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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실상은 부요한 자라!(요한계시록 강해14 )
 본문말씀 : 계2:8-11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10.9
조회 : 9,627   추천 : 0  
본문 : 계2:8-11절   요한계시록 강해14 
제목 : 실상은 부요한 자라!  

  들어가는 말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갖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면..., 물론, 세상 사람들만 갖는 소원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한번 이상은 부자가 되기를 소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부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나쁜 방법으로가 아닌, 정직하고, 올바르게 부자가 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특별히 저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좀 더 많은 헌신과 나눔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는 일에만 관심을 갖으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대해 부자, 하나님의 칭찬에 대해 부자, 신앙의 부자, 영적인 부자가 되고자 하는 거룩한 소원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우리들이 묵상해야할, 서머나교회가 바로 하나님께 대해, 그리고 신앙적으로 부자였다고 칭찬 받는 교회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함으로, 여러분 모두가 서머나교회와 성도들처럼 하나님께 대해 부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오늘은 서머나교회에 보낸 편지의 개론적인 부분을 살펴보도고 다음주 부터는 조금더 자세히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가난과 궁핍을 선택한 서머나교회
 먼저, 서머나 지역이 어떤 지역인가? 를 생각해보도록 합니다. 우리는 지난 5시간을 통해서 에베소교회에 대해서 묵상을 했습니다. 서머나는 이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약 6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대단히 아름다운 항구 도시입니다. 그리고 서머나는 지금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에베소와는 달리 지금도 무역과 경제, 문화와 관광의 중심지로서 인정을 받는 오늘날의 터키 서부지역의 이즈미르라는 도시입니다. 특별히 사도요한이 이 편지를 쓸 당시에만도 인구가 30만명 이상이 살 정도 대단히 크고 화려한 도시였습니다. 특별히 이 편지가 쓰일 당시 서머나가 크게 발달하게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서머나사람들의 로마에 대한 남다른 충성심 때문이었습니다. 즉, 서머나사람들은 로마황제에게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로마황제를 위한 신전을 최초로 세워 바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유대인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황제는 서머나의 충성심에 감탄하여 많은 특권을 주었습니다. 예를들면, 제2의 로마라는 호칭을 주고, 많은 물질적인 지원과, 도시개발, 그리고 서머나사람들에게 로마시민권을 주는..., 등 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머나는 대단히 화려고, 부요한 도시가 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요한 도시에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특별히 서머나교회에 보내진 편지를 보면, 한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칭찬만 있고, 책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서머나교회는 완벽한 교회였다는 말이 아닙니다. 흠과 티가 없었다는 말도 아닙니다. 분명히 서머나교회는 세상의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교회이고, 흠과 티가 있었을 것입니다. 단지 주님이 서머나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칭찬만 하신 것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교회와 여러분이 서머나교회처럼 주님 앞에 책망받을 것이 없고, 칭찬만 받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는 칭찬만 받을 만한 교회일까요? 책망받을 것은 없는 교회일까요? 아닐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아직도 책망 받을 것이 많은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칭찬만 받을 만한 신자입니까? 책망받을 것이 없는 신자일까요? 역시 아닙니다. 여러분도 주님께 책망 받을 것이 아직도 많은 신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주님은 우리 교회를 보면서 무엇을 칭찬하시고, 무엇을 책망하실까요? 또한 주님은 여러분의 어떤 점을 칭찬하시고, 어떤 점을 책망하실까요? 특별히 우리는 주님이 나의 어떤 점을 책망하고자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물론, 아는데 그치면 안됩니다. 주님께 책망받을 만한 나의 모습들을 고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서머나교회와 성도들은 무엇을 칭찬받았을까요? 9절에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즉, 세상 사람들이 볼때에는 가난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부요하다는 칭찬입니다. 참 이 상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서머나지역은 로마황제의 특권으로 인해 대단히 화려하고 부요한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서머나교회와 성도들은 대단히 가난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9절에 ‘환난’ 이라는 단어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서머나 도시의 모든 권력과 경제권은 로마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일에 앞장선 유대인들이 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추진하던 로마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일에 당시 교회와 성도들은 반대를 하고, 참여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결과 교회와 성도들이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서머나지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장사도 할 수 없었고, 물건도 마음대로 살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서머나교회와 성도들은 가난하고 궁핍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서머나교회와 성도들의 가난과 궁핍은, 신앙을 지키고, 신앙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그들의 선택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성도들의 신앙의 모습을 보며, 주님은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칭찬을 하신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자가 되고, 잘사는 것, 평안한 삶을 사는 것을 싫어하고 마다 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도리어 부자가 되는 것, 잘사는 것, 평안한 것을 누구나 다 갖고 싶어 할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성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부자가 되고, 잘 살고, 평안한 삶을 버리고 포기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 가난과 궁핍, 환난을 스스로 기꺼이 선택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선택이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단서가 되며, 신자에게 선택은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을 반영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하면, 신자로서 무엇을 선택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의 색깔, 신앙의 상태, 신앙의 수준을 알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선택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다른 관점에서 말하면, 우리들이 신자로서 올바른 선택을 하게 되면,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할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맞습니다. 