던 순간이 정말 많이 있었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 중에 하나님을 이해할수 없는 순간을 맞이한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도 하나님을 이해할수 없는 순간이 많이 있었지만, 앞으로도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분명히 많이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들이 먼저 꼭 알아야 할 것 2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크시고, 깊으시고 넓으시고, 무한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짧은 인생을 살고, 짧은 경험을 가진, 짧은 지식과 안목을 가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내 자신도 이해 못하고, 같은 인간끼리도 이해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 점을 이사야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55:8-9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고 말합니다. 둘째로,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과 신뢰의 대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믿어야 할 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행하셨을까요? 그리고 왜 엘리야에게 그런 일들을 경험하게 하셨을까요? 그리고 혹시, 여러분의 삶속에도 여러분이 이해할 수 없고, 여러분이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이유를 아십니까? 과연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해할수 없는 일을 하실까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시든지 간에 다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하실때에는 다 이유를 가지고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알아야 신앙생활을 잘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든, 어느 순간이든지 다 하나님에게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지혜는 어떤 일, 어느 순간에서든지 하나님의 이유를 고민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가 이렇게 사용되는 것은 매우 성숙한 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이유를 고민하고,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준비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이해 안되는 일을 하시고, 그런 일들을 엘리야에게 경험하게 하신 하나님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엘리야를 준비시키기 위함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제 곧 있게 될 갈멜산의 영적인 전투를 감당하도록 준비시키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왕상18: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3년후 엘리야에게 아합에게 가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1로 바알과 하나님 중 누가 참 신인가를 증명하는 대결을 하게 됩니다. 물론, 엘리야가 말도 안되게 불리한 상황입니다. 우선은 숫자적으로 불리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의 왕인 아합과 이세벨 역시 자신이 아닌, 이방선지자의 편입니다. 엘리야 편은 아무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 불리해 보이는 영적인 전투에서 엘리야는 주눅 들지 않습니다. 불안해 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여유 있게 승리하게 됩니다. 이렇듯이 엘리야가 주눅들지 않고, 불안해 하지 않고, 여유를 갖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미 엘리야가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그릿시냇가에서, 그리고 사르밧 지역에서 2번이나 경험했고, 바알과 아세라에 익숙했던 사르밧과부의 고백속에서도 하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야는 무모해 보이는 대결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고, 잘 감당하고, 결국,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감당해야 할 영적싸움을 위해서 미리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사용할 때 반드시, 먼저 준비시키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쓰시는 분은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우리도 준비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적어도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사용할 사람들을 인내를 가지고 훈련시키시고, 철저히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를들면,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후손을 주실때에도 적어도 25년 그 이상의 세월이라는 훈련과 인내로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역시, 40살에 동족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많았고, 특별히 우리들이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교육도 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40살에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했을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광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40년이라는 다 알수 없는 준비의 시간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80살에 모세를 부르실때에도, 불 붙은 가시떨기의 기적을 보게 하시는 방식으로 준비시키셨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어두워진 눈이 밝아지는 기적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를 통해 복음도 듣고 깨달았습니다. 이것도 바울을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그러나 당장 길거리로 나가지 않습니다. 아라비아 광야로 나가 3년간 더 깊은 준비를 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는 3년이라는 준비 과정과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죄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정확히 말하면 창3장으로부터 메시야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용하시기 위해 다양한 방법, 곧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통해서 우리들을 준비시키고 계심을 알고, 하나님 앞에 더 더욱 준비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3.기도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일을 위해 쓰임받도록 준비시키실 때, 가장 많이 가장 먼저 준비케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입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바로 기도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기도를 준비시키십니다. 오늘 본문의 엘리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르밧 과부를 만났을때에도, 그리고 죽은 아들을 살리는 일에도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기도로 준비케 하셨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이전에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일의 사역을 시작하기 이전에도 새벽에 기도하심으로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시간을 기도의 시간으로 삼으셨습니다. 또한 교회의 탄생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요구한 것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무엇보다도 기도로 준비된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후 그들을 통해서 유대땅과 사마리아, 이방의 땅에까지 복음을 전파하는데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사용할 사람들을 기도로 준비케 하시고, 기도로 준비된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누군가를 사용하실 때, 가장 먼저 기도로 준비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기도로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로 준비된 교회를 쓰십니다. 이렇듯, 개인이든, 교회이든 기도로 준비된 사람, 기도의 사람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분은 ‘기도속에 다 들어있다. 기도하면 전도하게 되고, 기도하면 성령충만하게 되고, 기도하면 회개하게 되고, 기도하면 헌신하고 봉사하게 되며, 기도하면 다 회복된다.’고 까지 말을 했습니다. 물론, 100% 맞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거의 맞는 말입니다. 그만큼 기도가 신자와 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요즘 그리스도인들 중에 하루에 30분 이상 집중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몇사람이나 될까? 과연 우리 교회성도들 중에는 30분 이상 기도하는 사람이 몇 명이 될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우리에게 있는 어떤 문제를 해결받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기도는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일을 위하여 우리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의 일군이 되는 가장 중요한 준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열심을 다해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기도에 부족함이 없는, 기도로 준비된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말씀을 마치면서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준비시키시는 분이십니다. 특별히 기도로 준비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준비된 사람, 특별히 기도로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준비된 자로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는 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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