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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 (열왕기상 강해25)
 본문말씀 : 왕상17:1-7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10.4
조회 : 7,757   추천 : 0  
본문 : 왕상17:1-7절   열왕기상 강해25
제목 :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  

  성도들의 삶속으로  
 요즘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 중에 심각한 문제는,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일할 자리가 없어 놀고 있는, 실업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왕성하게 일해야 하는 젊은이들이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들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업자가 많다는 것이 사회적인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큰 교회이든 작은 교회이든지 간에 일군이 없어서 힘들어 합니다. 다르게 말을 하면, 예수도 믿고, 교회도 다니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영적인 실업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되이 일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은 일군, 엘리야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시는가를 확인함으로 여러분 모두가 영적인 실업자가 아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은 북왕조 이스라엘의 7대왕인 아합이 통치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길르앗에 사는 디셉 사람 엘리야(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죄에 대한 경고로 수년간 비가 내리지 않게 될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아합과 온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숭배하는 죄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 2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요단 앞 그릿 시냇가로 도망가 숨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엘리야가 그곳에 있는 동안 까마귀를 통해서 아침과 저녁에 떡과 고기를 물어다 먹게 하셨습니다. 이게 오늘 우리들이 묵상해야 할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이미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대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 에 대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합왕과 이스라엘을 경고하기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아합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 까지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바알과 아세라 신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인 북왕조 이스라엘이 왜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숭배했는가? 이해가 되지 않으실 겁니다. 1차적으로는 북왕조 초대왕인 여러보암왕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우게 됨으로 하나님께 대한 유일신 신앙이 무너졌기 때문이고, 2차적으로는 아합왕이 두로 나라의 공주인 이세벨과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합은 왜 두로나라의 공주와 결혼을 했을까요? 그것은 두로 나라의 부요함과 힘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결혼을 통해서 북왕조 이스라엘은 부요함과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두로 나라의 부요와 힘만 유입된 것이 아니라,  두로나라가 숭배하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까지 유입된 것입니다. 그리고 북왕조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로나라의 부요와 힘이 바알과 아세라 우상 덕분이라는 착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아합을 중심으로 온 백성이 바알과 아세라신을 위한 신전도 만들고, 그 신전에서 그 우상들을 숭배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아합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경고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엘리야를 쓰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 직후부터 정하신 대단히 중요한 원칙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 때에, 다수의 사람, 많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기 보다는 정말 귀한 한 사람을 쓰실 때가 많다는 점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을 하면,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쓰임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잘 감당할 수 있는 한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때, 돌이키고 하나님 앞에 나올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방주를 만드실 때에도 노아 한사람을 부르셨습니다. 또, 애굽에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실 때에도 모세라는 준비된 한사람을 부르셨습니다. 그 외에도 이스라엘의 각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밝히시는 일에도 한 선지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쓰임받을 준비가 되어진 한사람을 찾으시고,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많은 헌신된 사람이 필요하지만,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 준비된 엘리야와 같은 한사람만 있어도 귀한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부르시고, 쓰실 만한 중요한 한 사람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엘리야처럼 쓰임받는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사모하고, 기도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배우지 못하고, 가진것도 없고, 능력도 없어서 그런 사람이 될수 없다고 생각되는 분이 계십니까? 오늘의 주인공 엘리야도 여러분보다 더 나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엘리야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자세한 기록이 없습니다. 단지, 그가 디셉사람으로서 길르앗땅에 살던 사람이라고만 말을 합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그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엘리야가 똑똑하거나, 많은 것을 가지거나, 남다른 재주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그럴리는 없지만, 엘리야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앞에 중요한 사람이 되는 일과 상관없었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배우고, 얼마나 능력있고, 얼마나 가졌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2.어떤 사람을 쓰시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한 사람을 귀하게 쓰실까요?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중요한 한 사람이 되기 위해 꼭 갖추어야 할 것들이 무엇일까요? 첫째는“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엘리야는 아합에게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약5:17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무슨 말입니까?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엘리야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기도로 하늘을 문을 닫고 열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쓰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각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들을 보면, 기도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가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위해 얼마나 기도했습니까? 야곱을 보십시오! 그 역시 얍복강에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도 르비딤에서 기도함으로 이스라엘이 아멜렉을 이기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 베드로, 바울도 그리고 예수님도..., 이렇듯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기도하는 사람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께 귀히 쓰임받은 사람들 중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음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앞에 쓰임받는 중요한 한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기도하는 사람을 중요한 사람으로 쓰실까요? 그 이유는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뜻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께 중요한 한사람으로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못함을 핑계하지 말고,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기도못함에 정당한 이유가 될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용기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엘리야는 대단히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아합왕에게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경고를 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왭니까? 