그러므로 매일의 삶에서 서머나교회 성도들과 같은 신자로 마땅하고 정당한 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서머나교회 성도들이 가난과 궁핍, 환란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에서 부자로 살고, 평안하게 사는 것보다, 비록 핍박을 당하고, 가난과 궁핍으로 살지만,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그런 사람입니다. 모세 역시 애굽나라의 왕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비록 노예민족이지만 이스라엘사람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것을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더 영광스럽고 복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84편을 기록한 고라자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또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이었으며, 사도들의 모습이며, 각 시대마다 있었던 많은 순교자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 모두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서머나성도들의 모습을 보며, 무엇을 느끼십니까? 부끄러움을 느끼십니까? 그래야 합니다. 부끄러움마져 느끼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심각한 그리스도인이거나, 아직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서 지금까지 무엇을 포기하셨습니까? 무엇을 버리셨습니까? 시간을 버리셨습니까? 물질을 포기하셨습니까? 즐거움을 버리셨습니까? 자존심을 버리셨습니까? 참 잘 하셨습니다. 앞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포기하고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신자로서 세상의 것을 포기하고 버리는 일을 어려워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주일을 온전히 지키는 것, 주중에 예배에 나오는 것, 그 외에 다른 시간을 신앙을 위해서 할애하는 것에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 물론, 바쁘고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이유는, 신앙을 위해,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 하나님의 다운 삶을 영광스럽고 복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기하는 것이 없고, 버리는 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러분은 더 더욱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서는 서머나교회 성도들과 같은 포기와 버림이라는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 삶에 그리스도인다움을 방해하는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욕심, 욕망, 교만, 미움, 게으름, 방탕함, 세상 재미,...., 등 이런 것을 버릴 줄 알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서머나성도들처럼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감으로 칭찬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죽도록 충성하라
 이제 우리들이 묵상할 것은,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 가난을 선택하고, 핍박을 받는 서머나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권면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무슨 권면을 하십니까? 첫째로, 9절을 보면,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입니다. 그리고 10절을 보면,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먼저, 주님이 지금 서머나 성도들이 받는 고난을 알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8절을 보면,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이’ 라고 편지를 보내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주님은 서머나교회가 당하는 고난을 아시는 분일뿐 아니라, 죽음의 고난까지 친히 경험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머나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과 아픔을 공감할 수 있고 편들어 줄수 있고, 위로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4:15절에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히2:18절에서는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서머나성도들의 고난을 아시고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0절에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11절에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그들의 고난의 삶을 보상하시고, 갚아주실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 하지 말라고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 고난(포기, 손해, 버림)을 격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겪음으로 느끼게 되는 아픔과 고통, 손해를 주님은 아십니다. 그리고 그런 여러분의 신앙의 선택을 틀림없이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고난의 삶을 두려워 하지 말고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더 중요한 권면입니다. 10절에 ‘죽도록 충성하라’고 권면하십니다. 어떻게 충성하라고요! 할수 있는 만큼,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손해 보지 않은 만큼...., 아닙니다. ‘죽도록’입니다. 즉, 지금 서머나교회와 성도들은 죽음도 불사할 정도의 충성됨을 가지고 있었고, 그 충성됨을 끝까지 지키라는 권면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한 충성됨을 중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 권면대로, 서머나교회 성도들은 끝까지 신앙을 지켰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바로, 폴리갑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사도요한의 제자이며, 서머나교회를 섬겼던 주의 종입니다. AD156년경, 86세의 나이에 폴리갑은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사형이 집행될 원형경기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때, 서머나의 총독이 말을 했습니다. ‘목숨이 아깝지 않으냐! 로마황제를 주라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욕하라! 그러면 살려주겠다!’ 그때 폴리갑은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지난 86년 동안 주님은 한번도 나를 부인하신적이 없소, 그런데 내가 어떻게 주님을 부인할 수 있단 말이오! 그러자 총독이 사나운 맹수를 보이며 협박을 했습니다. 그때 폴리갑은 ‘맹수를 어서 데리고 오시오. 날 맹수에게 어서 던지시오!’ 그러자 총독은 화형대에 폴리갑을 묶고, 협박했습니다. 그때 폴리갑은 ‘어서 불을 붙이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순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폴리갑만 신앙을 끝까지 지킨 것은 아닙니다. 당시, 서머나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사자밥이 되고, 사형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즉,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일까?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일을 결심하는 것, 그리고 그 일을 시작하는 것, 그러나 더 힘든 일은 그 일을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지난 삶을 돌아보면, 뭔가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하지 못한 일이 참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뭔가를 배우는 것, 결심한 것..., 등 그런데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어려운 것, 역시 그 신앙, 또는 신앙의 행위를 끝까지 가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신앙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예를들면, 아담과 하와, 노아, 사울왕, 솔로몬왕, 히스기야왕, 웃시야왕, 가룟유다, 그리고 딤후4:10절에 나오는 바울의 동역자 데마, 초대교회 집사였던 니골라..., 등 물론,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처음에 열심히 있고, 충성스러운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충성을 잃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일에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일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끝까지 충성하시는 분이십니까?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시는 분이십니까? 끝까지 신앙의 열심을 가지고 계십니까? 끝까지 신앙의 결심들을 중단하지 않고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들이 끝까지 충성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끝까지 신앙의 열심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고난의 유익
 이제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고난의 유익” 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서머나교회가 칭찬만 받는 교회일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떤 다름이 있기 때문입니까? 즉, 남다른 능력과 실력이 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고난이 그들을 강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지난 시간 묵상한 에베소교회는 처음부터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대단한 주의 종들이 말씀을 전했고, 그리고 성도들은 말씀을 분별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박해는 있었지만, 서머나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에베소교회는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책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머나교회는, 에베소교회처럼 유명하지도 않았고, 화려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늘 환난과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가난과 궁핍이 있을 정도로, 때로는 목숨을 잃을 정도의 극심한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이 그들의 신앙을 칭찬받는 신앙이 되도록 만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고난이 다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평안과 형통이 다 좋은 것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성경을 보면, 편안한 가운데 어려움없이 자란 사람들보다, 고난의 순간을 겪으며 자란 사람들, 즉, 고난이 만들어낸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야곱, 요셉, 다윗, 욥...,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크고 평안하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편안할 때, 게을러지고, 말씀을 듣는 것도 소홀해지고, 신앙이 약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교회에 어려움이 많고, 시련이 생기면, 신앙이 더 뜨거워지고, 열심을 냅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것이 있습니다. “고난이 선물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들을 때, 참 무식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진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고난을 통해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 더욱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물론, 무조건 고난을 당하는 것만으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고난가운데 더욱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고, 기도함으로 고난을 감당할 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고난을 신앙성장의 기회로 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이 찾아오면, 더욱 예배하고, 더욱 묵상하고, 더욱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더욱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고난과 어려움을 피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우리들이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신앙의 집을 세우가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이 허락해주신다면 부자도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더 바라는 것은 세상이 보기에는 가난하고 궁핍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진정한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신앙 곧 그리스도인다운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보상하심을 기억하고, 고난의 유익을 기억하고 끝까지 충성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서는 날 실상은 참 부자였노라 칭찬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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