아합은 결코 힘이 없는 왕이 아닙니다. 절대권력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왕의 말한마디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합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아무도 왕에게 우상숭배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심지어 왕을 시작으로 이스라엘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는 것을 당연히 여길때, 그것이 잘못된 일이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 곧 하나님만이 진정한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담대히 우상숭배가 잘못이고, 하나님만이 진정한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용기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엘리야가 아합왕을 찾아간 시점입니다. 언제 찾아갔을까요? 엘리야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을 때인가요? 아닌 것 같습니다. 엘리야가 아직 선지자로 부름을 받기 이전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1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아합을 찾아간 것은 잘못을 말하고자 하는 그의 결단이었습니다. 1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선지자로 임명하거나 아합에게 가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대부분이 하나님께서 먼저 선지자를 부르고, 말씀하시는 순서로 기록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엘리야가 아합왕을 찾아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 이후, 2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그 후에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정말 놀라운 기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중요한 한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용기를 갖어야 합니다. 무슨 용기가 필요합니까? 삶속에 오직 하나님만을 선택하는 용기, 죄에 대해서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용기, 분위기나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 용기, 정직히 말하는 용기, 잘못을 인정할줄 아는 용기,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줄 아는 용기,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는 용기..., 등 이런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용기있는 모습이 있습니까? 만일 없다면 이유가 무엇입니까? 손해 볼 것같다구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편에 서면, 거룩한 용기 가운데 살아가도 절대 손해 보지 않습니다. 손해봤다고 생각될 때가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용기있는 분명한 삶을 살지 않고 어정쩡하게 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아합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 후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명령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단동쪽에 있는 그릿시내가로 가서 숨으라는 것입니다. 참 이해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여러분! 엘리야는 선지자로 세움받기 이전부터 용기있던 사람입니다. 그가 아합을 찾아가 경고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후에는 더욱 용기있고, 열정적인 사역을 각오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을 위해서면 무엇이든 할 것이고, 심지어 목숨조차 하나님을 위해 버릴것이다..., 등 그런데 그런 열정을 발휘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깊은 골짜기에 숨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맥빠지겠습니까? 얼마나 시시한 명령입니까? 아합을 향해 저주를 선포하라! 또는 바알과 아세라상을 도끼로 찍어버려라! 바알과 아세라를 믿는 사람들을 내쫓아라! 적어도 모세가 바로왕앞에서 행한 일을 기대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해주시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작 열정을 가지고 선지자 노릇좀 해보겠다는 엘리야에게 주신 명령이 고작 골짜기에 숨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까마귀가 날라다주는 음식이나 받아 먹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싫은 내색함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을 중요한 한사람으로 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라도 그럴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회사 사장이라면 직원을 뽑을때 말안듣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을 뽑겠습니까? 계속 데리고 있겠습니까? 그럴 사장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께 쓰임받는 중요한 한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순종하겠다는 마음을 품고, 순종의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순종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아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순종의 삶이 잘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믿음이 적어도, 욕심이 많아서, 원함이 없어서, 걱정되서...., 그런데 오늘 본문에 한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생각과 경험이 순종을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까마귀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어디서나 길조가 아니고, 흉조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의 살을 까마귀에게 먹히게 하겠다고 말한 짐승입니다. 그리고 까마귀는 죽은 고기를 먹는 부정한 새이 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부정한 새로 먹을 것을 제공하고, 그것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엘리야로 하여금 순종을 고민하게 했을지 모릅니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 이래서 안될것이고, 저건 저래서 안될것이고, 이것은 이미 해봤는데 안되는 일이고, 할 생각도 없고, 해보지도 않은 일이...,등 우리의 생각, 판단, 경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고, 삶을 결정하려고 하기 때문에 순종이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의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생각, 경험, 판단을 내려놓은 사람들입니다. 예를들면, 베드로가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어부로서 고기잡는 일에 노하우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경험과 생각과 판단을 내려 놓을때, 예수님이 깊은곳으로가서 배 오른편으로 그물을 내리라는 말에 순종한것을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 판단, 경험을 하나님 말씀 앞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억할 것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이유없이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고, 능치못할 것이 없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순종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받는 중요한 한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간단히 중요한 가지를 말씀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귀한 한 사람으로 쓰시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쓰임받고자 하는 귀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마음이 있으십니까? 없다면, 기도, 용기, 순종..., 은 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쓰임받고자 하는 귀한 마음을 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쓰임받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고 특권이 감사이고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시고자 할 때,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특별히 준비된 한 사람을 불러 쓰시는 분이십니다. 특별히 기도하는 사람, 용기있는 사람,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을 불러 쓰십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귀한 쓰임받는 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원을 갖고, 이 시대에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귀하게 쓰임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 그런 일군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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